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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3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53 | 99년 | |
3654 | 32626461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54 | 100년 | |
3657 | 74200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57 | 로마 황제 | 로마 황제(, )는 아우구스투스를 시초로 하는 로마 제국의 황제를 말한다.
칭호.
로마의 황제들은 여러 다른 칭호로 불렸는데, 주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카이사르(Caesar).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성을 아우구스투스부터 네로까지 황제가 세습한 것을 기원으로 해 "황제"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다만 율리우스 카이사르 본인은 엄밀히 말하면 로마 황제가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독일어 카이저, 러시아어 차르의 어원이 되었다. 로마제국의 시기에는 황제를 부를 경우 카이사르라고 했다. 그리고 제위 계승자에게 제일 먼저 붙이는 이름이 바로 카이사르였다. 즉 중국 군주의 방식으로 말한다면 황태자를 칭하던 말이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
공화정 체재 복귀를 선언하며 초대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에게 로마 원로원이 붙인 칭호로, '위엄있는, 존귀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우구스투스 이후 황제들의 칭호가 되었으며, 황후나 황녀들에게는 아우구스타(Augusta)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그리고 이 아우구스투스라는 명칭과 카이사르라는 호칭이 결합해야만 정식으로 인정된 황제였다. 쉽게 말해서 예를 들어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클라우디우스 티베리우스'는 원로원의 정식 동의를 받은 티베리우스 황제라는 의미이다
임페라토르(Imperator).
원래 임페라토르는 개선장군을 의미하는 말로 아우구스투스가 B.C.27년 1월 13일 공화정 복귀선언에서 3가지의 권리를 포기하는데 삼두정치권과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와의 결전을 앞두고 본국의 주민과 속주의 주민들에게 서약을 해둔 이탈리아 서약과 이를 확대한 세계적 합의라는 3가지 권리를 포기한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지 않은 것 중에서 임페라토르가 있다. 이를 항상 사용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서 계승되면서 군통수권과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권리와 이를 세습할 권리를 얻었다. 이후 황제의 이름에 임페라토르는 로마군대의 최고 사령관이자 통수권자라는 의미를 가진 뜻이 되었고, 이후 중앙집권적 국가에서 황제를 칭하는 Emperor의 어원이 바로 임페라토르이다.
프린켑스(Princeps).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군사적인 재능이 없어 병사들이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로 인해 자신에게 반감을 드러낼 것을 염려, 원로원에서 제 1 발언권을 지닌 이의 별칭인 프린켑스를 사용했고, 이것이 후에 퍼져 시민들과 원로원 의원이 황제를 지칭하는 의미가 되었다.
권한.
황제의 권력은 '호민관 특권'(potestas tribunicia)과 '대행 집정관 권한'(imperium proconsulare)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호민관 특권은 황제에게 거부권(veto)를 부여하게 됐고, 이는 원로원과 민회의 결정까지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으로써, 본래 공화정 시대에는 서로에 대한 견제의 의미로써 두명의 집정관과 10명의 호민관 모두에게 주어졌던 권한이다. 또한 호민관 특권은 황제의 신체는 신성불가침으로 만들었다. 그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그의 의무 수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자는 저주 곧 사형에 처해졌다. 이는 공화정 시대에는 호민관에게 주어졌던 특권으로, 본래 공화정 시대에는 평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호민관의 특성상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는 성격이 더 강했던 특권이었다. 대행 집정관 권한(공화정 시대의 총독 역할을 맡던 대행 집정관의 권한)을 통해 황제는 로마군 통수권을 가지게 된다. 황제는 공화정 시대에는 원로원과 민회의 몫이었던 전쟁 선언, 조약 비준, 외교 협상 등의 외교권도 가졌으며, 원로원 의원 임명권 등 과거 감찰관이 맡던 여러 권한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황제는 종교 조직을 통제하였으며, 황제는 늘 최고 사제장(pontifex maximus)이며 네 가지 주요 사제단의 일원이었다. |
3658 | 70058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58 | 동고트 왕국 | 동고트 왕국(Ostrogothic Kingdom)은 493년 게르만족의 일파인 동고트족의 왕국으로, 정식 국호는 이탈리아 왕국()이다. 테오도릭 대왕이 동로마 제국의 황제 제논의 지원을 받아서, 로마를 점령한 게르만인 오도아케르를 몰아내고 건설하였다. 테오도릭 대왕은 이탈리아 왕을 자처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제논의 승인을 받지 못하였다. 552년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때에 장군 나르세스에 의해 정복되었다.
역사.
왕국 성립 이전.
고트족은 3세기 이전까지는 한 민족이었으나 그 때를 전후해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으로 나뉘었다. 두 부족은 로마인들이 마르스라 부른 전신을 숭배하는 등 문화적으로 동질했다. 3세기 무렵 서고트족은 로마 제국의 다키아 속주로 이주했고, 동고트족은 흑해 연안에 왕국을 건설했다.
370년대 훈족의 대두는 동고트족을 지배 민족에서 피지배민족으로 바꾸었다. 훈족의 침입에 맞서 당시 동고트 왕 에르마나리크는 몇 차례 용감하게 싸웠으나 결국 패배한 뒤 110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얼마 뒤 그의 후계자도 승산없는 훈족과의 전투를 벌이다가 죽었다. 서고트 왕 프리티게른(Fritigern)이 도나우 강 너머로 재이주할 것을 권유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동고트족은 발칸반도에서 훈족과 공존, 451년 샬롱(Chalons)의 전투에서처럼 훈족의 전쟁 도구로 사용되었다. 동고트족은 수차례에 걸쳐 반란을 일으켰으나 제압되었다. 훈족과의 교류에서 동고트족이 얻은 것이라고는 훈족의 기마문화를 도입하게 된 정도였다.
일부 사료에 따르면 고트어는 크림반도 일대에서 16세기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훈족 도래 이후.
동고트족의 기록된 역사는 아틸라의 죽음과 함께 훈족 지배가 붕괴되며 시작된다. 454년 동고트의 테오디미르(Theodimir) 왕은 아틸라의 아들들이 이끄는 훈족 군대를 네다오(Nedao)의 전투에서 싸워 승리했다.
동고트족인 이후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맺고 판노니아 속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5세기 후반동안 동고트족은 동로마 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테오도릭 대왕.
테오도릭 대왕은 네다오의 전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454년 테오데미르(Theodemir)의 아들로 태어났다. 테오도릭은 유년기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인질로 보내며 양질의 교육을 받았다. 테오도릭은 로마의 귀족 칭호와 집정관 직위 등 로마식 관직으로 치장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동고트족의 왕으로 행동했다.
488년, 테오도릭은 제논의 위임을 받고 이탈리아를 오도아케르로부터 수복하러 나서 493년 오도아케르의 수도였던 라벤나를 점령하고 손수 오도아케르를 죽였다. 동고트족의 지배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달마티아와 알프스 이남까지 미쳤으며, 기록에 따르면 이 전쟁중에 동-서고트족이 다시 합쳐지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세력의 정점에서 테오도릭이 툴루즈의 서고트 왕국의 섭정이 되며 그의 영향력은 갈리아의 많은 부분과 스페인 거의 전체에 미쳤다.
부이으(Vouille)의 전투에서 테오도릭의 사위인 알라릭 2세(Alaric II)가 전사한 이후 동고트의 왕은 그의 손자 알라마릭(Alamaric)의 보호자로서 스페인과 갈리아의 남은 고트 세력의 지배권을 유지하게 되었다. 테오도릭이 살아있는 동안 서고트족은 그 아래에서 연합해 있었고, 프랑크족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게르만 부족들을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테오도릭 치세의 동고트족은 헤르마나릭(Hermanaric) 때보다 더 넓은 판도를 펼쳤으나, 그 성격은 판이하게 달랐다. 테오도릭은 동고트족의 왕으로 있으면서 공식적인 황제 칭호를 받지 못한 서로마 제국의 계승자로 행동했다. 고트족과 로마인들은 이탈리아에서 서로 자신들의 법에 따라 다르게 지배받았다.
이 시대의 고트족은 이탈리아 북부에 주로 자리잡았으며, 남부에는 몇몇 진지를 설치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실권은 고트 왕에게 주어졌으나 로마에서는 아직도 명예직으로 집정관이 선출되었으며, 모든 로마의 옛 기관들이 계속 작동했다. 이 체제는 테오도릭 사후 무너지기 시작했다.
붕괴.
526년 테오도릭의 죽음과 함께 동-서 고트족은 다시 분열되었다. 알라마릭은 스페인과 셉티마니아(Septimania)의 고트 왕국을 계승했으며, 프로방스는 새로운 동고트 왕 아탈라릭에게 귀속되었다. 이후 동고트 왕국은 암살과 왕위 찬탈이 이어졌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동고트 내의 위기를 서로마 제국을 재건하려는 기회로 삼아, 535년 벨리사리우스에게 군권을 위임해 동고트 왕국을 공격하게 했다. 벨리사리우스는 빠르게 시칠리아를 점령하고 이탈리아에 상륙해 536년 나폴리와 로마를 점령했다. 이후 계속 북진해 밀라노와 동고트 수도 라벤나를 540년 점령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동고트 왕국을 이탈리아 북서부에 존속하게 하는 대신 재정의 절반을 넘기게 하는 것으로 강화를 맺었다. 벨리사리우스는 이 조치에 만족하지 않았고, 고트족들조차 그 뒤에 무슨 음모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으나 결국 그대로 교섭이 이루어졌다. 에라릭(Eraric)을 리더로 한 고트족의 귀족들은 패배한 왕 비티게스를 벨리사리우스에게 넘기고 그에게 왕위를 넘겼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이에 분노했다. 동로마 제국은 그때 동쪽으로부터 사산 제국의 공격을 받고 있었고, 유스타시아누스는 벨리사리우스를 페르시아 전선에 투입했다. 이탈리아는 동로마 제국의 장교인 존(John)에게 맡겨졌다.
545년 벨리사리우스가 이탈리아로 돌아왔을 때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에라릭은 살해되었고 고트 내의 친로마파는 무너져 있었다. 541년 고트족은 토틸라를 왕으로 뽑아 이탈리아 북부를 점령하고 동로마군을 로마에서 몰아낸 상태였다. 벨리사리우스는 토틸라를 맞아 공세로 들어갔으나, 그의 반란을 염려한 유스티니아누스가 지원과 보급을 끊어버려 수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548년 동고트 전선은 환관 장수 나르세스에게 넘겨졌다.
나르세스는 유스티니아누스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552년 타기나이의 전투에서 토틸라가 전사했고, 테이아, 알리게른(Aligern), 스키푸아르(Scipuar), 기발(Gibal) 등의 남은 고트 세력은 552년 혹은 553년 몬스 락타리우스의 전투에서 전멸했다. 고트 귀족 비딘(Widin)은 550년대에 고트 부흥운동을 펼쳤으나 결국 실패, 561년 혹은 562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압송되었다.
비딘의 실패를 끝으로 동고트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갈리아, 스페인, 그리고 롬바르드족이 지배한 이탈리아의 일부에서처럼 게르만과 로마적인 것이 융합한 국가는 태어나지 않았다.
문화.
고트어 문학으로 남은 것은 울필라스의 성경과 다른 종교적인 저작 일부 뿐이다. 고트족의 법률로는 500년 테오도릭의 칙령 (라틴어)와 로마인 재상 카시오도로스의 저작이 남아있다.
한편 이 시기 보에티우스가 철학의 위안을 집필했다. |
3662 | 36811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62 | 사이온지 긴모치 | 사이온지 긴모치(, 1849년 12월 7일 ~ 1940년 11월 24일)는 일본 제국의 정치인, 교육자이다. 일본의 공가 출신으로 제12·14대 내각총리대신, 정2위 대훈위 공작을 지냈다. 1924년에 마쓰카타 마사요시 사망 이후 최후의 원로로서 다이쇼 천황, 쇼와 천황을 보필했다. 그 밖에 교토에 위치한 리쓰메이칸 대학의 전신 '리쓰메이칸 사숙'을 설립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생애.
성장 과정.
사이온지는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 간인류(閑院流) 계열의 청화가(清華家) 중 하나인 도쿠다이지가(徳大寺家)의 제28대 당주이자 우대신이었던 도쿠다이지 긴이토(徳大寺公純)의 차남으로 태어나 4세에 사이온지가의 양자가 되어 가독을 상속했다. 두 가문의 서열 모두 청화가였고, 후지와라노 긴자네(藤原公実)를 시조로 한다. 친형 사네쓰네(実則)는 시종장을 3번 역임하고 내대신으로도 근무한 궁중의 실력자였다. 바로 밑의 동생 스미토모 도모이토(住友友純)는 재벌 스미토모가(住友家)의 데릴사위로 제15대 스미토모 기치자에몬의 이름을 계승해, 장기간 재계에 군림했다. 그리고 막내동생 스에히로 다케마로(末弘威麿)는 외가인 스에히로가(末弘家)를 이어, 후에 사립 교토 법정학교(현재의 리쓰메이칸 대학)의 간사, 이사를 맡았다.
유년기의 거주지가 어소(御所)와 가깝고, 사치노미야 황태자(후의 메이지 천황)과 나이도 비슷하여 종종 그의 놀이 상대로 부름을 받았다.
에도 막부 말기 · 메이지 유신.
이와쿠라 도모미나 산조 사네토미와 같은 에도 막부 말기에서의 정치적 공적은 거의 전무하다. 다만 도바-후시미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조정에서는 이를 도쿠가와가와 시마즈가의 사적인 싸움이라고 보는 의견이 나오던 중에 적극적인 관여주전론을 주장해 이와쿠라 도모미 등의 토막파 공경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이후 보신전쟁에는 산인도 진무총독, 아이즈구 정벌대참모로서 각지를 전전했고 그 후엔 에치고 부지사등을 역임했지만, 그 당시 10대의 젊은 나이로 임관이 가능했던 이유로 가문의 후광 이외의 것을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또, 공경 중에서 처음 양장 차림으로 궁중에 참내해, 상당수의 잔류 양이파 공경의 노여움을 산 에피소드도 자기 저서(陶庵随筆)에서 피력하고 있다.
작가 시바 료타로는 저서인 '화신'()에서 도막파 병학자 오무라 마스지로가 사이온지를 후계자로 보고 있었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마스지로에게 “당신은 군문 쪽으로 나가지 않는 게 좋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공가식의 이름인 긴모치를 싫어해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望一郎”로 개명하였다. 1871년 오무라의 추천을 받아 1871년 관비로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자 (후에 감액을 신청한다) 그에 대한 답례 방문을 하기 직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친구와의 대화가 길어진 사이 오무라 마스지로가 습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유학 당시의 편지에는 프랑스로 가는 배 안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일을 이해한 일이나, 백인소년에게 이별의 키스를 요청받아 당황했다는 에피소드 등이 실려있다. 이 시기에 일어난 파리 코뮌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다. 또한 클레망소(후의 프랑스 수상), 동료 유학생인 나카에 조민, 마쓰다 마사히사 등과 친교를 맺어 귀국 후까지 그 인맥을 이어갔다. 파리 유학에서 자유 사상을 접하고 자유민권운동에 심취하여 나카에 조민, 마쓰다 마사히사 등과 함께 1881년 3월 18일에 동양자유신문을 발행하지만 사이온지가 자유민권운동에 가담하는 것을 싫어한 정부의 압력에 의해 퇴사를 종용 받아 4월 30일 제34호까지만 발행된 후 폐간의 쓰라림을 맞게 된다.
정치가로서의 사이온지.
정치가로서의 경력은 1882년 헌법 조사를 위해 유럽을 순방한 이토 히로부미의 수행에서 시작된다. 유럽에서 이토의 지우를 얻은 사이온지는, 1900년 입헌정우회 개양에 참가해 1903년에는 총재가 되었다. 그 후 다이쇼 천황 즉위시에 원로의 반열에 올랐다.
사이온지의 사상은 자유주의(liberal)을 자칭하여 중의원에서의 다수파 정당이 내각을 조직하는 헌정의 상도를 관례로 여겼다. 또 프랑스 유학의 영향 탓인지 친유럽적인 면을 보여 군부등에서 국가주의에 반하는 사람으로 세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정치력이 없다는 견해도 있지만 야마가타 아리토모 사후의 일본에서 사이온지만큼의 정치력을 가진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궁중 재계와의 인척관계를 배경으로, 그는 원로로서 궁중과 국무, 군부의 조정역을 맡아 일본 정계를 이끌었다. 또 문부대신 재임 중에는 교육칙어를 개정하려 하는 등 쇼와 초기의 국가주의적 정치와는 거리를 둔 언행을 간간히 보이며 군부의 세력 확대에 저항했지만, 전쟁을 막아내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리쓰메이칸 대학에 기증한 편액에 사이온지 가문의 본성인 후지와라 성을 살려 후지와라 긴모치(藤原公望)로 서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이 천 년 이상 황실과 함께 했던 후지와라씨의 후손이라는 강한 의식이 있었고, 그것이 정치자세가 되었다. 즉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기 때문에 오류가 용서되지 않는 천황의 친정에 계속 반대했다. 이것은 다나카 기이치가 만주모중대사건의 상주의 불일치를 쇼와천황에 질책당해 내각이 총사직했을 때, 사이온지가 천황에 누를 끼치는 것을 구실로 천황에 의한 다나카에의 질책에 반대하고 있던 것으로 봐도 분명하다. 또, “입헌군주로서 신하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는다.”라는 쇼와 천황의 신조는 사이온지의 영향을 받은 면도 있으나 황도파 장교의 반감을 사기도 하였다.
제1차 호헌 운동.
제2차 사이온지 내각은 기반으로 하는 여당 정우회가 중의원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 것도 있었기에, 재무행정개혁에 착수했다. 1913년(다이쇼 2년)의 예산책정을 대상으로 세출 1할 삭감을 목표로 했지만, 육군은 2개 사단의 증설을 요구하고, 해군도 또한 전함 3척 건조를 예산안에 포함시켰다. 육군은 사이온지 내각을 전복시켜서라도 2개사단 증설을 달성하기 위해 분주했고, 내각이 끝까지 거부방침을 내타냈기에 우헤하라 유사쿠 육군대신은 천황에게 직접 사표를 제출했다.
육군대신에게는 직접 천황에게 상주하는 유막상주가 제도상 인정되고는 있었지만, 각료가 수상을 통하지 않고 직접 천황에게 사표를 제출한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또, 육군이 후임육상을 내지 않는 한 사이온지 내각은 육상을 얻지 못한 채 사임할 수밖에 없어, 당시 육상사임의 영향은 매우 컸다(군부대신 현역 무관제).
사이온지는 이후 다이쇼 천황에게 불려가 천황의 입에서 육상의 사표제출을 알게 되었다. 그는 후임의 육상에 대하여 육군의 실력자 야마가타 아리토모에게 상담했으나, 야마가타가 후임의 육상을 낼 생각이 없는 것을 헤아리자, 기선을 억제해 총사직했다.
정우회를 통하여 내각 총사직의 내막이 널리 알려지면서 국민들 사이에 갑자기 벌족타파, 헌정옹호의 기운이 높아져 제1차 호헌 운동이 일어났다. 정우회는 입헌 국민당의 이누카이 쓰요시등과 제휴해, 호헌 운동의 진두에서 사이온지 내각의 후임내각인 제3차 가쓰라 내각과 대립했다. 다만, 정국제휴나 국민을 향한 연설회등에 사이온지는 직접 터치하고 있지 않은 것 같고, 이것들은 정우회의 간부로 있던 히라 다카시나, 마쓰다 마사히사등과 국민당의 이누카이 쓰요시, 오자키 유키오가 중심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의회는 원래부터 정우회가 절대다수였으므로, 의회가 개시되자 정우회와 국민당은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해 가쓰라 내각은 궁지에 처했다. 거기에, 벌족측에서는 영국의 조지5세가 즉위한 때에, 즉위 직후인 것을 이유로 자유당과 보수당과의 정쟁을 금지하기위한 명령을 실현시켰다고 하는 이야기를 모방해, 흡사 다이쇼 천황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으므로 칙어를 내는 형태로 사이온지 긴모치에게 정쟁을 중지하도록 설득했다.
정우회에서는 천황의 의사라면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불신임안을 철회했고, 일단은 가쓰라 내각에 은혜를 배푸려는 의견이 한때 유력하게 되었지만, 이것에 국민당의 오자키 유키오가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이누카이 쓰요시의 조언으로 사이온지는 정우회 총재를 사임해, 정우회 자체는 끝까지 내각퇴진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 때에 해군의 야마모토 곤베에가 정우회 본부를 격려를 위해서 방문했다.
결국, 호헌 운동의 고조로 가쓰라 내각은 1913년 2월 11일에 총사직해, 동일 후계수상을 결정하기 위한 원로회의가 열렸다. 이때의 회의에는 사이온지도 처음 원로로서 출석했다. 그러나 정우회의 대표로서 출석은 결코 아니었다. 회의에서는 처음엔 사이온지가 후계수상에 추천되었지만, 이것을 받으면 칙어에 반하게 된다고 하여 사이온지는 사양했다. 결국, 후계수상은 야마모토 곤베에로 정해졌다.
쇼와.
1926년(쇼와 원년) 12월 28일, 황위를 계승한 직후의 쇼와 천황은 사이온지에게 특별히 칙어를 내려(대훈위 공작 사이온지긴모치에게 주는 칙어), 이것에 의해 사이온지가 유일한 원로로서 내각총리대신 주천의 직무를 떠맡는 것이 사실상 확립됐다. 그는 1940년, 요나이 미쓰마사 내각 탄생 전까지 어떠한 형태로든 내각수반 지명에 계속 관여하게 된다. 1936년의 2·26사건때는, 궐기장교의 일부가 사이온지 습격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습격을 주장하는 사람은 원로 사이온지를 군측의 간사한 수괴로 보고 있었던 것에 비해, 부정파는 천황과의 연결책으로 사이온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표면상 구실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도쿄 스루가타이의 본가 외에, 시즈오카현의 고텐바초의 우편선총별장, 같은 시즈오카현 오키쓰의 자교소, 교토의 세이후소우의 각 별장에 은둔생활을 하며, 원로로서 중심을 이루었다. 최후의 만 년이 되면, 피서를 위해서 고텐바에 체재하는 것 이외에는 일 년의 대부분을 겨울의 기온이 온화한 자교소에서 보내었다.
1937년의 고노에 후미마로 1차 내각 성립 이후엔 점차 정치 표면에서 물러나, 계속 반대했던 삼국(독일-이탈리아-일본) 군사동맹 성립 2개월 후에 사망했다. 기대를 걸었던 고노에게도 배반당해 그를 수상으로 추천한 일을 마지막까지 후회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도대체 어디로 나라를 끌고가는 것이냐”라고 전해진다.
1941년 고노에 내각의 두뇌를 맡던 손자 기미카즈가 조르게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당했다.
사이온지와 교육.
문부대신 시절의 사이온지는 교양있는 시민의 육성을 중시해, “과학, 영어, 여자 교육을 중시하라“고 천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1890년에 이노우에 다케시등이 만든 교육칙어에 반대해, 메이지 천황으로부터 교육칙어 개정허가를 얻은 것과 동시에, 제2차 교육칙어의 작성에 임했다. 이 2차 교육칙어의 초안은, 사이온지가로부터 리쓰메이칸 대학에 기증되어 현존하고 있다. 또, 아래의 교육기관 설립에도 관여하고 있다. |
3663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63 | 컴퓨터 바이러스 | 컴퓨터 바이러스(, )는 스스로를 복제하여 컴퓨터를 감염시키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복제 기능이 없는 다른 종류의 악성 코드, 애드웨어, 스파이웨어와 혼동하여 잘못 쓰이는 경우도 있다. 바이러스는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일부 형식의 실행 코드로) 확산할 수 있다. 이를테면 사용자는 인터넷이나 네트워크를 통하여, 또는 플로피 디스크, CD, DVD, USB 드라이브와 같은 이동식 매체를 통하여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네트워크 파일 시스템이나, 다른 컴퓨터를 통해 접근하는 파일 시스템 상의 파일을 감염시킴으로써 다른 컴퓨터로의 확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역사.
컴퓨터 바이러스 개념이 처음 사용된것은 1972년 SF소설 When Harlie Was One에서이다.
1970년대에 인터넷의 선구자인 아파넷에서 크리퍼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됐으며 이것이 최초의 바이러스로 기록되어 있다. 크리퍼는 실험적인 자기 복제 프로그램이었으며 1971년에 BBN에서 밥 토머스가 작성한 것이다. 크리퍼는 아파넷을 사용하여 TENEX 운영 체제를 사용하는 DEC PDP-10 컴퓨터들을 감염시켰다. 크리퍼는 아파넷을 통한 접근 권한을 얻었고 스스로를 "I'm the creeper, catch me if you can!"(나는 크리퍼다, 잡을 수 있다면 나 잡아봐라!)라는 메시지가 있는 원격 시스템에 복사시켰다. 뒤에 리퍼(Reaper)라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크리퍼 바이러스를 지우게 되었다.
개인용 컴퓨터에서 발견된 최초의 바이러스는 (c)브레인이라고 하는 부트 섹터 바이러스였으며 1986년에 파루크 앨비 형제가 만들었다.
1990년대 중반에 매크로 바이러스가 일상화되었다. 이 바이러스 대부분이 워드와 액셀과 같은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을 위한 스크립팅 언어로 기록되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통하여 문서와 스프레드시트를 감염시키며 퍼져나갔다. 워드와 액셀이 OS X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이 대부분이 매킨토시 컴퓨터에도 퍼질 수 있었다.
2002년에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을 사용하여 확산된 바이러스가 처음 보고되었으며 학술적으로는 2005년에 증명되었다. 마이스페이스와 야후와 같은 웹사이트를 통한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 바이러스의 여러 사례가 있었다.
감염 과정.
스스로를 복제하려면 바이러스는 코드 실행과 메모리로의 기록을 허가받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수많은 바이러스들은 정상적인 프로그램들의 일부일 수 있는 실행 파일에 스스로 첨부해 들어간다. 사용자가 감염된 프로그램을 실행하려고 하면 바이러스 코드가 동시에 실행될 수 있다. 바이러스들은 실행될 때 두 가지 종류로 나뉠 수 있다. 비상주 바이러스들은 즉시 감염될 수 있는 다른 호스트들을 찾아 대상을 감염시키며 끝내 감염된 응용 프로그램에 제어권을 넘긴다. 상주 바이러스들은 이들이 위치한 호스트를 검색하지 않으나 실행을 할 때 스스로를 메모리에 상주시켜 호스트 프로그램에 제어권을 넘긴다. 바이러스는 백그라운드 환경에서 동작하며 이 파일들이 다른 프로그램이나 운영 체제 자체에서 접근하면 새로운 호스트들을 감염시켜 버린다.
비상주 바이러스.
비상주 바이러스는 검색자 모듈(finder module)과 복제 모듈(replication module)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검색자 모듈은 감염을 시킬 새로운 파일들을 찾는 데 치중한다. 검색자 모듈이 각 새로운 실행 파일과 마주치면 복제 모듈을 호출하여 해당 파일을 감염시킨다.
상주 바이러스.
상주 바이러스는 비상주 바이러스가 이용하는 것과 비슷한 복제 모듈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듈은 검색자 모듈을 통해 호출되지 않는다. 이 바이러스는 일단 실행하게 되면 복제 모듈을 메모리에 상주시키며 운영 체제가 특정한 운영을 수행하기 위해 호출될 때마다 이 모듈이 실행하게끔 한다. 이 복제 모듈은 이를테면 운영 체제가 파일을 실행할 때마다 호출된다. 이 경우 바이러스는 컴퓨터 상에서 실행되는 정상적인 모든 프로그램들을 감염시킨다.
상주 바이러스는 빠른 감염자(fast infector)와 느린 감염자(slow infector)로 나뉘기도 한다. 빠른 감염자는 가능한 많은 파일에 감염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이를테면 빠른 감염자는 접근을 하는 모든 잠재적인 호스트 파일을 감염시킬 수 있다. 바이러스 검사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을 때에는 특별한 문제를 드러내게 되는데, 이는 시스템 전체 검색시 바이러스 검사 프로그램이 컴퓨터 상의 잠재적인 모든 호스트 파일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검사 프로그램이 이러한 바이러스가 메모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면 바이러스는 바이러스 검사 프로그램에 타고 올라가 바이러스 검사를 받는 모든 파일들을 감염시켜버린다. 빠른 검색자는 바이러스가 빨리 퍼지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방식에서 보이는 단점은 수많은 파일을 감염시킬 때 이를 빨리 감지해낼 수 있다는 점인데 그 까닭은 바이러스가 컴퓨터를 느리게 만들거나 바이러스 검사 소프트웨어가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의심스런 동작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한편 느린 감염자는 비정기적으로 호스트를 감염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테면 일부 느린 감염자는 일들이 복사될 때 파일을 감염시키기만 한다. 느린 감염자는 이러한 동작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감지를 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들은 컴퓨터를 눈에 띄게 느리게 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프로그램에 의한 의심스러운 동작을 바이러스 검사 프로그램이 감지할 때 비정기적으로 바이러스 검사 프로그램이 뜨게 만든다. 그러나 이 느린 감염자 접근은 매우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감염되는 위치.
바이러스가 감염되는 위치는 아래와 같다. 아래의 내용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취약성과 대응책.
바이러스에 대한 운영 체제의 취약성.
생물의 개체 하나하나가 유전자 다양성을 지니고 있어서 질병으로 인하여 죽어갈 가능성을 줄인 것 같이 네트워크 상의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다양성도 이와 비슷하게 바이러스가 벌이는 잠재적인 파괴를 제한한다.
이것이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데스크톱 운영 체제와 오피스 제품군의 시장 우위를 차지하였던 1990년대에 특별한 개념이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같은 네트워킹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특히 바이러스 확산에 취약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는 데스크톱 시장의 주도성으로 바이러스 제작자들이 표적으로 삼았고 바이러스 제작자가 이용하는 허점과 수많은 오류를 비롯하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통합형, 개별형 마이크로소프트 응용 프로그램들(이를테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과 파일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스크립팅 언어로 된 응용 프로그램(이를테면 비주얼 베이직 스크립트 및 네트워킹 기능이 있는 응용 프로그램)이 특히 취약하다.
윈도우가 이제껏 바이러스 제작자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운영 체제가 되었지만 일부 바이러스는 아직도 다른 운영 체제에 존재한다. 서드 파티 프로그램이 실행하는 것을 허용하는 운영 체제는 이론적으로 바이러스를 실행할 수 있다. 일부 운영 체제는 다른 운영 체제에 비해 덜 안정적이다. 유닉스 기반 운영 체제 (및 윈도 NT 기반 플랫폼의 NTFS 인식 프로그램)는 사용자들이 보호된 메모리 공간 안에서만 실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인터넷 기반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특정한 단추를 눌러 바이러스를 다운로드하는 사례가 있었음을 밝혀내었다. 보안 분석가 디디에 스티븐스(Didier Stevens)는 6개월 동안 구글 애드워즈에 "Is your PC virus-free? Get it infected here!"(여러분의 PC는 바이러스에서 해방되어 있습니까? 이 곳에서 감염되어 보십시오)라며 광고 운동을 벌였다. 결과는 무려 409번 클릭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역할.
소프트웨어가 시스템 리소스의 허가되지 않은 이용을 막기 위한 특별한 기능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수많은 바이러스들은 확산을 위하여 시스템이나 응용 프로그램 안의 소프트웨어 버그를 이용하여야 한다. 수많은 버그를 양산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전략은 일반적으로 잠재적인 악의적 이용을 부추길 수 있다.
바이러스 검사 소프트웨어 및 기타 방지 대책.
수많은 사용자들은 실행 파일을 다운로드 받거나 실행한 뒤에, 알려져 있는 바이러스를 찾아내어 없앨 수 있는 바이러스 검사 소프트웨어를 설치한다. 바이러스 검사 소프트웨어가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로는 가장 흔한 바이러스 검사 방식으로, 바이러스 서명 정의 목록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컴퓨터 메모리의 내용(램, 시동 섹터), 고정 및 이동식 드라이브(하드 드라이브, 플로피 드라이브)에 저장된 파일을 검사하고 알려진 바이러스의 서명 데이터베이스와 해당 파일을 비교함으로써 수행하게 된다. 이 감지 방식의 단점으로는 사용자가 최신 바이러스 정의 업데이트에 속한 바이러스로부터만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으로는 발견적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컴퓨터 행위에 따라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 방식은 보안 회사가 서명을 작성할 바이러스까지도 검색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일부 바이러스 검사 프로그램은 비슷한 방식으로 '눈에 보이는' 보낸 편지, 받은 편지뿐 아니라 열려 있는 파일을 검사할 수 있다. 이를 "실시간 검사"(on-access scanning)라고 부른다. 사용자들은 소프트웨어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여 보안 허점을 보완하여야 한다. 바이러스 검사 소프트웨어는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여 최신 위협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한다.
복구 방식.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더럽혀지면 완전히 운영 체제를 다시 설치하지 않고서는 일반적으로 같은 컴퓨터를 사용하여 계속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 그러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렸어도 이에 대비한 복구 옵션이 수없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능은 바이러스의 종류의 심각성에 따라 달라진다.
바이러스 제거.
윈도우 미, 윈도우 XP, 윈도우 비스타, 윈도우 7, 윈도우 8에는 시스템 복원이라는 도구가 있어서 레지스트리와 중요한 시스템 파일을 이전 검사 지점으로 돌릴 수 있다. 바이러스가 시스템을 붙잡아 컴퓨터 전원을 강제로 껐다 켜면 그 즉시 시스템 복원을 보여 줄 것이다. 바이러스가 복원 파일을 손상시키지 않았고 이전 복원 지점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면 이전 날의 복원 지점을 선택해도 무관하다. 그러나 일부 바이러스들은 시스템 복원과 다른 중요한 도구(작업 관리자, 명령 프롬프트)를 사용하지 못 하게 만드니 주의하는 것이 좋다.
운영 체제 다시 설치.
운영 체제를 다시 설치하는 것 또한 바이러스 제거의 다른 방안이다. 단순히 운영 체제 파티션을 다시 포맷하고 원본 매체로부터 운영 체제를 설치하거나, 깨끗한 백업 이미지의 파티션의 이미지 복제 과정을 동반한다. 이 방식은 단순하면서도 별도로 바이러스 검사를 하는 것보다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악성 코드를 모두 제거한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
개인용 컴퓨터 바이러스.
스스로 복제를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트로이 목마로 불리며, 프로그램 복제가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감염되는 경우는 컴퓨터 웜으로 불린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숙주인 컴퓨터 내부에서만 증식을 하는 악성코드를 바이러스라고 하며, 숙주 컴퓨터가 필요 없이 네트워크상에서 계속 증식이 가능한 악성 코드를 웜이라고 한다. 요즈음은 웜과 바이러스의 특징을 결합하여 프로그램에 기생하며 네트워크로도 감염시키는 웜 바이러스들도 많이 생겼다.
시동 바이러스.
시동 바이러스(boot virus)는 컴퓨터를 처음 시동할 때 실행되는 시동 프로그램에 기생하는 컴퓨터 바이러스이다. 시동 바이러스는 일단 감염이 되면 시동 프로그램에 자리잡게 된다. 그렇게 되면 컴퓨터를 처음 시동하고 그 뒤에 디스크 시동을 시작하는 순간 해당 바이러스도 메모리 상주 형식으로 같이 활동을 하면서 시동을 방해하는 등의 작용을 한다. 대표적인 시동 바이러스는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브레인 바이러스, LBC 돌 바이러스 등이 있다.
만일 시동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면 아래와 같은 조치를 취하면 된다.
예루살렘 바이러스.
컴퓨터에 잠복해 있다가 13일의 금요일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바이러스다.
EXE, COM 등의 확장자가 있는 실행프로그램을 파괴하는 것이 특징이다. |
3665 | 50721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65 | 장 시메옹 샤르댕 | 장 시메옹 샤르댕(Jean Siméon Chardin, 1699년 11월 2일 - 1779년 12월 6일)은 18세기 프랑스의 화가이다.
생애.
샤르댕은 1699년 파리에서 목수인 아버지 장과 어머니 잔 프랑스와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례명 시메옹이며, 간간히 장-바티스트로 작품에 서명을 남겼다. 그는 일찍부터 그림그리기에 관심과 재주을 보여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미술학원 상-뤽 아카데미 ("Saint-Luc Académie")에 보낸다. 시메옹은 여기서 색채를 섞고 칠하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기술을 익히게 되며, 이 화법은 후에 샤르댕의 작품에서 역력히 그 흔적을 남기게 된다. 미술학원에서 장인 자격증을 취득한 후, 샤르댕은 아직 화가로서의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여러 군데 사설학원의 실습과정에 등록하여 화법을 개선하는 데 노력한다.
1728년 젊은 화가들의 전시회에 샤르댕은 여러 작품을 출품하여 화단의 주목을 받게되며, 이를 계기로 같은 해 9월 25일 예술 아카데미에 자신의 작품을 선을 보여 곧바로 분과회원으로 가입된다. 회원가입에서 샤르댕은 동물과 과실의 기교화가라는 별명을 얻게 되지만, 그의 작품은 실제로 이 지칭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
작품경향과 영향.
세잔이 말년에 인상주의 화풍에서 점차 멀어지면서 중점적으로 정물화를 (약 200여 점) 그린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세잔은 아직 인상주의 화가 마네와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영향 밑에서 세잔 고유의 정물화 세계를 발견하였지만, 역사적으로 세잔의 정물화는 샤르댕의 정물화 없이는 생겨날 수 없었다. 1860년에 에콜 프랑스 (L'Ecole française)에 총 41점의 샤르댕의 정물화와 인물화가 전시됨으로써 처음으로 샤르댕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여기에서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화가들 프랑수아 보뱅, 필리프 루소, 앙투안 볼롱 등이 적지 않은 감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63년 공쿠르 형제가 예술잡지 가제트에 샤르댕에 관해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샤르댕은 19세기 말에 프랑스 화단에서 재발견 및 평가되었으며, 특히 루브르 박물관에서 샤르댕의 작품 구입에 결정적인 동기를 주었다.
대표작.
그의 입선작 <붉은 가오리>는 주제는 빈약하나, 강렬한 색채와 미묘한 구성이 그 위대성을 나타낸 작품이다. 그 후 그는 성실과 정적에 가득 찬 프랑스 사람들의 가정 생활을 그렸다. 필치는 면밀하고 무게가 있으며, 화면은 기름지고 풍부하여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풍긴다. 색채도 교묘히 사용하여 명암의 색조를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작품에는 <아침 기도> <가르다의 성> 등이 있다. |
3666 | 613908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66 | 샤르댕 | 샤르댕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
3667 | 104768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67 | 장 밥티스트 샤르댕 | |
3668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68 | 101년 | |
3669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69 | 102년 | |
3670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70 | 103년 | |
3671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71 | 104년 | |
3672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72 | 105년 | |
3673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73 | 106년 | |
3674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74 | 107년 | |
3675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75 | 108년 | |
3676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76 | 109년 | |
3677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77 | 110년 | |
3678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78 | 111년 | |
3679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79 | 112년 | |
3680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80 | 113년 | |
3681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81 | 114년 | |
3682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82 | 115년 | |
3683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83 | 116년 | |
3684 | 74200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84 | 117년 | |
3685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85 | 118년 | |
3686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86 | 119년 | 탄생.
고구려(高句麗)의 9대 국왕 고국천왕(高國天王) |
3687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87 | 120년 | |
3688 | 36811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88 | 대한민국의 훈장 | 대한민국의 훈장(大韓民國勳章)은 상훈법 제2조 (서훈의 원칙)에 따르면, "대한민국 훈장 및 포장"의 줄임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나 우방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로를 세운 자에게 수여한다.
개요.
대한민국의 훈장제도는 1900년에 '훈장조례'(칙령)를 공포하여 최초로 훈장제도가 시행되었다.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대통령령으로 '건국공로훈장령'·'무궁화대훈장령'·'무공훈장령'·'문화훈장령' 등을 종류별로 공포, 시행하여 왔다.제3공화국 이후 여러 차례 '상훈법'을 개정했다. 현행 상훈법은 1988년 8월에 개정한 것이다.
상훈법은 훈장과 포장을 함께 규정하고 있다. 훈장의 서훈기준(敍勳基準)은 서훈대상자의 공적내용, 그 공적이 국가·사회에 미친 효과의 정도 및 지지 기타 사항을 참작하여 결정하며, 동일한 공적에 대하여는 훈장을 거듭 수여하지 않는다. 서훈의 추천은 원·부·처·청의 장과 국회사무청장·법원행정처장·감사원장·국가안전기획부장·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행하되, 청의 장은 소속장관을 거쳐서 추천한다.서훈대상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한다. 훈장의 제식(制式)과 규격은 무궁화대훈장은 경식훈장(頸飾勳章)과대수(大綬)로 된 정장(正章) 및 부장(副長)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 약장(略章) 및 금장(襟章)을 둘 수 있다.기타 훈장은 1등급은 대수, 2·3등급은 중수, 4·5등급은 소수(小綬)로 되어 있다. 포장은 소수이며 정장·약장 및 금장이 있다. 훈장은 대통령이 친수(親授)함을 원칙으로 하나 예외적으로 전수(傳授)할 수 있고, 훈장에는 부상(副賞)을 병수(倂授)할 수 있다. 훈장은 본인에 한하여 종신 패용할 수 있고, 사후에는 그 유족이 보존하되 패용하지는 못한다.훈장을 받은 자가 훈장을 분실하거나 파손한 때에는 유상(有償)의 공적이 허위임이 판명된 때, 훈장을 받은 자가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하고 형을 받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때, 훈장을 받은 자가 사형,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의 형을 받은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죄를 범한 때에는 그 서훈을 취소하며, 훈장과 이에 관련하여 수여한 물건과 금전은 몰수하고 외국훈장은 그 패용을 금지한다.
종류.
무궁화대훈장.
무궁화대훈장(無窮花大勳章, Grand Order of Mugunghwa)은 대통령 및 그 배우자, 우방국의 국가원수 및 그 배우자 또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안전보장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전직 우방국 국가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 수여하며 등급은 없다.
건국훈장.
건국훈장(建國勳章,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
국민훈장.
국민훈장(國民勳章, Order of Civil Merit)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적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
무공훈장.
무공훈장(武功勳章, Order of Military Merit)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한다.
근정훈장.
근정훈장(勤政勳章, Order of Service Merit)은 공무원(군인 및 군무원을 제외) 및 사립학교의 교직원으로서 직무에 정려하여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
보국훈장.
보국훈장(保國勳章, Order of National Security Merit)은 국가 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한다.
수교훈장.
수교훈장(修交勳章, Order of Diplomatic Service Merit)은 국권의 신장 및 우방과의 친선에 공헌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 수교훈장은 5등급으로 나뉘며 1등급 중 광화대장은 외국의 수상급 이상, 광화장은 대사급 이상자에게 수여한다.
산업훈장.
산업훈장(産業勳章, Order of Industrial Service Merit)은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
새마을훈장.
새마을훈장(새마을勳章, Order of Saemaeul Service Merit)은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
문화훈장.
문화훈장(文化勳章, Order of Cultural Merit)은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문화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
체육훈장.
체육훈장(體育勳章, Order of Sport Merit)은 체육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체육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
과학기술훈장.
과학기술훈장(科學技術勳章, Order of Science and Technological Merit)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
포상 후보 절차 및 선정 기준.
정부 서훈절차는 추천기관에서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행정안전부에 대상자를 추천하면 행정안전부에서 이를 심사하여 차관회의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수상대상자를 확정하고 친수 또는 전수함으로써 완료된다.
수여증명 및 재교부.
훈장 및 포장을 수여하면 수여사실이 수여대장(훈기부)에 기록되며, 이에 의하여 훈장증서 등의 증서를 분실한 경우 신청에 의거 수여증명서를 발급하며 훈장증 등의 증서의 재발급은 하지 않는다.
훈장을 분실한 경우 신청에 의거 신청자의 비용 부담으로 재교부한다.
구조.
정장.
정장(正章, Badge)은 약식이 아닌 정식으로된 훈장으로써, 훈격에 따라 훈장을 묶는 끈인 수(綬)에 달아 패용한다. 1등급 훈장과 건국 훈장 대통령장, 수교 훈장 흥인장은 대수(大綬)에 묶어 어깨에 메고, 3등급 훈장과 국민ㆍ무공ㆍ근정ㆍ보국ㆍ산업ㆍ새마을ㆍ문화ㆍ체육ㆍ과학 기술 훈장의 2등급 훈장은 중수(中綬)에 묶어 목에 걸고, 나머지 훈장 4~5등급과 포장은 소수(小綬)에 묶어 가슴에 단다.
부장.
부장(副章, Star)은 수가 없는 휘장으로, 윗옷의 왼가슴에 직접 단다.
약장.
약장(略章, Libbon)은 훈장을 약식하여 가슴 오른편 주머니 위에 단다. 무궁화대훈장은 약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금장.
금장(襟章, Lapel Badge)은 약장보다도 작은 휘장으로, 옷깃에 단다. 무궁화대훈장의 금장은 둥근꼴이고, 나머지는 네모나다.
경식장.
경식장(頸飾章, Collar Decoration)은 무궁화대훈장에만 있는 장신구로 목에 메는 형태이다.
패용방법과 위치.
한 개의 훈장을 패용할 경우.
대수로 된 훈장(모든 1등급훈장, 2등급건국훈장 및 2등급수교훈장)은 대수로 된 정장을 오른편 어깨에서 왼편 가슴 아래로 두르며 부장은 왼편 가슴에 단다. 부장이 있는 중수로 된 훈장(2등급훈장과 건국훈장 3등급)은 정장이 가슴 중앙에 오도록 중수를 목에 걸고, 부장은 왼편 가슴에 단다. 부장이 없는 중수로 된 훈장(3등급훈장)은 정장이 가슴 중앙에 오도록 중수를 목에 건다. 소수로 된 훈장 및 포장(4등급 및 5등급 훈장과 포장)은 소수로 된 정장을 왼편 가슴에 단다.
여러 개의 훈장을 동시에 패용할 경우.
2개 이상의 대수 또는 부장이 있는 중수로 된 훈장(1등급 및 2등급)은 그 중 하나의 정장 및 부장을 패용하고, 기타는 좌측 가슴에 부장만을 순차로 패용한다. 2개 이상의 부장이 없는 중수로 된 훈장(3등급)은 그중 하나의 정장만을 패용하고 기타는 그 수를 역삼각형(▽)으로 축소하여 좌측 가슴에 순차로 패용한다(수의 축소방법은 수의 폭을 1변으로 하여 정삼각형으로 접되 무늬가 좌로 내려가도록 한다). 소수로 된 훈장을 2개이상 패용할 경우(4등급, 5등급, 6등급훈장 및 포장)에는 그 패용순위에 따라 좌측 가슴에 순차로 패용한다.
금장을 패용할 경우.
금장은 왼편 옷깃에 패용하며, 2개이상의 금장을 받은 경우 그중 하나만 패용한다.
약장을 패용할 경우.
약장(ribbon)은 좌측 가슴 호주머니 위에 패용한다. 2개이상의 약장을 패용할 경우에는 그 순위에 따라 패용한다. 동일종류, 동일등급 복수약장과 단수약장을 동시에 패용할 때에는 복수 약장을 선순위로 패용한다. 15개 이상의 약장을 패용할 때에는 축소한 약장을 패용할 수 있다.
훈장 규격의 축소.
훈장은 필요한 경우 그 원형의 1/2비율로 축소할 수 있다. 축소훈장의 교부를 받고자 하는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신청하며 제작비는 본인이 부담하여야 한다. 대수 또는 중수로 된 1등급 및 2등급훈장과 건국훈장 3등급은 정장과 수는 축소할 수 없으나 부장 및 약장은 그 원형의 1/2비율로 축소할 수 있다.
건국훈장 3등급을 제외한 3등급훈장은 정장은 축소할 수 없으나 수만을 삼각형(△)으로 축소하며,약장은 그 원형의 1/2비율로 축소할 수 있다. 수의 축소방법은 수폭의 길이를 1변으로 하여 정삼각형으로 접어 무늬가 우에서 좌로 내려가도록 한다. 4등급 및 5등급 훈장은 정장과 약장을 그 원형의 1/2비율로 축소할 수 있다.
포장.
포장은 훈장 다음가는 훈격이다.
논란.
훈격 저하 논란.
근정훈장의 경우 단순히 비리 등으로 처벌받지 않고 근속 연수만 채우면 퇴직할 경우 당연히 수여받게 되어 훈격이 떨어진다는 논란이 있다. 행정안전부는 규정을 강화하고 훈장이 민간인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인권침해 사건 관련자 서훈 논란.
울릉도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된 수사관이나 검사가 '간첩을 체포한 공로'로 보국훈장을 수여받았고, 2010년에 조작으로 판명된 이후에도 서훈이 취소되지 않았다는 논란이 있다. 이외에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자들에 대해서도 표창이 수여되었고, 형제복지원 원장과 간첩 조작 사건 연루자들에게도 표창이 수여되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부적절한 서훈 취소(안)'을 심의·의결해 훈장 21점, 포장 4점, 대통령 표창 17점, 국무총리 표창 14점 등 총 56점에 대해 서훈을 취소시켰다. 행정안전부는 앞으로도 부적절한 서훈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취소함으로써 정부 포상의 영예를 높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부적격 일본인 수교훈장 수여 논란.
수교 이후 2013년까지 일본인의 수교훈장 수훈자는 326명이었는데 일본의 한국인 수교훈장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남발되었다. 그리고 326명 가운데 일본제국주의와 관련되었거나 야스쿠니 신사참배, 독도망언을 한 12명은 받아서는 안되는 부적격자였다. 국민정서의 고려나 일정한 법적 기준도 없이 수여하는 방식도 정권에 따라, 정무적 판단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었다. |
3689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89 | 레오니드 레빈 | 레오니드 아나톨리에비치 레빈(, , , 1948년 11월 2일 ~ )은 소비에트 연방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현 우크라이나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에서 출생한 전산학자, 수학자이다. 안드레이 콜모고로프의 제자였다. 1978년에 미국 국적을 얻어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전산학의 이론적 기반을 연구하면서 계산이론, 정보 이론 등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스티븐 쿡이 발견한 NP-완전을 1973년에 독자적으로 발견했다. ‘쿡의 정리’ 혹은 ‘쿡-레빈 정리’라고 부르는 이 정리는 전산학 분야의 획기적 발견이며, 계산 복잡도 이론의 중요한 이론적 기반이다.
읽어보기.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책에서 한 장(chapter)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
3691 | 613908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91 | 다윈 | 다윈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인명.
초고의* 빌럼 다윈 |
3692 | 5668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92 | 그레고르 멘델 | |
3693 | 65024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93 | 프로메테우스 | 프로메테우스(, )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의 신들보다 한 세대 앞서는 티탄족에 속하는 신이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 선지자(先知者)'라는 뜻이다. 티탄 족인 이아페토스의 아들이며, 아틀라스, 에피메테우스, 메노이티오스, 헤스페로스와 형제였다.
대양신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인 님프 클리메네 혹은 아시아가 그의 어머니라 하며, 아내는 그의 이모이자 사촌인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 헤시오네이다. 일설에는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다른 딸인 아시아가 그의 아내라고도 한다. 아들은 데우칼리온이다.
헤시오도스 《신통기》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제 1세대 티탄족인 이아페토스와 바다의 요정인 클리메네(혹은 아시아) 사이 탄생하였다. 프로메테우스는 본디 티탄 신들의 심부름꾼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그와 제우스 사이 벌어진 권력 다툼이다. 아래에서 볼 권력 다툼은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철학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다.
프로메테우스의 신화.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인간이 신에게 바칠 제물을 두고서 신과 협정을 맺을 때, 소의 뼈를 가지런히 정렬하여 이를 윤기가 흐르는 비계로 감싸고, 살코기와 내장을 가죽으로 감싸 제우스 신에게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선택하게 하였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의 계락을 간파한 제우스는 분노하여 인류에게서 불을 빼앗았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속이고 꺼지지 않는 불을 회양목 안에 넣어 인간에게 몰래 주었다.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를 만들어 그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행동한 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에게 보내고, 프로메테우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피메테우스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 사건이 발생하여 인류에게 재앙이 찾아오게 된다.
또 그는 예언하는 능력을 갖추었는데, 제우스가 자신의 미래를 묻자 이를 알려주길 거부하였고, 이 때문에 제우스의 분노를 사 코카서스 산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게 되었다. 후일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죽이고 그를 구해 주었다. 헤라클레스가 12과업을 할 때 아틀라스의 꾐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 게 프로메테우스라고도 한다. |
3694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94 |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프로메테우스 신에 관한 고대 그리스 작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작품이다. 그리스 비극은 3부작으로 공연되기 때문에, 이야기 줄거리상 첫편에 해당한다.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불을 옮기는 프로메테우스”의 2편이 이어질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2편은 사라져 버렸으며, 현대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이 작품은 아이킬로스 사후에 다른 작가가 완성했거나 썼다고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상연 연대도 불분명하며, 기원전 478년 이전에 상연되었다는 설과 만년의 기원전 460년설이 있다.
이야기의 시작.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흙 속에 인류의 씨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흙을 강물에 반죽해 인간을 창조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가져다준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이 불을 통해 원시 세계에서 문명 세계로 이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문명에 이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불을 숨겨 버렸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올리브 가지를 꺾어 태양 마차에 가까이 다가가 이글거리는 불길에 나뭇가지를 내밀어 불을 붙였고, 땅에 내려와 이 불씨를 인간들에게 전해 주었다. 제우스는 화가 났지만 불을 도로 빼앗아 올 수는 없었기에, 자신의 명을 거역하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를 처벌했다. 그는 헤파이스토스와 시종들에게 프로메테우스를 스키타이의 황량한 벌판으로 끌고 가서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 놓으라고 명하고, 매일 독수리 한 마리를 보내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게 했다. 헤파이스토스는 아버지 제우스의 명령을 마지못해 집행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기와는 동족이자 같은 항렬에 속하는 신의 후예요 자신의 증조부인 우라노스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아이스킬로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가 시작된다.
독재와 자유의 영원한 대립.
이 작품의 선행 신화에 드러나고 있듯이,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의 창조자이며, 인간들이 불을 통해 문명의 시대를 열게 했던 장본인이다. 또한 그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제우스의 명을 거역하고 독재에 항거했던 인물이다. 그리하여 그는 수많은 예술 작품에서 불굴의 의지로 기존의 권력과 독재에 항거하면서 자유를 수호하고 인류의 존엄성을 부각시키는 인물로 형상화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의 표상이다.
반면,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휘두르는 막강한 독재자로 군림하는 제우스에게는 합의에 기반을 둔 정당한 법조차도 무용지물이다. 제우스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독재자다. 정의와 불의는 그의 뜻에 따르는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행위의 정당성과 부당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제우스에게는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과 인간을 벌하는 것이 정의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에게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정의다. 이 작품은 권력을 휘두르는 제우스를 영웅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대항해 고통을 자초한 프로메테우스를 영웅으로 제시한다. 즉 고통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존의 권력에 대항하고 약자인 인간의 편을 드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에서 이 둘은 헤라클레스의 출현을 통해 마침내 화해하는 것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의 화해는 피상적이며, 마지못해 하는 것이다.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제우스에게 구현된 독재와 프로메테우스로 대변되는 자유는 영원히 대립하는 성질의 것이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독재와 자유의 영원한 대립을 그리고 있다. |
3695 | 36811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95 | 원자 질량 | 원자 질량(原子質量, "m"a)은 원자의 질량이다. 단위는 결합이 없는 안정한 상태의 탄소-12 원자 질량의 1/12을 1u로 정의한 원자 질량 단위(原子質量單位, 기호: u, Da)를 사용한다. 원자들의 대부분의 질량은 원자핵의 양성자와 중성자가 차지하고 그 값은 질량수에 근접한다.
원자 질량을 원자질량단위로 나누어 순수한 수 비율을 만들 때, 원자의 원자 질량은 상대 동위 원소 질량이라고 불리는 무차원수(無次元數)가 된다. 이와 같이 탄소-12 원자의 원자 질량은 12 u 또는 12 Da 이고 탄소-12 원자의 상대 동위 원소 질량은 단순히 12로만 표현한다.
원자 질량 또는 상대 동위원소 질량은 단일 입자의 질량이며 근본적으로 원자량(原子量), 표준 원자량(기호: "A"r)와는 다르다. 둘 다 원소 표본에 대한 자연 상태 원자의 수학적 평균치이며 1 u 로 나누었기 때문에 무차원 수이다. 대부분의 원소들은 하나 이상의 안정된 핵종(核種)을 가진다. 원소들의 각 핵종들이 다른 질량을 가지기 때문에 이 원소들에 대한 평균치는 원소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핵종들의 혼합비에 의존한다. 샘플의 공급원에 따라 이 값은 어느 정도 제한(표준 원자량이라고 하는 값을 설정)된다. 대조적으로 원자 질량은 각각의 입자 종과 관계가 있다. 같은 종류의 원자들은 동일하기 때문에 원자 질량 수치는 변화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원자 질량 수치는 보통 원자량보다 더 많은 유효숫자(有效數字)를 포함한다. 표준 원자량은 각 원소의 동위 원소들의 존재비에 대한 원자 질량과 관계가 있고, 대개 존재비가 가장 큰 동위 원소의 원자 질량과 거의 같은 값이다.
원자, 이온 또는 원자핵의 원자 질량은 결합 에너지 손실에 의해 그들의 구성요소인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전자들의 질량합보다 약간 작다.
상대 동위 원소 질량.
상대 동위 원소 질량은 탄소-12 원자의 질량을 12로 설정하였을 때 주어진 동위 원소의 질량에 대한 상대치이다.
상대 동위 원소 질량은 원자 질량이 원자 질량 단위으로 표기될 때 같은 수치를 가진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두 개념의 유일한 차이점은 상대 동위원소 질량은 단위가 없는 순수한 숫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단위의 상실은 탄소-12 원자를 표준으로 하여 그 비율을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 동위원소 질량"에서 "상대"의 단어는 위의 <chem>^{12}_{6}C</chem> 원자에 대한 상대 척도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chem>^{12}_{6}C</chem> 원자의 상대 동위 원소 질량 은 정확히 12이다. 이와 비교하여, <chem>^{12}_{6}C</chem> 원자의 원자 질량은 정확히 12 Da 또는 12 u이며 <chem>^{12}_{6}C</chem> 원자의 원자 질량은 1.66 x 10−27 kg 과 같이 다른 단위로도 표현할 수 있다.
<chem>^{12}_{6}C</chem> 원자 이외의 핵종은 자연수 값의 상대 동위 원소 질량을 갖지 않는다. u 또는 Da 로 표현된 핵종도 마찬가지로 <chem>^{12}_{6}C</chem> 원자 이외에는 자연수 값을 갖지는 않지만 항상 자연수에 가깝다.
유사 용어 및 부연 설명.
원자 질량과 상대 동위 원소 질량은 혼동하기 쉽다. 또한 올바르게 사용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상대 원자 질량의 동의어인 표준 원자량, 표준화 된 원자량이라는 의미에서 특별한 종류의 원자량)과 같이 혼동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원자량과 표준 원자량은 단일 핵종 원소가 아닌 원소 샘플의 동위 원소 존재도에 대한 평균치인 것이다. 그런 식으로, 원자량과 표준 원자량은 대개 원자 질량 이나 상대 동위 원소 질량과는 수치적으로 다르며 이 값들이 통일된 원자 질량 단위로 표현되지 않았을 때 원자 질량과는 다른 단위를 가질 수 있다.
원자 질량은 한번에 하나의 동위원소 또는 핵종의 원자의 질량으로 정의되며 존재도에 대한 가중 평균치가 아니다. 그러므로 화학 원소의 동위 원소나 핵종의 원자 질량 또는 상대 동위 원소 질량은 매우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숫자이다. 그러한 핵종의 모든 시료들은 다른 시료들과 정확하게 동일할 것으로 예상되고 같은 에너지 준위의 모든 원자들의 핵종에 대한 모든 시료들 또한 다른 시료들과 정확히 동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소-16의 모든 원자들은 다른 모든 <chem>^{16}_{8}O</chem>의 원자들과 정확히 동일한 원자 질량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 핵종 원소이거나 하나의 주요 동위 원소를 갖는 많은 원소의 경우, 가장 일반적인 동위 원소의 원자 질량과 (표준) 상대 원자 질량 또는 (표준) 원자량 간의 실제 수치 유사성 또는 그 차이는 작거나 심지어는 없으며 대부분은 계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는 단일 핵종으로 고려하지 않을 때 존재할 수 있으며 중요할 수도 있다.
하나 이상의 동위 원소를 갖는 비(非) 단일 핵종 원소들의 경우에는 상대 동위 원소 질량으로부터 상대 원자 질량(원자량) 간의 수치적 차이는 질량 단위의 절반 이상일 수 있다(예컨대, 염소 (원소)의 경우에는 원자량과 표준 원자량은 거의 35.45 이다). 드물게 동위 원소의 원자 질량은 상대 원자 질량, 원자량 또는 표준 원자량과 조금 다를 수 있다.
통일된 원자 질량 단위로 표현된 원자 질량(즉, 상대 동위 원소 질량)은 <chem>^{12}_{6}C</chem> 원자를 제외하곤 항상 2가지 이유 때문에 그 값이 자연수에 근접해있다.
원자 질량에 대한 질량수(핵자수)의 비율은 1H는 1.00782505, 56Fe는 0.99884로 다양하다.
핵자간 결합 에너지로 인한 질량 결함은 실험적으로, 동등한 수의 자유 핵자들의 질량 합 보다 작은 비율(1% 미만)이다. <chem>^{12}_{6}C</chem> 원자는 핵자당 평균 질량을 비교해보면 이는 다른 원자들에 비해 상당히 강하게 결합되어있다. 대부분의 원자들의 결합에 대한 질량의 결함은 매우 작은 부분이다. 자유로운 양성자들과 중성자들은 매우 작은 질량 차이가 있다(대략 0.00014 u). 원자 질량 단위로 주어진 상대 동위 원소 질량이나 원자 질량을 가장 가까운 자연수로 반올림하면 항상 핵자 수 또는 질량수가 산출된다. 덧붙여, 중성자의 수는 질량수(핵자 수)에서 양성자 수(원자 번호)를 차감하여 도출 할 수 있다.
원자 질량 결함과 결합 에너지 곡선.
<chem>Z</chem> 개의 양성자와 <chem>N</chem> 개의 중성자로 원소 <chem>X</chem>를 만든다면 결손된 질량은 다음과 같다.formula_1이 값은 모든 핵에 대하여 항상 양의 값이다. 또한 핵의 질량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합한 것보다 작다는 것이다. 결손된 질량에 빛의 상수를 제곱한 값을 곱하여 에너지 단위("E"="mc"2)를 산출해낸다면, Δ"c"2 가 되고 이것이 핵의 결합 에너지이다. 결합 에너지를 핵자의 수에 대하여 정규화한다면, 아래의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formula_2핵자의 수에 대한 결합 에너지의 곡선은 작은 원자 질량에서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40 이상의 질량수를 가지는 핵은 9 MeV 조금 아래까지 완만하게 상승하다가 56Fe 원소에서부터 점차 감소함을 알 수 있다. 결합 에너지 생성에 대해서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 두 개의 가벼운 핵이 결합되어 결합 에너지 곡선에서 더 높은 결합 에너지를 가지는 무거운 핵을 만드는 핵융합 반응과 하나의 무거운 핵으로부터 각 핵당 높은 결합 에너지를 가지는 두 개의 가벼운 핵을 만드는 핵분열 반응이다.
질량수에 대한 원자 질량(단위: Da)의 비율은 탄소-12의 경우 1 로 정의되고, 그 이후로 최저치인 56Fe까지 감소한다(58Fe 과 62Ni 만 조금 더 큰 값을 가진다.). 그 후, 무거운 동위 원소들은 원자 번호가 증가함과 동시에 그 값 또한 증가한다. 이 결과로부터, 지르코늄보다 무거운 원소의 핵분열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나이오븀보다 가벼운 원소들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스칸듐보다 가벼운 원소 2 개의 핵융합(헬륨은 제외)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칼슘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원자 질량의 측정 방법.
원자들의 질량에 대한 비교와 측정은 질량 분석법(, MS)을 통해 이루어진다.
원자 질량 단위와 그램 사이의 환산인자.
거시적 수량에서 물질의 양을 정량화하는데 사용되는 국제단위계(SI)는 몰(, 단위 mol)이며 <chem>^{12}_{6}C</chem> 12 g에 함유되는 원자의 수로 정의한다. 1 몰에 해당하는 입자의 수를 아보가드로 수()라고 부르며, 대략 6.0221415×1023이다.
1 몰의 물질은 항상 그 물질의 몰 질량 또는 원자량을 거의 정확하게 포함한다. 그러나 자연 발생 원소인가에 따라서 원자 질량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철의 원자량은 55.847 g/mol 이고, 지구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철 1 몰은 55.847 그램의 질량을 가지고 있다. 56Fe 동위 원소의 원자 질량은 55.935 u 이고 1 몰의 56Fe 원자들은 이론상 55.935 g의 질량을 가지나, 순수한 56Fe의 이러한 수치들은 지구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찾을 수 있는 오직 하나만의 동위 원소를 가지는 22가지의 단일 핵종 원소(일반적으로, 베릴륨, 플루오린, 나트륨과 알루미늄)들과 이 원소들의 원자량과 원자 질량은 같다. 따라서 이러한 원소들은 원자 질량 값의 표준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단일 원자에 대하여 원자 질량 단위와 국제단위계 사이의 환산식은 다음과 같다.
formula_3
formula_4는 몰 질량 상수, formula_5는 아보가드로 수이다. |
3696 | 686494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96 | 분자 | 분자(分子, )는 두 개 이상의 비금속 원자가 화학 결합에 의해 전기적으로 전하를 띄거나 중성을 띄는 원자 그룹으로,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가지는 가장 작은 단위 입자로서 정의된다. 비활성 기체처럼 원자 하나로 이루어진 원자 그룹을 의미하기도 한다.
분자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 것은 아보가드로로서 그의 분자설은 아보가드로의 법칙으로 나타난다.
분자 크기.
대부분의 분자는 너무나도 작아서 사람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크기가 작은 분자는 이원자 분자인 수소(H2)로 원자간의 결합 간격은 0.74 옹스트롬이다. 일반적으로 유기 합성을 위하여 쓰이는 분자의 크기는 몇 안 되는 Å부터 수십 Å에 이른다. 단일 분자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빛으로 관찰할 수 없으나 소분자와 각 원자의 윤곽은 원자간력 현미경을 이용하여 일부 환경에서 추적해 낼 수 있다.
분자라는 용어는 대개 기체상태로 존재하는 작은 규모의 공유 결합 그룹에서만 적용되는데, 이는 질소(N2), 산소(O2), 염소(Cl2)의 경우처럼 홑원소로 존재할 수도 있고, 물 분자(H2O)처럼 서로 다른 원소끼리 결합하여 분자를 이룰 수도 있다. 단백질이나 DNA처럼 분자의 크기가 매우 큰 것은 고분자로 분류되며, 다이아몬드의 경우처럼 탄소 원자간의 공유 결합이 끊임없이 이어져 통째로 하나의 분자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수소 결합(얼음 등)이나 이온 결합(염화 나트륨, 염화 칼슘 등)과 같은 비공유결합에 의해 결합된 경우 분자라고 부르지 않고 화학식 단위(formula unit)라고 칭한다.
흔히 생화학에서는 대부분의 생체 분자들이 유기 화합물에 속한다.
지각, 맨틀, 그리고 지구의 핵을 구성하는 친숙한 고체 물질들의 대다수는 많은 화학 결합들을 포함하지만, 그의 대다수가 연속적인 결정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비록 이것들이 종종 평면적인 분자(그래핀 등)나 입체적인 분자(다이아몬드, 석영, 염화나트륨 등)의 형태로 일시적으로 반복되는 결정구조를 포함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이것은 반복되는 결합 구조를 가지는 고체 금속이라도 그것이 분자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유리(혹은 유리와 같은 비결정질의 고체)에서는 원자들이 특정한 배열구조를 가지지 않고 무작위로 결합하고 있다.
역사와 어원.
메리엄 웹스터와 Online Etymology Dictionary에 따르면 “분자”라는 단어는 라틴어 “몰” 또는 덩어리의 작은 단위로부터 유래된다.
프랑스어의 molécule(미립자,원자)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말을 18세기 후반까지 오직 라틴어 형식으로 사용하여 molecula(질량, 장애물)로 불렀으며, 처음에는 모호한 의미였지만 단어의 유행은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자의 정의는 분자의 구조에 대한 지식이 쌓이는 만큼 발전해왔다. 분자에 대한 부족한 지식은 분자를 그들의 구성과 화학적 성질들을 유지하는 순수한 화학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라는 다소 정확성이 떨어지는 정의를 내렸다. 예를 들어 바위, 소금, 금속 같은 평범한 경험에서의 물질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한 원자나 이온의 큰 결정계로 구성되어 있으나 분자들로 이루어져있지는 않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로 초기 분자의 정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
결합의 종류.
분자들은 공유 결합이나 이온 결합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 비금속 원소의 몇몇 종류만이 보통의 조건에서 분자 상태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수소(H)는 주변에 반응물이 없는 상태에서 항상 수소 분자(H2)로만 존재한다. 화합물의 분자는 두 종류 이상의 원소들로 구성되어있다. 결합의 종류마다 결합의 세기나 유연성 등이 다르다. 예를 들면 이온 결합에 비해 공유 결합은 강력한 결합을 보여준다. 이 다양한 결합으로 다양한 물질들이 생기는 것이다.
공유결합.
공유 결합은 주로 비금속 원자들 사이에 전자쌍을 공유하여 궤도를 안정시키려고 하는 결합으로, 이러한 전하쌍은 공유전자쌍 또는 결합쌍이라고 불린다. 주변 환경으로부터 각 원자간의 안정적인 에너지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전자를 공유할 때 공유 결합이라고 불린다.
이온결합.
이온 결합은 상대적인 전하를 띤 이온들 간의 정전기적 인력을 포함한 화학 결합의 한 종류이자 이온결합 화합물에서 발생하는 주요 상호작용이다. 이온들에는 양이온이라 불리는 하나 이상의 전자를 잃은 원자들과 음이온이라 불리는 하나 이상의 전자를 얻은 원자들이 있다. 이 전자의 이동은 공유 결합 원자가의 반대로 이온 결합 원자가라고 불린다. 가장 간단한 경우로, 양이온은 하나의 금속 원자이고 음이온은 하나의 비금속 원자이다. 예를 들어 암모늄 이온(NH4+)이나 황산염(SO42-) 같은 분자 이온들이 있다. 더 간단히 말해서, 이온 결합은 양 원자들이 모두 완전히 전자가 껍질을 채우기 위한 금속에서 비금속으로의 전하들의 이동이다.
화학식의 종류.
분자의 화학식은 각 원자의 원소기호, 원소나 원자의 수(이것처럼 아래첨자로 표기), 분자가 전하를 띌 경우 위첨자로(필요할 경우는 전하의 숫자도 함께 붙여서) +와 -같은 기호들을 표기한다.
실험식.
실험식은 화학식의 가장 간단한 종류로, 화합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의 정수비를 최소로 줄인 것이다. 예를 들어, 물은 항상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2:1의 비율로 구성되어있으며, 분자 하나의 화학식을 H2O로 쓸 수 있다. 그리고 에탄올은 항상 탄소, 수소, 산소가 2:6:1의 비율로 구성되어있으며, 분자 하나의 화학식은 C2H6O로 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자의 종류를 확실하게 결정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디메틸에테르 또한 화학식이 C2H6O로, 에탄올과 같은 정수비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화학식은 같으나 배열 구조가 다른 분자들을 이성질체라 부른다. 또한 아세트산과 모든 단당류는 화학식이 Cn(H2O)m으로 분자 내에서 탄소, 수소, 산소가 항상 1:2:1의 고정된 비율로 구성되어있어 실험식이 모두 CH2O로 동일하나 단당류를 구성하는 총 원자의 수는 각자 다르다.
분자식.
분자식은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정확한 수를 반영한다. 이성질체들은 다른 분자들이지만 같은 원자 구성비를 가질 수도 있으며, 실험식은 종종 분자식과 같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세틸렌은 분자식C2H2를 갖지만 가장 간단한 원소의 정수비는 CH이며, 위에서 말햇듯이 아세트산(C2H4O2)과 단당류의 실험식은 모두 CH2O로 포름알데히드와도 같다(여기서 아세트산과 포름알데히드는 단당류로서의 성질을 갖지 않는다).
분자량은 종종 화학식으로부터 계산할 수 있고, 탄소-12의 원자량의 1/12과 동일하게 편리한 원자량 단위로 표기된다. 고체 결합에서, 화학식 단위라는 용어는 화학량적인 계산에서 사용된다.
구조식.
구조식은 3차원적인 모양의 복잡한 구조를 갖는 분자들, 특히 네 개 이상의 다른 치환기와 결합한 원자들은 간단한 분자식에서는 그 분자의 구조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구조식은 결국 1차원의 화학식으로 설명되지만 그러한 화합물 명명법은 많은 단어들과 화학식의 부분이 아닌 용어들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CO2)는 O=C=O로, 사이안화수소(HCN)는 HC≡N과 같이 표기한다.
시성식.
시성식은 분자의 특징적인 구조를 적절한 위치에 따로 표기하는 화학식으로, 분자의 특성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작용기나 치환기 등을 강조하여 나타낸 식이다. 예를 들어 아세트산(C2H4O2)의 시성식은 산으로서의 작용기인 카복시기(-COOH)를 따로 표기하여 H3CCOOH와 같이 나타낸다.
분자 과학.
초점이 화학에 있느냐 물리학에 있느냐에 따라 분자의 과학은 분자 화학 또는 분자 물리학이라 불린다. 분자 화학은 이온 결합을 형성하고 분해시키는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다루는 반면에 분자 물리학은 그들의 구조와 속성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다룬다. 그러나 사실 이 구분은 모호하다. 분자 과학에서, 분자는 두 개 이상의 원자로 구성된 안정된 상태로 구성되어 있다. 다원자성 이온들은 가끔 전기 전하를 띤 분자로서 유용하게 생각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불안정한 분자라는 용어는 매우 반응적인 종류에서 사용된다. 즉, 전자들과 자유 라디칼, 분자 이온, 리드베르크 분자, 전이 상태, 판데르발스 힘 또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에서와 같은 충돌하는 원자들의 시스템인 핵들의 오래가지 못하는 집회(공명)이다.
분자 기하학.
분자들은 진동하고 회전하는 운동을 통해 계속적으로 진동하는 것에 대해서 결합길이와 결합각에 고정된 평형 기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순수한 물질은 같은 평균 기하학적 구조의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분자의 화학식과 구조는 그 특성, 특히 반응성을 결정하는 두 중요한 요인들이다. 이성질체들은 하나의 화학식을 공유하지만 그들의 다른 구조 때문에 보통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성질체의 특정한 종류인 입체 이성질체는 매우 비슷한 이화학의 특성과 동시에 다른 생화학적 활동들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광 화학.
분광 화학은 에너지(혹은 진동수)라고 알려진 면밀한 신호와 상호작용하는 분자들의 반응을 다룬다. 분자들은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행위를 통하여 분자의 에너지 교환을 감지함으로써 분석될 수 있는 정량화된 에너지 준위를 가지고 있다. 분광 화학은 일반적으로 중성자나 전자 또는 고에너지의 엑스선과 같은 미립자들이 보통의 분자배열(결정에서처럼)로 상호작용하는 회절연구에 나타나있지 않다. 마이크로파 분광학은 주로 분자의 회전에서의 변화를 측정하고 외부의 공간에서 분자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 적외선 분광법은 늘어남, 구부림, 비틀림 등의 운동을 포함한 분자의 진동에서의 변화를 측정한다. 이것은 분자에서의 결합 또는 작용기의 종류를 확인하기 위해서 주로 사용된다. 전자의 배열에서의 변화들은 자외선의 볼 수 있는 근적외선 빛에서 흡수선 또는 방출선을 만들고 색을 방출한다. 핵 공명 분광법은 실제로 분자에서 특정한 핵들의 환경을 측정하고 분자에서 다른 위치에 있는 원자들의 수를 특징짓기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
이론적 양상.
분자물리와 이론 화학에 의한 분자 연구는 크게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하고 화학 결합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분자들 중 가장 간단한 것은 수소 분자 이온 H2+이고 모든 화학 결합들 중 가장 간단 한 것은 일전자 결합이다. 수소 분자 이온(H2+)은 양전하를 가지는 두 개의 양성자와 음전하를 가지는 전자로 구성되어있다. 이것은 계에서 슈레딩거 방정식이 전자와 전자의 반발의 부족 때문에 더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빠른 디지털 컴퓨터의 발달으로 더 복잡한 분자들을 위한 거의 정확한 해결책이 가능해졌고 컴퓨터 화학의 주요 양상들 중 하나이다. 원자들의 배열이 분자로 고려되기에 충분히 안정적이던지 아니던지 엄격히 정의하려고 할 때, IUPAC은 이것이 “적어도 하나의 진동상태를 제한하기에 충분히 깊은 퍼텐셜 에너지 표면에 있는 저기압에 일치해야만 한다.”고 제안한다. 이 정의는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의 본질에 따르지 않고 오직 상호작용의 세기에 따른다. 사실, 이것은 전통적으로 He2와 같은 분자로서는 정의되지 않는 약한 결합 종들을 포함한다. 이것은 하나의 진동하는 속박상태를 가지고 있으며 매우 헐겹게 묶여 있어서 매우 낮은 기온에도 관찰될 수 있다. 원자들의 배열이 분자로 고려되기에 충분히 안정한지 안정하지 않은지는 본질적으로 사용가능한 정의이다. 그러므로 철학적으로, 분자는 기본적인 독립체가 아니다(예를 들어 반대로 소립자에 대해) 오히려, 분자의 개념은 우리가 관찰하는 세상에서 원자 크기의 상호작용의 세기에 대한 유용한 상태를 만드는 화학자의 방법이다. |
3697 | 36811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97 | 질량 보존 법칙 | 질량 보존 법칙(質量保存法則, law of conservation of mass)은, 닫힌 계의 질량이 화학 반응에 의한 상태 변화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고 계속 같은 값을 유지한다는 법칙이다. 물질은 갑자기 생기거나, 없어지지 않고 그 형태만 변하여 존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닫힌계에서의 화학 반응에서, (반응물의 질량) = (결과물의 질량) 이란 수식을 만족한다. 질량 보존 법칙은 비상대론적인 법칙이며, 상대성이론을 고려할 경우 상황은 조금 복잡해진다. 상대론을 고려할 경우에도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성립한다.
이 법칙은 근대 화학의 아버지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최초로 정식화하였다. 그러나 이전에도 미하일 로모노소프 (Mikhail Lomonosov) 등이 언급한 바가 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질량이 에너지로도 변환될 수 있다.
질량/물질 보존의 예외.
1. 물질은 완벽하게 보존되지 않는다.
물질 보존의 법칙은 특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을 고려하지 않은 고전적 이론에서만 참인 근사적인 물리 법칙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것은 특정 높은 에너지 활용을 제외하고는 거의 참이다. 보존의 개념에 특정한 어려움은, ‘물질’이 과학적으로 잘 정의된 단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물질들이 ‘물질’이라고 생각될 때, (예를 들어 전자나 양전자) 등은 광자를 생성하기 위해 없어진다. (광자는 종종 물질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면 물질의 보존은 고립계에서도 참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물질 보존은 방사능과 핵반응이 포함되지 않는 화학 반응에서 안전하게 추정될 수 있다. 물질이 보존되지 않더라도, 계 안에서의 질량과 에너지의 총 합은 보존된다.
2. 열린계와 열역학적으로 닫힌 계
또한 질량은 열린계에서 일반적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계 내부나 외부로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들이 투입될 수 있거나 나갈 수 있는 경우가 그런 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방사능과 핵반응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계에서 도망가는 열, 일, 전자기적 방사선은 계의 질량의 감소로 측정하기에는 사실 너무 작다. 고립계에서의 질량 보존 법칙 (질량과 에너지가 전부 닫힌계) 은 어떤 관성계에서 봐도 계속 현대 물리학에서 참으로 여겨진다. 이것의 이유는, 상대성 방정식이 심지어 ‘질량이 없는’ 입자들, 예를 들어 광자들이 고립계에 질량과 에너지를 더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질량 (물질이 아니지만)이 에너지가 도망가지 않는 계의 과정에서 엄격하게 보존되도록 허락한다. 상대성 이론에서는, 다른 관찰자들이 주어진 계에서의 보존된 특정 값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관찰자들은 이 값이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계가 모든 것에 대해 고립되어 있다면)
3. 일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팽창하는 부피의 우주에서 광자의 변치 않는 총 질량은 적색 이동 때문에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질량과 에너지의 보존은 이론에서 에너지로 만들어진 다양한 수정들에 의존한다. 그러한 계들의 변하는 중력 퍼텐셜 에너지 때문이다. |
3698 | 727344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98 | 원자론 | 원자론(原子論)은 모든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물질에 대해서는 들어맞는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플라스마 또는 굉장히 높은 압력을 받는 입자들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역사.
과학 분야(물론 근대과학 이전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이미 원자론이 주장된 바 있다.)에서 원자론을 최초로 제기한 이는 18~19세기의 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으로 알려져 있다. 돌턴의 원자설은 '질량 보존의 법칙', '정비례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세워진 돌턴의 학설로서 오늘날의 원자론의 바탕이 된다.
돌턴은 각 기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질량비를 찾기 위해 원자론을 기반으로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두 원소가 결합을 할 때, 각 원소의 원자가 1:1로 결합하여 2원자 화합물을 만드는 것이 가장 쉽다고 가정했다. 그러므로 두 원소가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화합물이 하나밖에 없으면 그것은 1:1로 결합한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두 가지 이상의 화합물을 만든다면 하나는 1:1, 다른 하나는 1:2, 그다음은 1:3 등 결합에 있어서 가장 단순한 정수비를 따른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결합 규칙을 설정해 놓음으로써 돌턴은 여러 화합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의 질량비를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수소를 기준으로 한 원소들의 상대적 질량비, 즉 원자량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돌턴의 원자설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이 원자설은 오늘날 물질에 대한 생각으로서 보편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원자는 원소의 성질을 갖고 있는 원소의 가장 작은 기본 입자로 규정할 수 있다. |
3699 | 75312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699 | 일정 성분비 법칙 | 일정 성분비 법칙(一定 成分比法則) 또는 정비례의 법칙(定比例法則)은 한 화합물을 구성하는 각 성분 원소들의 질량 비가 일정하다는 법칙을 말한다. 1799년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약학자인 조제프 루이 프루스트가 발견하였다. 배수 비례의 법칙과 함께 화학양론의 근간이 된다.
역사.
프랑스의 화학자 조제프 프루스트가 1799년에 처음 제안하였으나 조지프 프리스틀리와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이미 이와 유사한 발견을 한 바가 있다. 이 법칙은 모든 화학량적 화합물에 적용되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보일 수 있으나, 처음 제안되었을 당시에는 여러 가지 반론이 있었다. 특히 클로드 루이 베르톨레는 원소들이 어떠한 비율로든지 결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정 성분비 법칙은 물질을 구성하는 것이 셀 수 있으며 원소마다 각각 다른 종류를 가지는 어떤 단위체임을 암시하고 있고, 존 돌턴은 이를 포착하여 원자론의 이론적인 기반으로 채택했다. 이와 유사하게 영국의 화학자인 윌리엄 프라우트는 수소 원자가 원자의 근본적인 단위라고 주장했다. 이 가정으로부터 원자 질량은 수소 질량의 정수배라는 법칙인 정수율이 얻어졌다. 그러나 이는 1820년과 1830년에 원자 질량에 대한 정제된 측정 방식이 개발되면서 거부되었다. 특히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에 의해 염소의 원자량이 35.45라고 밝혀졌기 때문에 수소가 모든 물질의 기본 단위라는 주장은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는 1920년대 이후 동위원소의 발견으로 인해 설명되었다.
예외.
일정 성분비 법칙은 항상 성립하지는 않으며, 이러한 화합물을 비화학량론적 화합물이라 한다. 하나의 예시는 산화철의 일종인 뷔스타이트이다. 이 화합물은 0.83에서 0.95개의 철 원자마다 하나의 산소 원자를 가진다. 그래서 실험을 해보면 23%에서 25%의 산소 질량비가 나타난다. 이상적인 식은 FeO이지만, 결정내의 빈 공간 때문에 Fe0.95O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이런 작은 변화를 감지할 정도로 민감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원소들의 동위원소 구성은 생성물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고, 화학량적 화합물의 질량에 대한 동위원소의 퍼센티지는 바뀔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방사능 연대 측정에서 사용된다. 이처럼 동위원소에 따라 질량의 차이가 있지만 수소의 경우, 즉 중수소나 삼중수소를 제외하면 이 차이를 구식 기구로 감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DNA, 단백질, 탄수화물 등 많은 자연적 중합체들은 심지어 ‘순수할 때’도 구성에서 차이를 지닌다. 중합체들은 유일한 분자식을 가지고 있고 화학량론이 일정해도 일반적으로 ‘순수한 화학적 화합물’로 분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중합체들에는 마찬가지로 동위원소에 의한 차이도 여전히 존재한다.
예시.
물(H2O)에서 수소(H)와 산소(O)의 질량 비는 항상 1:8이다. 만약 물에서 수소가 차지하는 질량이 2.5g라면, 산소 원자가 차지하는 질량은 20g이 된다. |
3700 | 32264347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00 | 화합물 | 화합물(化合物, )은 두 종류 이상의 화학 원소의 원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순수한 화학 물질이며, 화학 반응을 통하여 더 단순한 물질로 분리해 낼 수 있다. 이를테면 물(H2O)은 하나의 산소 원자마다 두 개의 수소 원자가 공유결합을 하여 만들어진 물질이다. 화합물은 고유한 화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화학 결합으로 하나가 된 일정한 비율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화합물은 공유 결합에 의하여 하나로 된 분자 화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염은 이온 결합에 의하여 하나로 되고, 합금(금속을 결합시킨것,백랍 등이 있음)의 경우 금속 결합에 의하여 하나로 되며, 배위 착염은 배위 결합에 의하여 하나로 되는 분자 화합물이다.
한편, 순수한 화학 원소는 이것이 단일 원소(H2, S8 등)로 된 여러 개의 원자만 포함하는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화합물로 간주하지 않는다. 화합물은 오직 두 종류 이상의 원소들로 결합한 형태의 물질들을 이르기 때문이다. 위의 단일 원소(H2, S8 등)는 홑원소 물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본 개념.
화합물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공식.
화학자들은 화합물을 다양한 형태의 공식을 이용하여 서술한다. 분자로 존재하는 화합물의 경우 분자 단위의 공식이 이용된다. 광물과 수많은 금속 산화물과 같은 중합체의 경우 일반적으로 실험식이 이용된다. 이를테면 염화 나트륨의 경우 NaCl로 표기한다.
화학 공식의 원소는 일반적으로 특정한 순서로 나열되는데 이를 힐 시스템(Hill system)이라고 한다. 이러한 체계에서 탄소 원자들은 일반적으로 맨 처음에, 수소 원자는 그 다음에, 다른 모든 원소는 알파벳 순으로 그 뒤에 나열된다. 화학식이 탄소를 포함하지 않으면 수소를 포함한 모든 원소는 알파벳 순으로 나열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법칙에도 예외는 있다. 이온 화합물의 경우 양이온은 거의 언제나 맨 먼저 오고 음이온은 두 번째에 온다. 산화물의 경우 산소가 맨 마지막에 나열된다.
상과 열 특성.
화합물은 몇 가지 가능한 상을 가질 수 있다. 모든 화합물은 적어도 충분히 낮은 온도에 있다면 고체로 존재할 수 있다. 분자 화합물은 액체, 기체, 또 특별한 경우 플라스마로 존재할 수도 있다. 모든 화합물은 열에 의해 분해된다. 이러한 분해가 일어나는 온도는 분해 온도라고 한다. 분해 온도는 열의 속도에 따라 달라지며 가파르게 바뀌지는 않는다.
CAS 번호.
화합물을 포함하는, 연구를 통해 알려진 모든 화학 물질들은 고유의 수치적 식별자인 CAS 번호가 있다. |
3701 | 22169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01 | 상 | 상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
3703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03 | 용매 | 용매(溶媒, )는 용액의 매체가 되어 용질을 녹이는 물질로, 주로 액체나 기체상을 띤다. 예를 들어 액체에 물질을 녹여 용액을 만들 때나 액체에 액체가 녹아들어가는 경우에 그 양이 많은 쪽의 액체를 용매라고 하며, 용액 중에서 용매는 용질에 비해 용액을 구성하는 비율이 높다. 액체상의 용매의 경우 공통적으로 끓는 점이 낮아 휘발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용매는 액체상이 아닌 혼합물에서 특정 물질을 추출할 때에 사용되기도 한다.
용매가 액체 상태에 있는 경우, 용매가 어느 종류의 물질이냐에 따라 무기 용매와 유기 용매로 구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무기 용매는 물이며, 유기 용매로는 에테르나 아세톤, 알코올 등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극성 용매로는 물, 에탄올, 아세톤 등이 있고, 대표적인 무극성 용매로는 사이클로헥세인 사염화탄소, 벤젠 등이 있다. |
3706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06 | 121년 | |
3707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07 | 122년 | |
3708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08 | 123년 | |
3709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09 | 124년 | |
3710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10 | 125년 | |
3711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11 | 126년 | |
3712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12 | 127년 | |
3713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13 | 128년 | |
3714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14 | 129년 | |
3715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15 | 130년 | |
3716 | 33088446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16 | 테오도리쿠스 마그누스 | 테오도리쿠스 대왕(Theodoric the Great, 454년 ~ 526년 8월 30일, 재위 488년 ~ 526년)은 동고트 왕국의 초대 국왕이며 로마 제국의 군인이자, 이탈리아의 군주였다. 고트어 이름은 티우다레익스()로 "백성들의 왕"이라는 의미이다.
생애.
454년, 동고트족이 훈족들에게 점령된 지 1년째 되던 해에 튜다미르(Thiudamir)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테오도리쿠스는 튜다미르와 동로마 제국 사이의 협정의 결과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볼모로 유년기를 보냈다.
테오도리쿠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지내며 동로마 제국의 정치와 군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레오 1세와 제논의 호의를 얻어 483년 마기스테르 밀리툼(Magister Militum, 군사 대장)가 되고 1년 뒤에는 집정관이 되었다. 이후 이십대 초반을 다른 동고트족과 보냈으며 488년 왕이 되었다.
이 무렵 동고트족은 동로마 제국 내에 로마의 포이데라티로 거주하고 있었으나 점점 통제하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테오데릭이 왕이 된 이후 황제 제논과 협정을 맺어 테오도리쿠스와 동고트족이 476년 로마를 점령한 오도아케르를 몰아내는 데 협조를 받기로 하고 오도아케르의 왕국을 침략하게 된다.
테오도리쿠스는 488년 군대를 끌고 이탈리아에 도착, 489년 이손조의 전투와 밀라노의 전투와 489년 아다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493년 테오도리쿠스는 라벤나를 점령하고 오도아케르는 항복하나 테오도리쿠스의 손에 살해되었다.
오도아케르와 같이 테오도리쿠스는 공식적으로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황제의 총독이었으나 실질적으로 테오도리쿠스와 로마 황제의 교섭은 동등한 상황에서 진행되었고, 로마 황제의 간섭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오도아케르와 달리 테오도리쿠스는 왕국 내의 로마 시민들을 로마 법대로 다스린다는 약속을 지켰다. 고트족은 전통적인 법률과 관습으로 다스려졌다.
테오도리쿠스 대왕은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 (Clovis) 1세의 여동생 아우도플레다(Audofleda)를 왕비로 맞아들여 결혼동맹을 맺었으며, 서고트족, 반달족, 부르군트족 왕들과도 동맹을 맺었다. 클로비스 1세는 506년과 523년 테오도리쿠스와 전쟁을 벌였다.
제위기간 대부분동안 테오도리쿠스 대왕은 형식적으로는 동고트족과 서고트족 모두의 왕이었으며 505년경 어린 서고트족 왕의 섭정이 되었다. 테오도리쿠스는 507년 프랑크족에게 서고트 영토인 아퀴타니아를 빼앗겼으나 그 외에는 대부분의 외침을 격퇴했고, 반달족 왕 트라사문트(Thrasamund)를 격퇴해 약탈을 막았다.
테오도리쿠스는 아리우스파 신자였으며, 이 점 때문에 재위 말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마찰이 생겼다. 양국의 관계는 나빠지기 시작했으나 테오도리쿠스가 살아있는 동안은 충돌이 없었다.
테오도리쿠스 대왕은 라벤나에 매장되었으며, 사후 딸 아말라순타(Amalasuntha)가 손자 아탈라릭(Athalaric)을 대신해 섭정이 되었다.
프랑크의 군주 힐데리히 1세(Childeric I)의 딸이자 클로비스 1세의 누이인 아우도프레다(Audefleda)와 결혼하여 아말라순타 등을 두었다. |
3718 | 36811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18 | 연소 | 연소(燃燒, ) 물질이 산소와 화합할 때 다량의 열과 빛을 발하는 현상을 말한다. 설탕이나 에탄올 등은 공기 중에서 가열되면 연소하지만 소금은 아무리 가열되어도 타지 않는다. 이와 같이, 물질에는 가열되면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이 있다. 1630년에는 페리고르 지방의 의사인 랑세가 납과 주석을 불에 태우면 산화되어서 이 금속들의 양이 증가한다는 것을 설명했는데, 이것은 라부아지에보다 한 세기 앞서는 것이었다.
어떤 물질이 산소와 화합되는 현상을 산화작용이라 하며, 쇠가 녹이 난다든지 물질이 부패하는 경우처럼 매우 천천히 진행되는 것도 있지만 급격히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즉 연소란 빛과 열을 수반하는 급격한 산화반응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산소원자가 탄소원자 근처로 접근할 때에는 에너지를 조금밖에 갖고 있지 않지만, 산소와 탄소가 결합할 대에는 한바탕 난리가 일어나서 주변의 다른 원자들에게도 그 여파가 전달된다. 즉 운동에너지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연소다. 탄소와 산소가 결합할 때 주변에는 항상 열이 발생한다. 열은 뜨거운 기체분자의 운동으로부터 생성되는데, 어떤 특별한 환경에서는 열이 너무 많이 발생하여 빛이 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종류.
완전연소.
완전연소의 경우, 반응 물질이 산소의 공급이 충분한 상태에서 완전히 타서 이산화탄소와 물을 발생시킨다. 이는 푸른 빛을 띈다.
불완전연소.
불완전연소는 연료가 완전히 반응할 정도로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은 경우 발생하며 일산화탄소를 만들어낸다. 완전 연소와 달리 붉은 빛을 띈다.
연소의 조건.
물질에는 설탕이나 에탄올과 같이 공기 중에서 가열하여 온도를 올리면 연소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철 등 금속은 덩어리인 상태에서 아무리 가열해도 연소하지 않지만, 가는 섬유로 만든 스틸 울은 가열하면 잘 탄다. 마그네슘도 얇은 리본처럼 만들거나 가루로 만들면 가열에 의해 불꽃을 내면서 격렬하게 연소한다. 또, 구리 가루는 공기 중에서 가열하면 빛깔이 검게 변할 뿐이지만, 산소내에서 가열하면 빨갛게 되어 심하게 변화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물질이나 공기 속에서보다 산소 속에서 더 세게 연소한다. 반대로 산소가 없는 곳에서는 에탄올이나 석유 등을 아무리 가열해도 연소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물질이 연소하기 위한 조건들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3번까지의 조건을 '연소의 3요소'라고 하며, 불꽃연소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4번 조건까지를 '연소의 4요소'라고 한다.
물질을 잘게 부수거나 가루로 만들면 잘 타는 이유는 물질의 온도를 높이기 쉽고, 또 표면적이 증가하여 공기 속의 산소와 접촉하기 쉽게 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연소에 의한 생성물.
물이나 이산화탄소가 생기는 물질.
석유나 에탄올을 석면에 스며들게 하고 병 속에서 태우면 병 안쪽에 물방울이 맺힌다. 또, 이 병 속에 석회수를 넣고 잘 흔들면 석회수는 뿌옇게 흐려진다. 병 안쪽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은 물질이 연소하여 물(수증기)이 생긴 것을 나타내며, 석회수가 뿌옇게 흐려지는 것은 이산화탄소가 생긴 것을 나타내고 있다. 수소를 공기 중에서 연소시키면 물(수증기)이 생긴다. 또, 탄소를 공기(산소) 중에서 연소시키면, 탄소는 전부 없어지고 이산화탄소가 생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석유나 에탄올이 연소하면 물이나 이산화탄소가 생기는 것은 연소하는 물질, 즉 석유나 에탄올에 수소나 탄소가 함유되어 있어, 그것들이 연소하여 물이나 이산화탄소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설탕·판자·밀랍·종이 등과 같이 공기 중에서 연소하여 물이나 이산화탄소를 생성하는 물질에는 수소나 탄소가 성분으로서 함유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철 등의 금속이나 황이 연소할 때 물이나 이산화탄소가 생기지 않는 것은 이들에 수소나 탄소가 함유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금속이나 황이 연소하여 생기는 것.
스틸 울은 연소하면 검은 고체 물질(산화철)이 되며, 마그네슘은 흰 고체(산화마그네슘)로 변한다. 또, 황은 코를 찌르는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기체(이산화황)를 내면서 연소하는데,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와 같이, 연소하여 생긴 생성물은 원래의 물질에 따라 다르고, 또 연소하는 모양(열이나 빛을 내는 모양)도 물질에 따라 다르다.
연소와 산소.
양초가 타면 기체인 이산화탄소와 물이 생성되어 공기 속으로 빠져 나가고, 양초의 질량은 줄어든다. 스틸 울이나 마그네슘은 연소하면서 질량이 커진다. 즉, 이들이 타서 생긴 산화철이나 산화마그네슘의 질량은 원래의 스틸 울이나 마그네슘의 질량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틸 울이나 마그네슘이 연소하는 데는 산소가 필요하며, 또한 연소에 의해서 생긴 물질의 질량이 연소하기 전의 물질의 질량보다 커졌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연소로 생긴 물질 속에는 산소가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연소에 의해서 산소와 물질이 결합되었음을 말해 준다. 양초나 에탄올을 공기 속에서 가열하면 열과 빛을 내면서 연소하여 물과 이산화탄소를 생성하는데, 물은 수소와 공기 속의 산소가 결합하여 생긴 물질이고, 이산화탄소는 탄소와 공기 속의 산소가 결합하여 생긴 물질이다. 이와 같이, 물질이 열과 빛을 발생시키면서 산소와 결합하는 것을 연소라고 한다.
스틸 울이나 마그네슘도 공기 중에서 가열하면 빛과 열을 내면서 연소하여 산소와 결합해서 각각 산화철과 산화마그네슘이 된다. 이와 같이, 물질이 연소하면 원래의 물질과 다른 물질이 생긴다. 이러한 변화도 화학적 변화의 하나이다. |
3719 | 65024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19 | 아르곤 | 아르곤(←, )은 주기율표의 화학 원소로 기호는 Ar(←)이고 원자 번호는 18이다. 18족에 속하는 비활성 기체로 지구 대기의 약 0.934%를 차지하며, 비활성 기체 중 지구에서 가장 흔하다. 1894년 영국의 레일리에 의해 발견되었다. 상온에서는 무색,무취의 기체이다.
특성.
아르곤은 고체, 액체, 기체 상태 모두 무색, 무취인 불연성의 기체이다. 물에 대한 용해도는 산소와 비슷하며, 질소보다는 약 2.5배가량 더 용해된다. 대부분의 경우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하여 화합물을 형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극저온에서는 일부 아르곤 화합물이 관찰된 적이 있다. 2000년 핀란드 헬싱키 대학에서 발견된 아르곤 플루오로하이드라이드(HArF)가 대표적이다. 또한 반응성이 큰 플루오린과 염소와도 결합을 잘 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물 분자들 사이에 들어가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역사.
아르곤은 그리스어로 '비활성'을 뜻하는 αργον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1785년 헨리 캐번디시는 공기 중에 전류를 흘려 질산을 생성시키는 실험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소량의 기체가 반응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관찰했다. 1882년 두 과학자가 독자적으로 공기 중에 포함된 원소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던 중 새로운 선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나, 어떤 원소에 의한 것인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이후 1894년 레일리와 윌리엄 램지는 순수한 질소 기체와 공기 중의 질소 기체 사이에 약 0.5% 정도의 질량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른 원소가 섞여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들은 런던대학교 UCL에서 불순물을 제거한 공기를 액화시킨 후 이를 분별 증류하여 아르곤을 순수한 상태로 분리하였다.
1957년까지는 원소 기호가 A였으나 이후 Ar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존재.
아르곤은 대기 중에 부피 비율로는 약 0.934%, 질량 비율로 약 1.288%가 포함되어 있다. 지각 속에는 1.2ppm, 해수 속에는 0.45ppm 정도 포함되어 있다.
동위 원소.
지구상에 존재하는 아르곤의 대부분은 아르곤-40(존재 비율 99.6%)이며, 이외에 아르곤-36, 아르곤-38 등이 미량 존재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칼륨-40이 베타 붕괴하면서 약 11.2%가 아르곤-40으로 변하는 과정이 일어난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한 칼륨-아르곤 연대 측정법은 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데 사용된다.
또, 아르곤은 태양계 내에서도 행성에 따라 동위 원소의 존재 비율이 다르다. 이는 지구형 행성의 경우에는 암석 속의 칼륨-40이 베타 붕괴하여 생성된 아르곤-40이 대부분인 반면, 목성형 행성에서는 항성의 핵융합으로 생성된 아르곤-36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공업적 제조방법.
초저온냉동공학을 이용한 공기분리공장에서 주로 생산된다. 공기분리공장에서는 공기 중에 존재하는 질소와 산소를 액화시켜 끓는점 차를 이용하여 분리하는데 이 중 아르곤은 산소와 끓는점이 유사하여 액체산소의 상위층에 많이 분포하게 되며, 이를 별도의 분별 증류를 이용하여 농축시킨다. 이러한 방식으로 매년 전 세계에서 70만 톤의 아르곤이 생산된다.
용도.
고온에서 2원자 물질인 질소가 불안정한데 반하여, 1원자 물질인 아르곤은 고온에서도 안정적이다. 따라서 고온에서의 비활성 기체(inert gas)가 요구되는 곳에 많이 사용한다. 철강 제조시 고급제련강을 제조하는 경우에 주로 쓰이며, 그 외에도 TIG용접, MIG용접시에도 불활성가스로 사용된다. (가운데 I는 Inert를 의미함.) 또한 네온과 함께 PDP (플라즈마 액정 표시장치)의 내부에 플라즈마 형성을 위해 사용되고, 백열등 내부에서 텅스텐 필라멘트가 산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충전가스로도 사용된다. 한편 최근 반도체, LCD 제조의 90nm 이하의 공정에서 ArF(플로오르화 아르곤)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 및 광원 제조에 사용되기도 한다.
청록색의 아르곤 레이저는 종양 제거 등의 목적으로 이용되며, 잠수부들이 사용하는 산소통의 혼합기체로 사용되기도 한다. 반감기가 269년인 아르곤-39는 빙하나 지하수의 연대를 측정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제조회사 및 시장상황.
고압가스 및 특수고압가스를 제조, 공급하고 있는 에어프로덕츠코리아, 에어코리아, 대성산업가스, BOC 코리아, 프락스에어 코리아 등에서 주로 제조된다. 최근 수요처에 직접 공장을 설립하여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하는 온사이트 방식이 활성화되는 추세이다.
위험성.
아르곤 자체의 독성은 없지만, 공기보다 무겁고 바닥에 가라앉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 아르곤 누출 시 산소 결핍으로 인한 질식을 유발할 수 있다. |
3720 | 36811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20 | 대기 | 대기(大氣, Atmosphere)는 천체의 주위를 대체로 일정하게 둘러싸고 있는 기체층을 말한다. 별다른 조건없이 '대기'라고 표현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지구 대기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생명체가 호흡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운석이나 기타 위협적인 요소들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이다.행성을 사람이라고 치자면 대기는 옷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태양계 위성 중에서는 타이탄이 질소 주성분의 대기를 가지고 있다.
지구 대기권.
지구의 대기권은 기체층으로 지표에서 고도 약 1000 km까지 존재한다. 주로 질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외에 이산화탄소, 헬륨, 아르곤 등의 희소 기체가 포함되어 있다. 수증기를 제외한 공기 성분은 약 80 km까지 거의 일정하다.
지구 대기권은 고도에 따라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 외기권 등으로 구분된다. 기상의 변화는 대류권에서 나타나며 다른 권역에서는 오존층의 생성, 전자기파의 반사와 같은 성질을 보이는 특이층이 존재한다.
지구 대기의 운동.
공기에는 여러 가지 힘이 작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힘은, ⑴ 기압이 위치에 따라 다르므로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미는 힘 ⑵ 지면(地面) 마찰의 힘 ⑶ 지구가 회전하고 있기 때문에 작용하는 힘 등이다. 주로 이 세 가지 힘의 균형에 의하여 바람은 여러 가지로 변한다. 한마디로 바람이라 해도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며 강하게 불었다가 약하게 불었다 하기도 하고 또 풍속에 따라 풍향도 좌우로 조금씩 흔들린다. 이것을 '바람의 숨'이라 한다. 또 지형은 수평면이 아니고 건물도 있으므로 저항이 작용하여 수많은 작은 소용돌이가 발생하여 불어오므로 순간풍속은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10분간의 평균을 산출한 평균 풍속을 일반적으로 풍속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기의 운동은 바람이 부는 것으로 알 수 있으므로 같은 시각에 각 지방에서 바람 관측을 하면 운동 상태를 알 수가 있으나 규모에 따라 여러 가지 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운동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의 흐름으로서 이것을 대기의 대환류(大環流)라 한다.
지구 대기의 역할.
지구 대기의 역할은 생명체에 산소 공급, 온실 효과를 통한 지구 보온, 태양(Sun)으로부터 오는 자외선 차단, 저위도의 에너지를 고위도로 운반, 운석으로부터 지구 보호 등이 있다.
다일성의 대기권.
지구형 행성.
수성은 대기가 거의 없다. 달보다는 짙은 대기를 가지고 있지만, 우주 공간보다 약간 짙은 정도이다. 수성 대기의 대부분은 산소로 이루어져 있다.
금성의 대기는 95% 이상이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구 대기압의 90배에 달하는 두꺼운 대기를 가지고 있다. 금성의 대기는 두껍고 이산화탄소가 많아 온실효과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 표면 온도가 500°C 가까이 근접한다. 금성은 탈출 속도가 지구와 거의 비슷하지만, 표면 온도가 높기 때문에 질량이 작은 수소 기체 등은 활발한 분자 운동으로 인해 평균 운동 속도가 증가하여 금성을 벗어나 버리고, 질소와 약간의 아르곤 등이 대기 중에 분포하고 있다. 수증기는 대기 상층부에만 약간 존재하기 때문에 금성의 대기는 전체적으로 건조하다.
화성의 대기는 대부분이 이산화탄소이며 기압은 지구의 1/100 정도이다. 태양에서 비교적 먼 편이라 표면 온도는 영하권이다. 화성은 자기장이 매우 미약해서 대기가 태양풍의 영향으로 쓸려나가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화성의 여름에는 극지방의 드라이아이스가 녹아 이산화탄소가 대기중으로 유입되어 대기가 약간 짙어진다.
목성형 행성.
목성의 대기는 주로 수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반구에 커다란 소용돌이인 대적반이 관찰된다. 대체로 지구형 행성에 비해 매우 높은 기압을 가지고 있어서 탐사선을 통한 정확한 기압 측정이 불가능하다. 목성을 제외한 나머지
목성형 행성들인 토성, 해왕성, 천왕성 등의 행성도 목성 대기 성분과 비슷하다.
위성의 대기권.
위성은 행성에 비해 중력과 질량이 작기 때문에 대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됐지만,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은 지구 대기압의 1.4배에 달하는 질소 주성분 대기가 있다. |
3721 | 65024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21 | 레이저 | 레이저(, )는 유도방출광선증폭()의 머릿글자다. 원자나 분자 내부에 축적된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뽑아내는, 긴밀히 결합된(응집력 있는) 광선이다. 전형적인 레이저 광은 단색, 즉, 오직 하나의 파장이나 색으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레이저 빔은 가늘고 퍼지지 않는다. 반면, 백열전구와 같은 대부분의 광원은 결이 맞지 않은 수많은 빛을 넓은 파장 범위에서 넓은 면적으로 방출한다. 레이저의 파장은 매질 등의 구성요소에 의해 정확하게 정해진다. 매질에 따라, 아르곤에서는 푸른색, 이산화탄소에서는 무색(적외선), 루비에서는 붉은색의 레이저가 방출된다.
역사.
1917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전자기 방사선의 흡수, 자연 방출, 유도 방출을 위해 개념적으로 아인슈타인 계수에 기반을 둔 막스 플랑크의 방사 법칙을 재유도함으로써 방사양자설(Zur Quantentheorie der Strahlung)이라는 논문에 레이저와 메이저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보통의 광선과의 차이.
햇빛을 한 점에 집중하면 종이를 태울 정도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레이저의 경우 태양빛에 비하여 단위 면적당 얻어지는 에너지가 훨씬 많은데, 태양빛은 직경 1000분의 1mm 크기에 집광(集光)시키는 것이 어렵지만 레이저 광(光)이라면 그것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1mW 출력의 레이저라도 단위 면적당으로는 태양빛의 100만 배의 에너지 밀도가 된다. 1mW라면 꼬마 전구를 켤 수 있는 전기보다도 더욱 작은 출력이다. 이렇게 되면 종이를 태우는 정도가 아니라 출력 여하에 따라서는 사람을 살상할 능력까지 지니고 있다. 레이저 광이 군사용 무기로도 쓰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1960년 7월, 미국의 T. H. 메이먼 박사는 여러 과학자들과 보도진 앞에서 레이저 빔으로 풍선을 터뜨려 보였다. 그 때부터 이 빛의 마술은 새로운 도구로서 과학사에 획기적인 한 페이지를 추가하게 되었다. 빛이 파동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자연광이 서로 다른 많은 파장과 위상의 빛이 섞여 있는 데 비하여 레이저 광은 단일 파장 동위상의 빛이다. 파장이란 물결의 봉우리와 봉우리, 혹은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의 길이를 말한다. 빛은 파장마다 일정한 색을 가지고 있으므로 단일 파장인 레이저 광은 단일색이 된다. 레이저의 선명한 색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다만 레이저에는 모두 색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시광(可視光) 이외의 파장을 가진 레이저 광이라면 모양도 색깔도 보이지 않는다.
위상이란 물결의 어긋남을 말하는데, 동위상이라는 것은 물결의 봉우리와 봉우리, 골짜기와 골짜기가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다시 말해서 꼭 겹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때문에 레이저 광은 자연광에 비하여 매우 잘 다듬어진 '깨끗한 물결'의 빛이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레이저 광은 아무리 먼 거리까지 가도 빛이 퍼지지 않는다. 자연광이 사방팔방으로 확산해 버리는 데 비하여, 레이저 광은 똑바로 일직선으로 뻗어 간다. 이와 같은 성질을 지닌 레이저는 많은 분야의 관심을 끌어 눈 깜짝할 사이에 사용용도가 확대되어 갔다.
빛 본래의 성질에 더하여 그 강력한 에너지를 이용하여 공업·의료·핵융합·계측·정보 기억·광통신에 이르기까지 탄생 후 불과 35년 동안에 눈부시게 연구 개발되어 용도가 확대되어 왔다.
레이저 산업 분야.
현재 레이저 산업의 시장규모는 수조 원에 이른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분야는 콤팩트 디스크, DVD, 블루레이 디스크 등의 광디스크 장치이다. 이외에도 바코드 리더와 레이저 포인터에도 주로 사용된다.
산업적으로 레이저는 철이나 금속을 자르거나 표면에 그림, 글씨를 새기는 데 사용된다. 레이저는 다양한 분야의 과학에서 사용되는데 특히 정확하게 정해지는 단색의 파장 때문에 분광학 분야에 주로 사용된다. 펄스 레이저의 경우 짧은 펄스 폭을 이용하여 짧은 시간 동안에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데 사용된다. 군사적으로 레이저는 공격 대상을 식별하거나 미사일 등의 무기를 유도하는 데 사용되며 전술 고에너지 레이저와 같이 미사일이나 비행체 등을 요격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의학에서는 안과 수술, 미용 목적의 수술 등에 사용된다. 관성항법장치 내에서 Ring Laser Gyro나 Fiber Optic Gyro의 형태로 이용되며 물리학 분야에서는 레이저 냉각으로 원자를 극저온으로 냉각시키는 용도로 사용한다. 원자시계, 라이다 측량에서도 활용된다.
어떻게 강한 에너지를 내는가.
빛을 증폭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빛의 힘을 강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어떤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와 분자를 자극하여, 빛 등의 전자파를 에너지로서 꺼내는 것을 말한다. 물질에는 각각의 고유한 에너지 준위가 있어, 증폭되었을 때에 방출되는 빛의 에너지도 각각 일정한 값을 갖는다. 방출되는 빛의 파장이 물질마다 달라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분자와 원자는 통상 각각 일정한 에너지 준위에서 안정되어 있는데, 이것을 바닥 상태라 한다. 그런데 밖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에너지 준위가 높은 여기 상태가 된다. 이 때의 분자와 원자는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에너지 준위가 낮은 안정 상태로 돌아가려고 빛을 방출한다. 이 자연 방출로 얻어지는 빛은 무질서한 빛이 혼재하여 파장도 위상도 제각기 다르다. 이와 같은 빛을 '인코히런트(Incoherent)'한 빛이라 하는데, 이 빛은 일상 생활에서 체험하는 빛과 똑같은 것이다. 한편 원자와 분자는 자신이 자연 방출하는 빛과 똑같은 파장의 빛에 부딪치면 유도되듯이 빛을 방출하는 성질이 있다. 이 빛은 원래의 빛과 파장·위상·진행 방향도 완전히 똑같은 가간섭적(可干涉的) 빛이다. 레이저 광을 꺼내는 데는 광공진기(光共振器)를 사용한다. 이것은 광축(光軸)이 일치하도록 좌우에 서로 마주보는 거울을 놓고, 그 사이에 레이저 발전(發振)을 시키기 위한 물질을 놓은 것이다. 매질로서는 결정(結晶)을 비롯한 고체 외에 액체, 기체도 사용되는데 현재까지 수천 종류에 이르는 레이저 광이 확인되고 있다. 이 광공진기의 레이저 매질에 자극을 주어 연속적으로 여기(勵起)를 만들어 내면, 자연 방출과 유도 방출이 일어난다. 자연 방출도 유도 방출도 처음에는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서 일어나지만 좌우의 거울에 수직으로 닿는 빛만은 반사되어 거울 사이를 몇 번이고 왕복하는 동안에 유도 방출을 되풀이하여 레이저 광으로 성장해 간다. 이때 한쪽 거울에 부분 투과성의 것을 사용하면 내부를 왕복하고 있는 빛의 일부분이 광공진기 밖으로 방출된다. 이렇게 해서 레이저가 발생되는 것이다.
활용.
레이저를 이용한 가공.
레이저 가공은 강력한 출력의 레이저를 사용하여 금속, 플라스틱, 나무 그리고 천 등의 절단, 구멍 뚫기와 용접, 담금질 등을 하는 기술이다. 작동 속도가 빠르고 초점을 정확히 맞출 수가 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 이용되고 있다. IC와 LSI, 정밀 기기의 가공에 레이저는 매우 뛰어나다. 매우 작은 점에 집광(集光)할 수 있고 에너지 밀도가 큰 것이 레이저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를 비롯하여 보석·내열합금·세라믹스 등도 가공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시계의 베어링으로 쓰이는 직경 1mm의 루비에 직경 0.05mm의 구멍을 1초 동안에 10개 이상이나 뚫는다. 같은 레이저 가공기라도 출력을 달리 하면 갖가지 작업을 할 수 있다. 출력을 높여 연속적으로 빛을 대면 금속을 절단할 수가 있으며, 재료가 녹으면서도 증발하지 않을 정도로 출력을 줄이면 용접기로 변한다. 더욱 줄이면 금속 표면에만 열처리를 한다든지 금속 표면의 흠을 체크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산업용 레이저는 실용화가 뛰어나다. 아직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이것만 해결되면 종래의 공작기계의 이미지를 바꾸어 버리게 될 것이며 소형화, 고효율화(高效率化), 자동화, 그리고 작업장의 면적을 줄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바야흐로 커터라든가 드릴 등이 모습을 감추고 레이저 광선으로 바뀔 날도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의료.
의료 분야에서도 레이저는 눈부시게 활용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이 레이저 메스로 이것은 레이저 광을 렌즈로 집광시켜 한 점에 조사(照射)하여, 강력한 에너지로 생체 조직을 순간적으로 증발, 기화시켜서 절개하는 것이다. 절개되는 부분의 조직은 순간적으로 1500℃ 이상이 되어 열에 의하여 증발해 버린다. 출력을 100℃ 이하로 낮추면 조직은 응고되기 때문에, 종래의 메스보다도 출혈이 적어지므로 출혈이 많은 부위의 수술에 적합하다. 의료 분야에서는 레이저 메스로 대표되는 열 효과의 이용이 주였는데, 최근에는 다음 단계로 크게 진전되려 하고 있다. 이것은 광화학 반응을 이용하여 살세포 효과(殺細胞效果)를 얻으려는 것으로, 암 치료에 큰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체내에 HpD 라는 색소를 주입하면 암세포만이 반응한다. 왜 암세포만이 반응하는지 그 얼개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 반응이 생겼을 때 이 색소에 흡수되기 쉬운 레이저를 조사(照射)하면 암세포의 발육을 저지하고, 살세포 효과가 있는 물질이 생성되어 암이 치료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레이저를 치아에 조사하는 것만으로 치통을 멎게 한다든지, 이의 치료를 무통(無痛)으로 하는 방법도 고안되었다. 또한 흥미로운 일은 어떤 레이저를 이에 조사하면 치수(齒髓)의 반응성에 2차적인 석회화(石灰化)가 생긴다는 것을 발견한 것인데, 이것은 장차 충치 치료 방법을 크게 바꿀 가능성이 있다. 레이저에 의한 무통 치료의 경우도 왜 환자가 통증을 느끼지 않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레이저라고 하면 이제까지는 열 효과면만이 강조되어 왔지만, 앞으로는 좀 더 다른 면에서의 응용이 적극적으로 연구, 개발되어 갈 것이다. 치료 목적 이외의 검사에도 레이저가 이용되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응용이 기대되고 있다. '살인 광선'이기는 커녕 인류를 살리는 빛으로서 크게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되고 있는 분야로 레이저 계측(計測)이 있다. 과거에는 미리 알고 있는 두 점 사이를 맺는 선과 측정하고자 하는 지점과의 각도를 바탕으로 거리를 측정하여 지도를 만들었는데, 레이저 계측법은 측정하고자 하는 지점에 반사경을 놓고, 바닥점에서 레이저 광을 발사하여 되돌아오는 시간으로 거리를 구하려는 것이다. 이 방법은 정밀을 요하는 지도 작성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산업, 의료, 통신 분야.
하이테크 산업이라 하여 각국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오늘날의 최첨단 기술 중에서도 광기술(光技術)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마침내 실용 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한 광통신의 주역도 레이저와 광파이버이다. 전기 신호 대신 빛의 신호를 통해서 먼 곳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인데, 그것으로 보낼 수 있는 정보량은 종래의 방법에 비하여 엄청나게 크며, 또한 빨라졌다. 개발에서부터 불과 35여 년 동안에 레이저는 눈부시게 그 영역을 넓혀 왔고, 바야흐로 새로운 '인공 태양'까지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 핵융합의 실험이 그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실용화가 뛰어난 레이저의 연구 개발은 종래의 산업, 의료, 계측, 통신 등의 분야를 일신하고, 과학사에 획기적인 한 페이지를 더해 줄 것이다. |
3723 | 707226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23 | 온실 효과 | 온실효과(溫室效果)는 태양의 열이 지구로 들어와서 나가지 못하고 순환되는 현상이다.
태양에서 방출된 빛 에너지는 지구의 대기층을 통과하면서 일부분은 대기에 반사되어 우주로 방출되거나 대기에 직접 흡수된다. 그리하여 약 50% 정도의 햇빛만이 지표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때 지표에 의해 흡수된 빛 에너지는 열에너지나 파장이 긴 적외선으로 바뀌어 다시 바깥으로 방출하게 된다. 이 방출되는 적외선은 반 정도는 대기를 뚫고 우주로 빠져나가지만, 나머지는 구름이나 수증기,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 효과 기체에 의해 흡수되며, 온실 효과 기체들은 이를 다시 지표로 되돌려 보낸다. 이와 같은 작용을 반복하면서 지구를 덥게 하는 것이다.
실제 대기에 의해 일어나는 온실 효과는 지구를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만약 대기가 없어 온실 효과가 없다면 지구는 화성처럼 낮에는 햇빛을 받아 수십도 이상 올라가지만, 반대로 태양이 없는 밤에는 모든 열이 방출되어 영하 100℃ 이하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나쁜 영향으로 많이 거론되는 온실 효과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일부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기체들이 과다하게 대기 중에 방출됨으로써 야기될지 모르는 이상 고온에 따른 지구 온난화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온실 기체 (온실 가스).
온실 기체 중에서 온실효과에 기여하는 정도를 4가지 주요 기체로 분류하였다:
지구 온실 효과에 기여하는, 기체가 아닌 주요 물질인 구름은 적외선 복사를 흡수하고 방출하므로 대기의 방사성 특성에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구름은 무엇인가? 구름은 액체 상태에 속한다.
이산화탄소.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매년 그 양이 늘어나고 있다. 인간이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사용하게 된 화석연료에 의해 그 양은 크게 늘었다. 1750년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31%가 늘어나서 2003년에는 376ppm의 양이 대기 중에 존재했다. 이는 남극 빙하 속의 이산화탄소 양을 통해 측정한 과거 65만년 동안의 어느 시대에서보다 높은 양이다. 온실기체로 봤을 때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를 그다지 유발하지 않는 편에 속하며, 같은 농도의 메테인에 비해 20배 정도 그 효과가 약하다.
메테인.
현재 연간 2억 5천만 톤이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 메테인은 화석연료를 태울 때에도 발생하지만, 비료나 논, 쓰레기더미에서도 발생하고, 심지어는 초식동물이 풀을 소화시킬 때 호흡에서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가 늘어나고 식량 생산을 늘려 나가는 과정에서 대기 중에 메테인이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툰드라 지방의 땅이 온난화로 인해 따뜻해지면 메테인을 방출할 것이라는 가설도 있다. 해저에도 메테인가스가 발생한다.
수증기.
수증기는 대기 중에 대단히 많은 양이 존재하며, 흡수할 수 있는 열량 역시 이산화탄소나 메테인에 비해서도 대단히 크다. 하지만 수증기는 구름을 형성해서 태양빛을 반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 어떻게 수증기가 온실효과에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또한 대기 중의 수증기량을 인위적으로 제어할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이유.
태양의 열은 지구에 들어오면 다시 나가는 것이다. 그 열은 지구 복사열이라 한다. 그러나 온실가스의 증가로 온실가스가 지구를 둘러싸게 되었다. 그 이유로 지구에 막이 생겼으며 태양의 열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온실가스는 지구의 대기 속에 존재하며, 땅에서 복사되는 에너지를 일부 흡수함으로써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기체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테인이 있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화석연료의 연소로 발생된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많아지게 됨으로써, 대기 중 온실가스가 늘어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환경 문제로 대두되게 되었다. |
3724 | 3295598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24 | 온도 | 온도(溫度, , , )는 물질의 뜨겁고 찬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온도는 물리학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물리량 중 하나이다. 온도는 일반적으로 다음 두 가지 방법으로 정의된다.
일반적인 정의의 온도는 온도의 경험적인 개념과, 독립적인 온도의 존재성을 보장하는 열역학 법칙중 제 0법칙에 기초한다. 일반적인 정의의 온도는 일정한 기준을 통해 만들어진 온도계로 측정되는 값이다.
열역학적 정의의 온도는 19세기 중반 열기관과 열역학에서 이어지는 통계역학이 발전되면서 에너지와 엔트로피간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파생되어 나왔다. 열역학적 정의의 온도는 에너지를 엔트로피로 편미분한 값으로 나타내지며, 다양한 기초적인 물리법칙과 근본적으로 관련되어있다. 열역학적 정의의 온도는 계의 평형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의할 수 없다.)
온도의 국제 단위는 켈빈(K)이다. 켈빈은 물의 삼중점의 열역학적 온도의 1/273.16으로 정의된다. 일반적인 정의에 사용되는 온도 기준에 열역학적 정의의 온도를 사용함으로써 일반적인 정의의 온도라도 물리학적인 의미, 다양한 기초적인 물리법칙과의 관련성을 만들 수 있다.
정의.
온도의 개념.
온도의 개념은 우리의 경험에 비롯한 뜨겁고 차가움의 정도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뜨거운 물체와 차가운 물체를 접촉시키게 되면 뜨거운 물체로부터 차가운 물체로 자발적으로 에너지가 열의 형태로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온도의 개념은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밖으로 배출하려고 하는 성질의 정도"이며, 편의 상 온도가 높을수록 에너지를 많이 방출하려고 하는 성질이 크다고 정의한다.
온도의 일반적인 정의.
열역학 제 0법칙은 "어떤 계 A와 B가 열적 평형상태에 있고, B와 C가 열적 평형상태에 있으면, A와 C도 열평형상태에 있다."이다. 이는 앞서 말한 온도의 개념을 생각해본다면 온도, 즉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밖으로 배출하려고 하는 성질의 정도"가 외부에 접촉한 계와 상관없이 독립적인 물리량으로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기준이 되는 계 몇 개를 정하고 다른 계들을 그 계와 접촉시켜 열이 흐르는 방향을 봄으로써 계의 온도의 상대적인 높낮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대적인 높낮음을 절대 온도( K)나 섭씨 온도( °C)와 같이 기준을 만들어 정한다면 어떠한 계의 온도는 그 기준 내에서 이론적으로 정의가 된다. 온도의 기준과 온도에 따른 부가적인 성질들(알코올의 부피증가, 흑체복사 등)을 통해서 온도계를 만들 수 있고, 온도의 일반적인 정의는 "정해진 온도의 기준에 의하여 만들어진 온도계에서 측정되는 값"이라고 할 수 있다.
온도의 일반적인 정의가 갖는 성질.
온도의 일반적인 정의는 그 자체로 다음을 보장한다.
첫째, 온도가 다른 물체를 열 교환이 일어날 수 있도록 접촉시켰을 때 온도가 높은 물체에서 낮은 물체로 자발적으로 열이 흐르게 된다.
둘째, 두 물체가 충분한 열 교환을 통해서 열 평형에 이르렀을 때 두 물체의 온도는 같게 된다.
온도의 일반적인 정의의 문제점.
온도의 일반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은 개념에서 애매모호함이 있다.
첫째, 온도의 일반적 정의는 절대적 물리량으로서의 온도의 존재성을 보장하는 열역학 제 0법칙 "어떤 계 A와 B가 열적 평형상태에 있고, B와 C가 열적 평형상태에 있으면, A와 C도 열평형상태에 있다."을 근본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즉, 일반적인 정의의 온도는 열역학 제 0법칙에 기초해야한다. (반면 뒤에 열역학적 정의는 열역학 제 0법칙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열역학적 정의는 오히려 열역학 제 0법칙을 증명할 수 있다)
둘째, 일반적인 온도를 정의함에 있어서 온도의 상대적인 높낮음을 통해서 온도의 기준을 정의하였는데, 그 기준에 물리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즉 일반적인 온도의 온도기준은 온도의 상대적인 높낮음에 순서를 나타낼 뿐 물리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온도의 열역학적 정의.
내부적으로 열 평형 상태에 이른 물리적 계의 열역학적 온도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formula_1 또는 formula_2
열역학적 정의의 일반적인 정의의 관계.
온도의 열역학적 정의는 일반적인 정의가 보장하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잘 보장한다.
내부적으로 열 평형 상태에 있는 두 계 A,B가 접촉되어있어 열 교환이 자유롭게 일어난다고 하자. 열역학 제 2 법칙에 따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계의 엔트로피의 합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열이 이동하며 열 평형상태에 도달하였을 때 전체 엔트로피는 최댓값에 도달한다. 각 계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U", "U"라고 하자. 계 B로부터 계 A로 미소 에너지 흐름 "Q"이 발생하였다고 할 때 "U"와 "U", "S"은 다음과 같다.
두 계가 열 평형을 이루고 있을 때 총 엔트로피는 최댓값을 가지므로 미소 Q에 대하여 "S"가 0이어야 한다.
formula_6, 평형상태에서
따라서, formula_7
위 식은 두 계가 열 평형에 있을 때 두 계의 온도는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도의 일반적인 정의와 열역학적 정의가 둘 다 필요한 이유.
정해진 온도 기준에 기반하는 일반적인 온도의 정의는 19세기 중반 열역학이 발전하여 온도와 열, 엔트로피에 대한 이해가 되기 전까지 확립이 되었다. 이때의 온도의 기준은 보통 열용량, 부피팽창, 흑체복사등에 기초하여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하지만 관계가 있는 물리량들에 기초하여 선형적으로 정의를 하였다. 반면 열역학이 발전하면서 열역학적 정의의 온도는 일반적인 온도의 정의와 다르게 그 자체로 기초적인 물리법칙과 물리량에 연관이 되어 물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열역학적 정의의 온도는 일반적인 온도의 정의와 다르게 그 자체로 물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게 되지만, 이론에 기초하여 정의가 되므로 실제로 정확하게 측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일반적인 온도를 정의할 때 사용되는 온도 기준을 열역학적 정의의 온도에서 따온다면 그렇게 정의된 일반적인 정의의 온도는 열역학적 정의의 온도와 같이 물리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인 정의의 온도와 열역학적 정의의 온도의 상호적인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온도의 역사.
고대의 온도 정의.
BC 485년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는 그의 논문 <자연에 관하여>에서 프리멈 프리지덤(primum frigidum)이라는 가상의 물질을 만들어 이것이 세상의 모든 냉각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파르메니데스의 논문을 온도에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접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의 온도 정의.
1702-1703년 길리암 아몬톤(Guillaume Amontons)은 외삽법을 통해 기압이 0이 될 때는 열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 때의 온도를 0으로 한 아몬톤 온도를 만들어 절대 온도의 개념을 만들고자 한다. 실제로 그가 만든 아몬톤 온도에서의 절대 0도는 지금의 섭씨 온도로 환산하면 -240 °C 정도로 현재의 절대 온도로 쓰이는 -273.15 °C와도 33.15 °C의 차이만을 보인다.
온도를 정의하기 위해서 과거의 과학자들은 고정점(Fixed point)의 필요성을 느꼈다. 고정점(Fixed point)이란 온도의 기준점이 될 수 있도록 항상 같은 온도에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을 말한다. 고정점에 따라서 온도의 기준이 달라지므로 고정점에 따라서 온도의 정의도 달라졌다. 각자의 고정점과 방법으로 온도를 정의하려 한 과학자들을 살펴보자.
셀시우스의 온도 단위.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는 최초로 국제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표준 온도 단위를 만들고자 시도했다. 그는 그의 논문 <온도계의 두 고정된 온도에 대한 관찰(“Observations of two persistent degrees on a thermometer “)>에서 물의 어는점은 기압에 무관하지만 끓는점은 기압에 의존한다는 실험 관찰 결과를 밝힌다. 현대의 측정 결과와 비교해봐도 손색없을 정도로 그의 측정은 정확했으며 표준 기압에서 벗어나는 압력에 의한 온도 변화를 보정할 수 있는 방법도 고안하여 온도의 단위를 제시했다. 그는 그의 온도를 스웨덴의 웁슬라 왕립학회(Royal Society of Sciences in Uppsala)에 제안하여 물의 끓는점을 0 °C로, 어는 점을 100 °C로 정의했다. 하지만 이후 1745년에 칼 리네우스(Carolus Linnaeus)에 의해 편의상 물의 어는점이 0 °C로, 끓는 점이 100 °C로 바뀌어 정의된다.
요한 람베르트의 온도계.
1777년 요한 람베르트(Johann Heinrich Lambert)는 그의 저서 피로메트리에(Pyrometrie)에서 일정한 부피를 가진 기체에서의 압력과 온도의 관계를 이용한 절대 온도계를 만들었다. 이 온도계를 이용해 람베르트는 기체의 압력이 0에 다다랐을 때의 온도를 절대 영도로 정의하고 외삽법을 통해 절대영도를 -270 °C라는 현대의 값과 매우 가까운 값을 얻어낸다.
파렌하이트의 온도 단위.
1724년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는 세 가지 고정점을 이용했다. 가장 먼저 얼음, 물, 염화암모늄으로 이루어진 혼합물이 평형을 이뤘을 때의 온도를 0 °F로 정의했다. 물의 어는 점을 두 번째 고정점, 32 °F로 이용했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고정점, 96 °F는 사람의 체온으로 정의했다. 이후에 파렌하이트는 자신의 온도를 이용하면 600도 부근에서 수은의 끓는점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물은 어는점보다 약 180도 높은 온도에서 끓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파렌하이트가 정의했던 온도에서는 물의 끓는점이 32도보다 약 180도보다 높은, 애매모호한 온도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훗날에는 물의 끓는점이 212 °F가 되도록 화씨 온도가 새롭게 정의됐다.
고정점의 안정성에 대한 논란.
이렇게 고정점을 기준으로 온도를 정의했기 때문에 기준으로 삼은 자연 현상이나 상태는 확실하게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런던 왕립학회의 토의.
1776년 런던 왕립학회에서는 온도를 정의하는데 필요한 고정점들에 대한 제안받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한다. 물이 끓는 현상을 고정점으로 하는 과학자들이 당시에도 많았는데 물의 끓음 현상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먼저, 물의 끓음 현상은 기압에 의존했기 때문에 기압에 대해서는 고정이 되지 안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왕립학회의 위원회에서 제안된 것은 29.8inHg(=756.9mmHg=0.996atm)의 기압을 기준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온도계 내부의 열 전달 문제였다. 당시에는 수은온도계가 사용됐었는데 온도계의 구부에 있는 수은의 온도와 온도계의 수은기둥의 수은의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측정하고자 하는 온도가 측정되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런던 왕립학회는 온도계를 구부는 물론이고 온도계 전체를 물에 담그면 된다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데루크의 이의 제기.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물이 정확히 고정된 온도에서 끓는 것이 아니라 끓으면서 온도변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온도에 따라서 그 끓음의 정도도 다르게 나타났다. 스위스의 지질학자이자 기상학자였던 제안 안드레 데루크(Jean-Andre Deluc)는 “물이 끓기 시작할 때, 물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열을 가지고 끓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 전체, 즉 용기의 바닥부터 물의 표면까지 가장 격렬한 상태로 끓어야 한다. 물이 끓기 시작할 때부터 가장 격렬하게 끓는 상태까지 물의 온도는 1도 이상의 열을 흡수한다”고 얘기했다. 데루크(Jean-Andre Deluc)를 비롯하여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 프랑코이 마르셋(Francois Marcet), 프랑코이 마리에 루이(Francois Marie Louis), 루이 듀포어(Louis Dufour), 조지 크렙스(Georg Krebs)가 물의 끓음 현상과 온도의 관계를 탐구했다. 이들 모두 일반적으로 정의된 끓는점은 물이 정확하게 끓게 하는 온도가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실제로 어떤 상태로 물이 끓는지에 관해서는 모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의 끓음 현상은 이후에도 고정점으로서의 의미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는 끓는 점을 초과하는 온도에서도 완전한 끓음이 시작되면 온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끓는 점을 초과하는 온도에서 끓는 현상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물을 끓임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다.
물의 끓음 현상을 고정점으로 사용하면서 끓음 현상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끓어서 생긴 수증기의 온도를 재는 방법이 제시되었다. 1777년 헨리 캐번디시는 “끓는점을 보정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온도계를 물에 넣는 것이 아니라 닫혀 있는 용기의 수증기에 노출시키는 것이다.”라고 했으나 같은 해에 이에 대해 데루크(Jean-Andre Deluc)은 “이론적인 것을 떠나, 수증기와 물은 수증기가 생성되기 전에 섞여 있기 때문에 서로의 온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증기의 온도를 측정하는 것이나 물의 온도를 측정하는 것이나 그 문제점은 그대로 드러난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1842년에 프랑코이 마르셋(Francois Marcet)은 물은 105 °C에서도 끓지만 증기의 온도는 이 때 1 °C범위 내에서 초과한다는 실험을 통해 증기의 온도를 재는 방법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다. 이후로 게뤼사크를 비롯하여 프랑코이 마르셋(Francois Marcet), 루이 듀포어(Louis Dufour), 마셸 에밀레 베르뎃(Marchel Emile Verdet), 데시르 게르네즈(Desire Gernez), 샤를 톰린슨(Charles Tomlinson) 등의 사람들의 다양한 방법으로 온도와 물의 끓음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1880~1881년에 존 에이켄(John Aitken)은 수증기의 온도는 물의 끓는 온도만큼이나 불안정하게 고정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존 에이켄(John Aitken)에 따르면 증기의 온도가 안정된 고정점처럼 보였던 이유는 공기 중의 먼지 때문이었고 먼지가 걸러지면 물의 끓는점을 측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였다.
이후 데루크(Jean-Andre Deluc)의 제안대로 의해 온도를 수은온도계로 재는 것을 정의로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19세기의 온도 정의.
열소론적 정의.
이후에는 온도를 열소론으로 정의하려는 윌리엄 어바인(William Irvine), 레느 저스트 하위(René Just Haüy), 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 등이 등장했다.
윌리엄 어바인(William Irvine)은 열소(caloric)이라는 물질이 열의 원인 또는 열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열소의 양은 열용량과 절대온도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따라서 열용량은 물체가 열소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으로 정의했고 절대온도는 열소의 정량적인 값으로 정의했다. 잠열은 열용량이 변할 때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열로 정의했다.
이후 1808년 존 돌턴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을 때 부피의 합보다 합쳐진 부피가 작기 때문에 열용량이 작아져 열소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 온도가 상승하게 된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이후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는 결합 열소(combined caloric)를 물질과 화학적으로 결합된 열소로 온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열소로 분류했고 자유 열소(free caloric)를 물질과 결합되지 않은 열소로 온도에 영향을 주는 열소로 분류했다.
레느 저스트 하위(René Just Haüy)는 1803년 <자연철학에 관한 논문>(Elementary Treatise on Natural Philosophy)에서 물체가 열을 받아 팽창할 때 부피 팽창은 결합 열소 때문이고 온도 상승은 자유 열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낮은 온도에서는 분자간 거리가 작아 더 큰 인력이 필요하므로 결합 열소가 더 많이 결합되어야 한다.
1821년에는 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결합 열소를 분자에 결합된 열소로 척력이 작용하지 않는 열소로 재정의했고 자유 열소는 분자에 결합된 열소로 척력이 작용하는 열소로 정의했다. 공간의 자유 열소는 물질에 결합하지 않은 열소이고 최종적으로 온도는 공간에 존재하는 자유 열소의 밀도로 정의했다.
분자 운동론적 정의.
온도에 대한 역학적 이론들이 등장을 하는데 이 이론들은 열을 입자들의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벤저민 톰프슨(Benjamin Thompson)은 분자들은 고정점들에 대해 진동을 하고 있고 온도는 이 진동의 진동수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진동하는 분자들은 에너지 손실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0°가 되는 온도도 없다고 주장했다. 존 헤라패스(John Herapath)는 온도가 분자의 속도에 비례한다고 주장했지만 존 와터슨(John Waterston)은 온도가 분자의 formula_8에 비례한다고 주장했다.
샤를의 법칙과 게이뤼삭의 절대 영도.
1802년 자크 알렉상드르 세사르 샤를은 일정한 압력에서 온도에 따른 기체의 부피 변화를 연구한다. 그는 그의 발견을 출판하지 않았지만 기체의 온도와 부피가 선형적으로 비례한다는 샤를의 법칙을 발견한다.
formula_9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은 실험 자료를 바탕으로 절대 영도가 -273 °C에 있을 것이라 예측했고 기체 팽창 계수에 대해 처음으로 273이라는 수를 쓰기 시작했다.
카르노의 열기관 고안.
1824년에 사디 카르노는 고온에서 저온으로 열이 흐르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열기관을 고안해낸다. 이 열기관은 카르노 순환을 따르는데 카르노 순환이란 과정 1에서 기체가 고온 A에서 열을 받아 등온 과정을 거쳐 팽창하며 과정 2에서는 A를 제거하고 단열 과정을 거쳐 팽창한다. 그 다음 과정 3에서는 저온 B에 열을 내보내며 다시 등온 과정을 거치며 수축한다. 마지막으로 과정 4에서는 B를 제거한 후 단열 과정으로 수축시켜 다시 초기 상태로 되돌리고 이 순환과정을 카르노 순환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카르노 순환을 따르는 열기관의 효율은 고온의 온도와 저온의 온도에만 의존한다는 것을 보인다.
톰슨의 절대 온도.
앞선 아몬톤의 시도, 카르노와 클레이페론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1848년에 윌리엄 톰슨은 절대온도를 물질에 관계없이 1도를 카르노 순환에서 단위일을 하는데 필요한 열의 양으로 정의한다. 이 때 제임스 줄은 열과 일이 상호변환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열기관에서 고온에서 열기관으로 흘러들어온 열은 일부 일로 변환되고 남은 열이 저온으로 흘러나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854년에 톰슨은 이를 받아들여 카르노의 이론을 재정립하고 절대 온도에 대한 두 번째 이론을 만들어낸다.
formula_10
formula_11
윌리엄 톰슨은 그의 논문 <온도의 단위에 대하여>(On the Thermometric Scale)에서 절대 영도의 정의와 그를 기준으로 한 온도 단위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는 자크 알렉상드르 세사르 샤를과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의 앞선 연구에서 얻어낸 온도에 따른 기체의 팽창 계수 0.00366의 역수에 음의 값을 취한 -273.22 °C를 절대 영도로 정의하고 섭씨 온도의 눈금 크기를 사용하는 새로운 온도의 단위를 만들고 이를 켈빈이라 정의했다.
랭킨의 온도 단위.
윌리엄 랭킨(William John Macquorn Rankine)은 윌리엄 톰슨의 온도 단위와 거의 같은 온도를 정의했으나 그는 섭씨 온도의 눈금 크기를 사용하는 대신 화씨 온도의 눈금 크기를 사용했다.
현대 온도 정의의 확립.
1930년대의 단위 조정.
1930년대에 기체의 온도에 따른 부피 팽창 실험을 정밀하게 한 결과 물의 어는점을 0 °C라 했을 때 절대 영도는 -273.15 °C로 나타났다.
국제 도량형 총회의 온도 확립.
1948년 제 9회 국제 도량형 총회(CGPM: Conférence Générale des Poids et Mesures, General Conference on Weights and Measures)의 세 번째 안건에 따르면 물의 삼중점을 정확히 0.1 °C로 약속했다. 그리고 이후 1954년 제 10회 국제 도량형 총회의 세 번째 안건에 따르면 캘빈 온도의 눈금 크기를 확립하기 위해서 물의 삼중점(0.01 °C)을 273.16K으로 약속했다. 즉, 물의 어는점과 삼중점의 온도차를 0.1K으로 약속한 것이다. 1967-1968년 제 13회 국제 도량형 총회의 네 번째 안건에서는 캘빈 온도의 눈금 크기를 물의 삼중점의 formula_12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제 도량형 위원회(CIPM: Comité international des poids et mesures, International Committee for Weights and Measures)는 엄밀한 정의를 위해 비엔나의 표준 물(Vienna Standard Mean Ocean Water)과 같은 성분을 가진 물의 삼중점을 273.16K으로 정의했다.
온도와 운동, 에너지간의 관계.
병진운동과 운동에너지.
충분히 큰 계(통계역학적으로 충분한 입자 수를 갖추고 있는)의 열역학적 온도는 입자들의 병진운동 속도의 평균 평방근에 비례한다. 입자의 병진운동은 x,y,z 총 세 개의 자유도를 통해 움직인다. 이 특정한 형태의 운동에너지를 역학적 온도라고도 정의한다. 병진운동은 열역학적 온도뿐만 아니라 압력과 부피에도 관계를 가지는데, 특히 이상기체에서 이상기체 상태방정식 formula_13를 유도해 낼 수 있다.
병진 운동에너지 뿐만이 아니라 진동운동이나 회전운동과 같이 에너지가 미시상태를 나타내는 변수의 제곱에 비례하는 자유도일 경우 그 자유도가 가지는 한 입자의 평균 에너지는 다음과 같이 온도와 볼츠만 상수의 곱의 절반으로 정해지게 된다.
formula_14
이는 에너지 등분배법칙 :
으로, 고전적 통계역학의 가장 중요한 결과중 하나이다. 이는 온도와 계의 운동에너지의 상관관계를 의미한다.
흑체복사.
온도를 가진 물체가 다른 온도를 가진 물체와 열 교환을 하는 방식에는 전도, 대류, 복사 이렇게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전도는 열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두 계의 분자들이 직접 충돌하여 에너지를 교환하는 방식이고, 대류는 온도가 다른 두 계에서 분자들이 직접 움직이며 섞임으로써 에너지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복사는 분자들이 가진 온도에 의해 방출되는 빛을 통해 에너지를 교환하는 방식인데, 이상적인 흑체의 경우에는 진동수 혹은 파장에 따른 빛의 세기는 플랑크 법칙을 따른다.
온도가 T인 흑체에서 방출되는 복사에서 진동수가 ν이고 파장이 λ인 빛의 세기는 다음과 같다.
formula_16
formula_17
온도의 과학에서의 쓰임.
온도는 물리학 외의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많이 쓰이는 물리량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화학에서의 반응속도, 생물학에서의 효소의 활성온도, 천문학에서의 천체의 표면온도 등이 있다.
화학.
아래는 화학에 대한 내용이다.
반응의 자발성.
화학반응의 자발성은 기브스 자유 에너지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 식은 아래와 같다.
따라서 온도에 따른 엔탈피 변화량과 엔트로피 변화량이 주어져 있다면 어떤 특정 온도에서 그 반응의 자발성을 예측할 수 있는데, formula_19이면 정반응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formula_20이면 역반응이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formula_21이면 반응은 평형 상태에 있게 된다.
반응속도.
formula_22
위와 같은 화학반응에서 반응속도는 아래와 같다.
formula_23
여기에서 [A]는 A의 몰 농도, [B]는 B의 몰 농도이고, k는 반응속도상수라고 한다. 반응속도상수는 온도에 의존하는 값인데, 아레니우스 방정식에 의해 결정된다.
formula_24
formula_25은 기체 상수, formula_26는 반응이 일어날 때의 절대온도, formula_27는 반응의 활성화 에너지, 그리고 formula_28는 빈도계수 또는 빈도인자라고 한다. 따라서 온도가 증가할수록 반응속도상수가 증가한다.
생물.
효소.
효소는 생명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매개하는 단백질 촉매이다. 촉매 작용을 하는 원리는 기질과 결합하여 촉매-기질 복합체를 형성함으로써 화학 반응의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어 반응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효소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온도가 변하면 단백질이 변형되어 기질과 잘 결합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효소의 활성도는 온도에 의존한다.
인체 내부에 있는 아밀라아제는 α-아밀라아제인데, 최적온도는 체온 부근이다. 반면에 β-아밀라아제의 경우에는 박테리아, 곰팡이, 그리고 여러 식물들에 존재하는 효소인데, 최적온도는 약 섭씨 60도 부근이다. 이처럼 같은 효소라 할 지라도 구조가 다르면 최적온도가 다를 수 있다.
천문학.
천문학에서 온도는 천체를 종류별로 분류하는 데에 쓰이거나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복사의 종류를 나타낼 때 쓰인다. 천체들은 모두 흑체로 가정하며, 천체를 온도별로 분류하는 방법은 Harvard spectral classification이 있다. 주로 쓰이는 온도의 종류에는 아래와 같이 네 가지가 있다.
유효온도.
별에서 방출되는 플럭스를 전 파장에 걸쳐 합친 플럭스, 즉 관측된 전체 플럭스와 동일한 양의 플럭스를 방출하는 흑체의 온도를 유효온도라고 한다.
formula_29
따라서 유효온도는 아래와 같이 된다.
formula_30
색온도.
두 파장 대에서 관측된 복사 세기의 비와 동일한 비의 복사를 방출하는 흑체의 온도를 색온도라 한다.
formula_31
위의 식은 플랑크 법칙에 따른 것이며 식을 따르는 formula_32가 바로 천체의 색온도가 된다.
밝기온도.
밝기온도는 관측된 표면 밝기와 동일한 밝기를 가지는 흑체의 온도이다.
formula_33
위 식을 만족하는 formula_34가 바로 천체의 밝기온도이며, 우변은 플랑크 법칙을 통해 계산할 수 있다.
운동온도.
일정한 온도를 가지는 분자들은 열운동을 한다. 그 열운동에 의해 생기는 속도 때문에 분자들 사이에 속도 차이가 생기게 되고, 도플러 효과가 생기는데 이 효과를 열적 도플러 확장이라 한다. 열적 도플러 확장에서 파장 변화는 다음과 같은 식에 의해 계산될 수 있다.
formula_35
이렇게 해서 계산된 분자들의 열운동에 의한 속도 차이는 분자들의 평균 속력 또는 평균 평방근(root mean square) 속력의 두 배가 된다. 그 속도 차이가 평균 평방근 속력의 두 배라고 가정한다면 기체 분자의 운동에너지 식에 따라 운동온도는 아래와 같이 된다.
formula_36
측정방법.
온도를 측정하는 기구를 온도계라고 부른다. 온도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나눠보면 일반적으로 온도를 감지하는 측온부 (온도검출단)와 측온부에서 감지한 온도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표시하는 표시부(수신계기), 측온부와 표시부를 연결시켜 주는 도선 또는 배관으로 이뤄져 있다. 뿐만 아니라 액체 글라스 온도계와 같이 측온부와 표시부가 일체형으로 된 것도 있다. 온도계는 측정 방법에 의해 측온부를 피측정 물체에 직접 접촉시켜 온도를 측정하면 접촉법, 그리고 접촉시키지 않고 측정하면 비접촉법으로 분류한다.
접촉법.
열은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하고, 온도가 두개 이상의 물체에 접촉시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접촉된 물체들은 온도가 같게 되는 열평형 상태를 이루게 된다. 즉, 열역학 제 0법칙에 의해, 임의 두 물체가 각각 제3의 물체와 열평형을 이룬다면 임의 두 물체도 열평형 상태에 있게 된다. 따라서 온도를 측정하고자 하는 피측정 물체에 측온부를 접촉시켜 피측정 물체와 측온부가 열평형 상태에 이르렀을 때 감온부의 변화량을 측정함으로써 피측정 물체의 온도를 감지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에 의한 온도 계에서는 감온부와 측정대상의 접촉의 정도에 따라 측정정도 크기가 좌우된다. 그래서 측온부를 측정대상에 접촉 할 수 없는 경우는 측정이 불가능하며, 접촉에 의해서 측정대상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는 큰 오차가 생긴다. 이와 같이 접촉방식을 이용한 온도계로는 유리제온도계, 압력식온도계, 열전대, 바이메탈식 온도계, 저항식 온도계 등이 있다.
비접촉법.
피측정 물체에 감온부를 직접 접촉하지 않는 상태에서 피측정 물체로부터 나오는 빛 또는 열을 감지하여 온도와 빛, 열 에너지와의 일정한 관계를 이용하여 온도를 측정하는 측정방식이다. 측정대상으로부터 방출된 에너지의 강도는 절대온도의 4승에 비례하기 때문에 1000 ℃ 이하의 온도 범위에서는 측정정도가 나쁘나, 장점으로는 움직이는 피측정 대상 및 검출하고자 하는 대상이 보이기만 하면은 쉽게 접촉하지 않고 온도를 측정할 수 있다. 비접촉 방식에 의한 온도계측에 사용되는 것으로는 방사온도계,광고온계,색온도계,적외선온도계(열선) 등이 있다.
단위.
온도의 단위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현재 국제 표준화 기구(ISO) 에서는 국제단위계(International System of Unit, SI)로 켈빈(K)을 사용하고 있다. 켈빈(K)은 절대 온도를 측정하므로, 0K은 절대 영도(이상 기체의 부피가 0이 되는 온도)이다. 이뿐만 아니라 각자 측정방법에 따라 기준을 다르게 잡아 섭씨(℃), 화씨(°F) 라는 온도 단위도 있다. 섭씨온도는 1742년 스웨덴의 천문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가 처음으로 제안하였으며 이는 1atm 에서의 물의 어는점을 0℃, 끓는점을 100℃로 두고 그 사이를 100등분 하여 정한 것이다. 화씨온도는 독일의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의 이름을 딴 온도 단위이며, 이는 1atm에서 물이 어는 온도를 32 °F, 물이 끓는 온도를 212 °F로 두고 이 사이의 온도를 180등분 하여 정한 것이다.
음의 온도.
음의 온도란 절대 영도(0K)보다 낮은 온도를 말한다. 열역학 제3법칙에 따르면 절대 0도보다 낮은 온도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가능한 에너지의 상태가 제한되어 있는 전자와 핵의 스핀을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절대 영도보다 작은 음의 온도를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이것은 거시적 관점에서의 온도에는 해당되지 않고, 에너지 등분배의 법칙에 따라 에너지를 서로 교환하거나 하지 않는 고립된 특별한 자유도에 대해서만 해당하는 것이다. 음의 온도는 바닥 상태에 있는 스핀들에 대해서 밀도 반전 (population inversion) 을 일으키는 “Radio Frequency Technique”를 통해서 실험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높은 에너지 준위를 가지는 상태의 수가 많아지면 계 전체의 에너지가 증가하고, 계의 무질서도가 증가하면서 엔트로피 또한 증가하게 된다. 결국 계 전체의 에너지가 일정 값이 되면 높은 에너지 준위를 가지는 상태의 수와 낮은 에너지 준위를 가지는 상태의 수가 같게 되어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고, 높은 에너지 준위를 갖는 상태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계 전체의 에너지가 증가하면 계의 상태가 정돈되고, 엔트로피가 다시 낮아지게 된다. 따라서 계의 총 에너지와 엔트로피에 대한 그래프는 위로 볼록한 함수의 꼴을 띠게 된다. 여기에서 온도의 열역학적 정의에 따라 formula_37 이고, 극대점에서 그래프의 기울기는 0이므로 극대점에서 온도는 특이점(singularity)이 된다. 또한 극대점 이후에서는 그래프의 기울기는 음이므로 이 부분에서는 음의 온도가 생긴다. 계의 에너지가 계속 커지면 음의 온도는 0에 수렴하게 된다. 밀도 반전 상태에서 생기는 음의 온도는 에너지가 높은 상태이므로 양의 온도보다 오히려 더 뜨거운 상태이며, 음의 온도를 가지고 있는 계와 양의 온도를 가지고 있는 계가 접촉을 하게 된다면 음의 온도를 가지고 있는 계의 에너지가 양의 온도를 가지고 있는 계로 흘러갈 것이다.
주거환경.
사람이 살고 있는 주거환경은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한 생활양식과 함께 개선되어왔다. 체온조절의 부담이 가장 적은 온도, 다시 말하면 덥지도 춥지도 않는 최적온도는 18℃ 정도이며, 15.6~20℃ 정도에서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주변환경으로부터 쾌적함을 유지하려면 온도 외에도 습도를 고려해야 하는데, 습도가 30% 미만이거나 80% 이상이면 좋지 않고, 약 40~60% 정도면 대체로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쾌적함을 주는 습도는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15℃에서는 약60%정도, 18~20℃에서는 약50%, 21~23℃에서는 약40%, 24℃ 이상에서는 대략 35%정도에서 적당한 습도로 여겨진다.
사람이 느끼는 춥고 덥다는 감각은 겨울은 추위에 대하여, 여름은 더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또 같은 기온이라 하더라도 봄에는 가을보다 보통 두껍게 옷을 입고 있는점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사항들이 복합되어 최적온도는 겨울에는 낮아지고 여름에는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체온조절을 위한 온도만큼이나 습도는 면역력을 유지하고 건강한 신체활동을 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겨울철 실내온도에 대한 적정 온도는 18℃~20℃라고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발표한바있는데 이 역시 외부 온도와의 차이 그리고 내복이나 방한용품 착용을 활용한 체온조절 그리고 쾌적한 습도의 유지가 용이함등 현대적으로 개선되어온 과학적인 생활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온도 범위.
국립환경과학원은 환경시험기준에서 온도표시에대해 다음과 같은 기준을 사용하고있다. |
3725 | 94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25 | 온실가스 | |
3726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26 | 오존 | 오존(, O3)은 산소 원자 3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온 대기압에서 푸른빛의 기체이다. 영하 112도 이하에서는 검푸른 액체이며, 영하 193도 이하로 내려가면 고체가 된다. 오존은 불안정하여 이원자의 산소로 분해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압력이 낮아질수록 강하다.
오존이 갖고 있는 강력한 산화력은 하수의 살균, 악취제거 등에 유용하게 이용되기도 하고, 지구 대기중에 오존층을 형성하여 보호막의 역할도 하는 등 좋은 역할을 하지만, 지표면에 생성되는 오존은 인간의 건강에 해로운 대기오염 물질이 된다.
역사.
1785년, 네덜란드의 화학자 Martinus van Marum은 물 위에 전기 스파이크를 수반한 실험을 수행하던 도중 이상한 냄새를 맡았는데, 그는 이것을 전기 반응 때문인 것으로 보았고, 그가 오존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다. 반 세기가 지나 크리스티안 쇤바인은 같은 신랄한 냄새를 맡았다. 1839년 그는 기체 물질을 분리해냈고 이를 "오존"(ozone)이라 명명했는데 이는 "냄새가 나는"을 뜻하는 그리스어 낱말 ozein (ὄζειν)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쇤바인이 일반적으로 오존을 발견한 것으로 인정된다. 오존의 공식 O3은 1865년 Jacques-Louis Soret가 처음 결정하였고 1867년 쇤바인이 확증하였다.
상수도에서의 오존.
오존은 살균력이 뛰어난 화학물질로 수돗물을 만드는 데 쓰인다. 차아염소산(HOCl), 차아염소산이온(OCl-), 클로라민보다 살균력이 우수하다. |
3727 | 712661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27 | 지구 대기권 | 지구 대기권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를 일컬으며 고도에 따라서 생기는 중력의 차이와 구성분자의 밀도에 따라서 여러 층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각각의 층은 고도에 따라서 기온이 차가 심한 것을 관측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대기권은 비록 미소하지만 전자량에 따라서 전하가 가능한 전리층과 이것이 거의 없는 중성층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구조.
태양계의 한 행성인 지구는 기체(氣體)로 둘러싸여 있다. 이 기체는 거의 같은 깊이의 기층으로 되어 있어 기권(氣圈)이라 부르고 있다. 기권을 구성하고 있는 기체를 일괄해서 대기라고도 한다. 지표(地表) 가까이에 있는 대기는 아래 그림과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고도 70km 이상의 상공이 되면 공기 중의 산소(O2)가 분해되어 원자 상태의 산소(O)가 되므로 보통의 공기와는 달라진다. 그러나 대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높이는 1,000km 또는 그 이상이 되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기권의 저면(底面)에 해당하는 대류권(對流圈)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류권의 공기는 직접 지표면에 접하고 있으므로 여러 가지 영향을 지표면으로부터 받는다. 그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으며
첫째 비·눈·구름 등 복잡한 기상현상을 일으키고, 둘째는 계절 변화나 계절풍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태양 고도는 일반적으로 저위도지방에서 크고 고위도 지방에서는 작으므로 태양으로부터 지표면에 도달하는 열에너지는 저위도 지방이 많다. 또 같은 위도에서도 지표면 상에는 성질이 다른 해양이나 사막이 있으므로 열의 상호 교환의 균형이 달라진다. 장소에 따라 대기가 받는 열량이 다르면 공기 밀도도 장소에 따라 차가 생긴다. 밀도가 작은 공기는 상승하고 밀도가 큰 공기는 하강하므로 거기에 대기의 운동이 생긴다. 한편 대기는 지구와 같이 자전하고 있으므로 회전에 의한 편향력이 작용하여 북반구에서는 진행 방향이 오른쪽으로 굽어지게 된다. 예를 들면 적도지방에서 상승한 공기는 북극 지방으로 향하려고 하나 편향력의 작용 때문에 북극지방에 도달하기 전에 서풍이 된다. 대기의 운동에는 지구를 둘러싸고 부는 편서풍대
와 같은 대규모적인 운동으로부터 해륙풍이나 산곡풍과 같은 소규모적인 운동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또한, 그 밖에도 소규모 운동으로 회오리바람이나 난류 등이 있다. 이처럼 대기의 운동, 즉 바람은 여러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다.그래서 대기권에 물질이 닿을 때,타는 것이다
지구 대기권의 구분.
지구 대기권의 층은 조성(組成)뿐만 아니라 온도나 그 밖의 물리적인 성질이 높이에 따라서 다르며, 다시 몇 개의 층으로 분류된다. 지구 대기권은 특성에 따라 지표면에서부터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 외기권의 다섯 층으로 나눌 수 있다.
대류권.
대류권은 지표면에 가장 인접한 대기의 층이다. 대류권은 지표면의 복사열에 의해 가열되므로,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는 낮아진다. (높이 1km마다 약 5°C∼6°C씩 고온이 하강하므로 상공으로 갈수록 기온이 낮아진다.) 즉 온도가 높은 공기가 아래쪽에 있으며, 이는 열역학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므로 쉽게 난류와 기상현상이 발생한다. 적란운(積亂雲)이나 뇌전(雷電)·태풍 등 변화가 많은 일기가 나타난다. 대류권에는 무거운 공기 분자가 모여있으며, 전체 대기 질량의 거의 80%가 모여있다. 대류권은 극지방에서는 지표면으로부터 7–8 km 정도까지의 영역이며, 적도지방에서는 더 높아 18 km 정도까지의 영역이다.
대류권의 윗면을 권계면(圈界面)이라 부르며 그 높이는 적도 지방에서 약 17km, 고위도 지방에서 약 10km에 달한다. 또 중위도 지방에서는 권계면 가까이에 제트기류(jetstream)라 불리는 강한 서풍(西風)이 불고 있다.
성층권.
성층권은 권계면 위에 있으며, 기온은 대류권과 같이 하강하지 않고 거의 일정하다. 고도 20km를 넘으면 기온은 고도에 따라 상승하고, 고도 50km에서 극대(약-3°C)에 달한다. 성층권 중에는 그 중층(약 20∼25km)에 중심을 가진 오존(O3)층이 있는데 오존은 성층권의 가열 요인이다. 오존은 태양으로부터의 자외선을 흡수함에 따라 가열되며, 따라서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가 상승하게 된다. 높은 온도의 공기가 위에 있으므로 열역학적으로 안정되고, 이러한 이유로 난류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비행기 고도(11~13km)로 이용되기도 한다. 성층권은 대류권 위쪽에 위치하며, 대략 지표면으로부터 50km 정도까지의 영역이다.
중간권.
중간권은 다시 고도가 올라갈수록 온도가 감소하는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는 대류현상이 일어나 약간의 구름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기상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상 50km에서 80km까지의 높이이며, 야간운이 생기기도 한다.
열권.
열권은 중간권 상부의 층으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상승한다. 그 이유로는 열권의 밀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적은 열로도 온도가 많이 올라간다는 것이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태양에 가깝다는 이유도 있지만 큰 영향력을 받지는 않는다. 이곳에서는 강력한 태양풍을 직접 맞아서 원자가 전리화되기 때문에 전리층으로 불리기도 한다. 강한 전리층은 전파를 반사하며, 이러한 반사 현상을 이용하여 원거리 무선통신을 하기도 한다. 지상 80–90 km에서 시작하여 500–1000 km까지의 높이이며, 오로라가 생기기도 한다. 유성 또한 관측되며 온도는 다시 상승하여 고도 300km에서는 약 800∼900°C에 달한다.
외기권.
외기권은 지구 대기가 우주 공간과 접하는 최외곽 영역으로, 전리층을 넘어도 대기는 없어지지 않고 극히 희박하기는 하나 기체는 존재한다. 이곳에 존재하는 대부분 가스는 수소와 헬륨이며, 우주공간으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외기권은 500~1000 km 상공에서 시작하며, 끝나는 지점은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10,000 km 정도까지로 생각하기도 한다. 지구 대기로부터 행성의 공간으로 건너올 때 온도는 1,000°C를 넘는다. 최근 인공위성에 의하여 방사능이 강한 공간이 관측되어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반 알렌 대(Van Allen Belt)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상공 약 2,000∼4,000km와 약 13,000km 내지 20,000km 되는 곳에 대상(帶狀)으로 분포되어 있는 강한 방사능대(放射能 帶)이다.
그 밖의 층.
크게 온도로 구별되는 5개의 층과 함께, 몇몇의 두 번째 층이 다른 특성에 의해서 구별된다.
지구 표면에 있는 대기의 평균 온도는 14도이다.
물리학적 특징.
압력과 두께.
해수면에서의 평균적인 대기압은 1이다. 대기의 전체 질량은 5.1480×10^18kg (1.135×1019lb)는 평균해수면의 압력과 지구의 산악지형의 51007.2 메가 헥타르에 해당하는 양보다 약 2.5%가량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 대기의 기압은 압력이 측정된 어떤 지점 위의 전체 무게이다. 따라서 기압은 지역과 날씨에 따라 다양하다.
만약 해수면으로부터 지구의 전체 대기가 특정한 밀도를 가진다면, 이는 8.5km 지점에서 갑자기 끝날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는 고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고, 모든 5.6km 지점에서는 절반이거나 성분에 의해 7.64km에서 절반이 된다. 그러나 대기는 각 층마다 온도, 분자 성분, 태양복사, 중력요소에서 일정한 변화량을 가진다.
다시 말해서, 지구 대기의 질량은 다음과 같이 적절히 구별되어 있다.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은 8,848m인데 반해서, 민간 항공기는 연료를 절약할 수 있는 10km와 13km사이를 운항한다.
심지어 Kármán line 위에는 오로라같은 기상학적으로 중요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 구간에서는 유성이 빛나긴 하지만 더 큰 유성의 경우는 더 깊게 진입하지 않는 이상 타지 않는다. 100km에서 500km이상의 지구의 다양한 전리층은 HF 라디오의 전파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에 반해, 국제 우주 정거장과 우주 왕복선은 일반적으로 대기 방해물이 존재하여 몇 달마다 재가동 시켜줘야 하는 전리층의 F층이 공존하는 350~400km의 고도에 존재한다. 태양 활동에 따라서 700~800km의 높은 고도에 있는 인공위성 또한 대기 방해물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온도와 음속.
각 층은 대부분 온도에 의해서 분할될 것이라고 논의된다. 온도는 해발고도가 낮아짐과 동시에 감소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온도가 안정화된 대류권의 나머지 부분을 통해 큰 수직거리인 11km 이상에서 변화되기 시작한다. 20km 이상의 성층권에서는 오존층에 존재하는 산소와 오존 가스들이 태양으로부터 오는 상당한 양의 자외선을 흡수하기 때문에 고도가 올라감에 따라서 온도도 증가한다. 또한, 열권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90km 이상의 지역에서도 고도가 올라갈수록 온도가 같이 증가하는 구역이 존재한다.
이상기체에서의 음속은 가스의 압력이나 밀도에 의존하지 않고 온도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고도에 따른 대기에서의 음속은 온도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고도에 따른 밀도와 압력의 변화는 반영하지 않는다.
밀도와 질량.
해수면에서의 공기의 밀도는 약 1.2kg/m³이다. 밀도는 직접적으로 측정하지 않고, 온도, 압력, 습도의 측정값을 기체의 상태 방정식에 대입하여 계산한 것이다. 대기의 밀도는 고도가 올라감에 따라 감소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압에 관한 방정식을 사용함에 있어서 적절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더 복잡한 모델은 인공위성의 부식을 예측하는데 사용된다.
대기의 평균 질량은 약 5×10¹⁵톤 또는 지구 질량의 1/1,200,000이다. 미국의 국립 대기과학 연구소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전체 평균 질량인 5.1480×10¹⁸kg은 표면의 압력 또는 수증기의 양에 의존하는 1.2 또는 1.5×10¹⁵kg의 수증기 때문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 수증기의 평균질량은 1.27×10¹⁶kg으로 측정되었고 건조한 공기의 질량은 (5.1352±0.0003)×10¹⁸kg이다.”
광학적 특성.
태양복사(또는 햇빛)는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하는 에너지이다. 지구 또한 복사방출을 일으키긴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파장이 길다. 들어오거나 방출되는 복사는 지구 대기에 의해서 흡수되거나 반사된다.
산란.
빛이 대기를 통과 할 때, 대기와 광자가 서로 상호작용하여 빛이 산란된다. 만약 빛이 대기와 서로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접방사선이라 불리고 이는 마치 태양을 직접적으로 보는 것과 같게 보인다. 간접적방사능은 대기에서 산란된 빛이다. 예를 들어,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린 날에는 전부 산란되기 때문에 직접방사능이 도달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레일리 산란 효과에 의해서 짧은 파장의 빛은 긴 파장의 빛보다 더 쉽게 산란되는데, 이는 하늘이 파란색으로 보이는 이유이다.(우리는 산란된 빛을 보고 있다.) 또한 이것은 어째서 노을이 붉은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태양이 지평선에 가까워지면, 태양의 빛은 평소보다 더 많은 대기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때 대부분의 청색 빛은 산란되어 날아가고, 붉은 빛이 노을에 남아있게 되기 때문이다.
흡수.
서로 다른 분자들은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한다. 예를 들자면, O₂와 O₃는 300nm보다 짧은 파장을 대부분 흡수한다. 물은 700nm이상의 대부분의 파장을 흡수한다. 분자가 광자를 흡수할 때, 분자의 에너지가 증가하게 된다. 이는 대기의 온도를 가열하지만, 이전에 언급한 대로 복사를 방출하면서 여전히 냉각된다.
대기중의 가스의 합쳐진 흡수선은 특정된 띠만을 나타나게 하도록 하는 창을 남기게 된다. 광학적 창은 약 300nm에서부터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인 400~700nm는 물론 적외선의 약 1100nm까지를 포함한다. 또한 적외선과 라디오파와 같이 긴 파장을 전달시키는 전파의 창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전파의 창은 약 1cm에서부터 약 11m까지의 파장을 포함한다.
방출.
방출은 흡수의 반대로, 이는 물체가 복사를 방출할 때 일어난다. 물체는 흑체복사의 곡선을 따라서 복사를 일으키려 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뜨거운 물체는 짧은 파장의 복사를 더 많이 방출한다. 차가운 물체는 긴 파장의 복사를 더 적게 방출한다. 예를 들자면, 태양의 온도는 대략 6,000K이고, 태양의 복사는 500nm의 파장 근처에서 최대치를 이루기 때문에 인간의 눈에 보일 수 있다. 반면, 지구의 온도는 대략 290K이고, 지구 복사는 10,000nm의 파장 근처에서 최대치를 이루는데, 이는 인간이 볼 수 있는 파장보다 훨씬 길다.
온도 때문에 대기는 적외선을 복사로 방출한다. 예를 들어, 맑은 날 밤에 지구의 표면은 흐린 날보다 빠르게 식는다. 이는 구름에 포함된 H₂O가 열을 많이 흡수하고 적외선의 형태로 복사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는 밤에 고도가 높은 곳보다 낮은 곳이 더 추운 이유이다.
온실효과는 흡수와 방출효과에 있어서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대기에 있는 일부의 가스들은 적외선을 흡수하고 방출하지만, 햇빛에 있는 가시광선과는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예로 CO₂와 H₂O가 있다.
굴절률.
공기의 굴절률은 1에 가깝지만 1보다는 크다. 굴절률의 체계적인 변화는 긴 광로를 통해 날아오는 빛을 굴절시키게 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어떤 상황에서 배에 탑승해 있는 관측자는 수평선에 바로 너머의 다른 선박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지구표면의 곡률에 의해서 같은 경로 상에 있는 빛이 굴절되기 때문이다.
공기의 굴절률은 온도에 의존하고, 온도의 변화량이 클 때 굴절 효과는 증가하게 된다. 이와 같은 효과에 의한 예로는 신기루가 있다.
순환.
대기의 순환은 대류권에서 일어나는 거대한규모의 공기들의 움직임이고, 이는 열을 지구 전역에 배분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러한 대기의 대규모 구조의 순환은 매년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지구의 자전주기와 적도와 극지방 사이의 태양복사의 차이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거의 일정하다.
지구 대기의 진화과정.
원시 대기.
처음의 대기는 태양 성운에 존재하는 주로 수소에 의해서 구성되었다. 거기에 더해, 아마도 현재는 목성이나 토성과 같은 거대한 가스에서 발견되는 주로 수증기나, 메탄과 암모니아와 같은 간단한 형태의 수소화물이 존재했을 것이다. 태양 성운이 사라지고 나서부터는 이러한 가스들은 태양풍에 의해 부분적으로 날아가 버렸다.
두 번째 대기.
그 다음의 대기는 많은 양의 질소와 이산화탄소, 비활성 기체가 화산 폭발에 의해 공급되거나 소행성에 의한 거대한 충돌 동안 공급되었다. 이로 인해 방출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는 곧바로 물에 녹아서 탄산염퇴적물을 형성하였다.
물과 관련된 퇴적물들은 38억 년 전부터의 것부터 형성되어 왔다. 약 34억 년 전의 질소는 안정된 상태의 두 번째 대기의 대부분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생명체에 대한 영향은 생명체는 대기보다 빠른 시기인 약 35억 년 전부터 형성되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고려해봐야 한다. 원시 태양이 현재보다 30% 적은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그 시대에 어떻게 지구가 액체상태의 물과 생명이 존재 할 수 있도록 기후를 따뜻하게 유지하였는지가 ‘젊을수록 어두운 태양의 역설’ 이라고 불리게 된 문제이다.
하지만 지질학적 기록은 완전한 상태의 지구의 따뜻한 표면과 약 24억 년 전의 빙하시기의 예상과의 지속적인 연관성을 보여준다. 시생대 시대의 말에 27억 년 전의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에서 발견된 남조류에 의한 광합성을 통해서 공급된 산소를 포함한 대기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기본적인 탄소 동위원소는 현재의 것과 매우 유사한 비율을 가지는데, 이는 기본적인 탄소 순환의 특징은 약 40억 년 전부터 이미 안정되었다는 것을 제시한다.
지구의 유동적인 산화의 진행과정은 약 21.5억년~20.8억 년 전의 가봉 공화국으로부터의 오래된 퇴적물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산화의 변동은 Lomagundi carbon isotope excursion에 의한 기반을 뒀을 것이다.
세 번째 대기.
판 구조론에 의한 끊임없는 성분의 재배열과 지각의 탄산염 광맥으로부터의 이산화탄소 이동은 대기의 오랜 기간 동안의 진화 과정에 영향을 주었다. 활성산소는 약 24억 년 전 산소 급증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활성산소의 출현은 안정되어 있던 철 광맥의 종말을 나타냈다. 이 시기 이전에는 광합성을 통해 공급된 어떠한 산소도 환원되어 있던 주로 철과 같은 금속광물과 산화반응에 의한 소비를 일으키지 않았다. 대기 속의 활성산소의 분자들은 산소의 생산률이 환원되는 금속광물을 초과하기 전까지 모여들지 않았다. 이는 환원성 대기로부터 산화성 대기로의 흐름을 나타낸다. O₂는 선캄브리아대의 말기까지 15%이상의 O₂분자가 안정된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약 5.41억 년 전부터의 기간은 호기성생물의 출현이 시작된 캄브리아기의 초기시대인 현생대이다.
대기 중의 산소의 양은 6억 년 전부터 변동을 거듭하여 2.8억 년 전에는 현재의 수치인 21%보다 상당히 높은 약30%로 최고치에 도달하였다. 두 가지의 주요 과정들이 대기의 변화를 지배하였다. 하나는 식물들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사용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황철석의 붕괴와 화산 폭발로 인해서 대기로 유입된 산화된 황에 의한 대기 중의 막대한 양의 산소의 환원이다. 그러나, 화산 분출은 또한 식물이 산소로 바꿀 수 있는 이산화탄소를 방출시켰다. 대기 중의 막대한 양의 산소변화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대기중에 산소가 많은 기간 동안 동물의 진화를 촉진시켰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현재의 대기는 동물의 진화과정을 촉진시키기에 충분한 약 21%의 산소를 함유하고 있다.
최근에, 지구 온난화를 유발시키는 주범인 인류 개변의 온실가스는 대기에 축적되고 있다.
대기 오염.
대기오염은 유기체에 해가 되거나 불편함을 일으키는 대기 중의 화학물질, 미립자, 또는 유기물질에 대한 소개이다. 성층권의 오존량 감소는 대기 오염에 의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
3728 | 379408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28 | 대류권 | 대류권(對流圈, troposphere)은 지구 대기권의 가장 낮은 부분으로 대부분의 기상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다. 온실 효과 역시 대류권에서 발생한다.
개요.
대류권은 지표면(0km)에서 시작하며, 약 11km까지이다. 열대지방의 경우는 고도 16-18 km 까지이고, 극지방에서는 감소해서 10 km 이내이기도 하다. 이 층은 전체 대기 질량의 약 75~90%를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제트기는 대류권의 최상부에서 비행한다. 대류권의 위 층은 성층권이다.
대류권은 셀이라고 불리는 6개의 영역으로 나뉜다. 이 영역은 대기 순환을 일으키며, 탁월풍을 유발한다.
대류권을 나타내는 영어인 "troposphere"는 "돌리다", "섞다"를 나타내는 그리스어인 "tropos"로부터 유래하였다. 이 말대로, 대류권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대류권에서 중요한 가스로는 질소 및 산소가 있다.
고도에 따른 온도변화는 다른 어떤 대기권보다도 심하다. 중간 위도의 경우 해수면의 온도가 +17°C인 데 반해 대류권계면에서는 -52 °C에 이른다. 대류권계면에서의 온도는 대류권이 얇은 극지방의 경우는 -45 °C정도인 데 반해, 대류권이 두터운 적도지방에서는 -75 °C에 이르기도 한다.
대류권에서의 고도에 따른 온도변화를 살펴보면, 고도가 1 km 상승할수록, 온도는 대략 6.4 °C 내려간다. 대류권에서의 온도변화가 큰 이유는, 온도는 지표면에서 올라오는 복사열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지표면에서 멀어질수록 열을 전달할 대기 입자가 줄어들며, 대류로 인한 가열 역시 줄어들게 되고 온도는 급격히 하강한다.
대류권계면은 대류권과 성층권의 경계를 나타낸다. 대류권계면 위쪽으로는 고도 50km에 이르도록 온도가 서서히 상승한다. 대류권을 지나는 동안 비행기가 높이 뜨면 뜰수록 안내판의 기온은 섭씨건 화씨건 모두 낮아져서 최상부에 이르면 국내선 비행기는 -17도, 국제선 비행기는 -50 °C까지 내려간다. |
3729 | 22169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29 | 열 | 물리학에서 열(熱)은 에너지가 전달되는 방식의 하나로서 일(work)과 대비된다. 즉 어떤 계(system)에서 에너지가 다른 계로 전달되는 방식에는 일과 열의 두 가지가 있는데, 이 중 외부의 변수와 관계없는 에너지의 전달을 열이라 한다.
물리학을 배운 사람들도 열을 에너지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표적인 오개념이다. 열은 에너지가 아니라, 에너지의 전달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두 계 사이에서 에너지는 일 또는 열의 형태로 전달되는데, 어떤 계가 일을 받으면 그 운동에너지가 늘어나듯이, 열을 받으면 그 내부에너지가 늘어난다. 이때 내부에너지를 열에너지라고도 한다. 즉 열에너지는 에너지이지만, 열은 에너지가 아니다. 한편 열의 이동 방법에는 열전도, 열대류, 열복사의 3가지가 있다.
반면 일상 생활에서는 흔히 "온도가 높음"의 뜻으로 많이 쓰인다.
개관.
열역학 제1법칙은 닫힌계의 에너지는 보존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의 에너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계로부터 다른 계로 또는 다른 계에서 계로 이동되어야 한다. 계의 질량이 일정할 때, 에너지를 이동시킬 수 있는 단 두 개의 메커니즘은 열과 일이다. 열은 온도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에너지의 이동이다. 열에 의해 이동되는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SI단위로 J(줄)이며, Btu(British Thermal Unit) 또는 cal(칼로리)도 때때로 사용된다. 에너지 이동의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는 W(와트)이다.
열의 이동은 경로함수(상태함수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열은 서로 평형상태가 아닌 계들 사이에서 흐르며, 자발적으로 온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흐른다. 온도가 다른 두 물체가 열적 접촉을 하면 그들은 서로 온도가 동일해질 때까지, 즉 열적평형상태에 이를 때까지 내부에너지를 교환한다. '뜨겁다'라는 형용사는 물체의 온도를 주위(또는 '뜨겁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의 온도와 비교하여 나타내는 상대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열'이라는 용어는 에너지의 흐름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다. 역학적 상호작용이 없을 때에는, 물체로 이동하는 열은 내부에너지의 형태로 물체에 저장된다.
비열은 물질의 온도를 1도 올리기 위해 계로부터 또는 계로 이동되어야 하는 단위질량당 에너지의 양으로 정의된다. 순수한 물질이 한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로 변화할 때에는 온도의 변화 없이 열을 흡수하거나 방출한다.(상태변화) 상태변화하는 동안 열이 이동하는 양은 숨은열 또는 잠열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물질과 그 상태에 따라 다르다.
열과 열에너지.
'열에너지'라는 용어는 종종 열이라는 용어와 혼동하여 사용된다. 하지만 둘은 다르다. 열은 에너지의 전달 방식 중의 하나이고, 열에너지는 어떤 계(system)가 가진 내부 에너지를 말한다. 어떤 계가 열을 받으면, 그 계의 열에너지(내부 에너지)는 증가하고, 열이 제거되면 그 계의 열에너지는 감소한다. 뜨거운 물체는 많은 양의 열에너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많은 양의 열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즉 물체는 '에너지'를 가질 수는 있어도, '열'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물리학에서는 열에너지라는 용어보다는 "내부에너지"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선호된다.
역사.
열 현상들과 열의 정의는 물에 대한 신화에서부터 열, 연소성 흙(terra pinguis : 라틴어로 '살찐 흙'이라는 뜻), 플로지스톤, 불공기(fire air, 산소), 열소(caloric), 열의 이론, 열의 일당량, 에너지론, 열역학까지 포함한다. 열의 역사의 대부분은 열역학의 역사의 선구적이 것이다.
18세기.
1761년에 스코틀랜드 화학자 블랙(Joseph Black, 1728~1799)은 얼음이 녹을 때 온도변화 없이 열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것으로부터 그는 열은 얼음 알갱이와 결합되어 있다가 보이지 않게 된다고 결론지었다. 1759년부터 1763년 사이에 그는 그의 과학적인 명성의 주된 기초가 되는 "숨은 열" 이론으로 발전시켰고, 또한 서로 다른 물질들은 서로 다른 비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였다. 와트 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는 블랙의 제자이자 조력자였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열을 전달시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은 토마스 뉴커먼과 제임스 와트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더욱이 1797년 대포 제작자인 럼퍼드 백작 벤자민 톰슨이 일을 열로 전환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저항을 사용하여 증명하였다.
이를 위해서 그는 열손실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특별한 모양의 대포 포신을 제작하였다. 그러고 나서 날카로운 보링 도구를 무딘 드릴용 송곳으로 교체하고, 총의 앞부분을 물이 가득 찬 탱크에 담가놓았다. 이러한 장비를 사용하여 그는 차가운 물을 불을 사용하지 않고 2시간 30분 만에 끓게 만들었다.
열의 본성에 대한 몇 가지 이론들이 발전하였다. 17세기 베허는 열이, 물질이 탈 때 물질로부터 빠져나오는 플로지스톤이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과 연관되어 있다고 제안하였다. 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1541)가 주장한 3원리설에 의하면, 물질의 모든 성질은 세 가지 근본원리들 곧 가연성을 나타내는 황, 유동성과 휘발성을 나타내는 수은, 그리고 고체성과 안정성을 나타내는 염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르면, 물질이 타는 연소 현상은 다른 원소와 결합된 상태의 가연설원리인 황이 그 물질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열에 대한 이 같은 생각을 발전시켜 슈탈(George E. Stahl, 1660~1734)에 의해 주장된 이론이 플로지스톤 이론이다. 플로지스톤이론에 따르면 가연성물질들은 모두 플로지스톤을 포함하고 있고, 이러한 물질들이 탈 때 플로지스톤이 빠져나오면서 연소가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금속이 공기중의 산소와 결합하는 현상으로 이해하는 금속의 하소(calcination)도 금속이 플로지스톤을 내어놓고 재(calx)가 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점점 더 정확하고 정량적인 실험들이 이루어지면서 금속의 하소의 결과로 생성된 금속재가 원래의 금속보다 무겁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플로지스톤이 빠져 나갔는데도 무게는 오히려 증가한다는 사실은 이 이론의 중요한 문제점으로 인식되었다. 이를 플로지스톤이 음의 무게를 갖는다는 식의 설명으로 대체하기도 하였지만, 연소의 경우는 무게가 감소하기 때문에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아직 연소의 결과 생성된 기체의 무게를 고려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연소의 경우도 무게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침내 1783년에 연소에서 산소의 중요성을 증명한 라부아지에에 의해 논박되었다. 그는 대신에 열소(칼로릭) 이론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무게가 없고 보이지 않는 유체로서 평형상태가 깨졌을 때 움직인다. 이 이론은 1824년에 프랑스의 사디 카르노가 ≪불의 동력에 대한 성찰≫을 출판할 때 사용되었다. 그는 "동력은 실제 열소의 소비로부터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물체로부터 차가운 물체로, 즉 평형상태를 향해 열소가 이동하면서 생성된다."며 열전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였다. 카르노에 따르면 이 원리는 열에 의한 운동에 의해 형성된 모든 기관에 적용된다.
또 다른 이론은 1738년에 스위스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다니엘 베르누이의 유체역학으로부터 나온 기체 분자 운동론이다. 이 연구에서 베르누이는 처음으로 기체가 모든 방향으로 운동하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표면에 대한 그들의 영향이 우리가 느끼는 기체의 압력을 일으키는 것이다. 한 물질의 내부에너지는 각각의 분자와 연관되어 있는 운동에너지의 합이고, 활동적인 분자들로 이루어져서 매우 높은 내부에너지를 가진 지역에서 덜 활동적인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내부에너지도 더 낮은 지역으로 열전달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19세기.
제임스 프레스콧 줄과 율리우스 로베르트 폰 마이어의 연구는 열과 일이 교환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이는 1847년 헬름홀츠의 에너지 보존 원리에 대한 진술로 이어졌다. 클라우지우스는 1850년에 물질의 이동보다는 에너지의 보존을 이용하여 열소(칼로릭)이론이 기체분자운동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열역학 제 1법칙을 진술하였다.
1851년 윌리엄 톰슨은 제임스 줄과 같은 사람들의 최근 실험에 기초하여 열의 본질에 대한 현대적인 관점을 개관하였다. "열은 물질의 이동이 아니라 역학적인 작용의 동역학적인 형태이다."(Heat is not a substance, but a dynamical form of mechanical effect.)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역학적인 일과 열 사이에 반드시 평형점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20세기.
현대의 용어로 열은 일반적으로 온도의 차이로 인해 전달되는 에너지의 형태나 저항에 의해 생성되는 에너지의 형태로 정의된다.
정의.
현대적인 용어로 열은 이동하는 에너지로 간결하게 정의된다.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1871년 그의 "열의 이론(The theory of heat)"에서 "열"의 현대적인 정의를 처음으로 발표하였다. 첫째, 열은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서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이동하는 어떤 것이다." 둘째, 열은 "측정할 수 있는 양"이고, 따라서 다른 측정가능한 양들처럼 수학적으로 취급될 수 있다. 셋째, 그것은 "물질로서 취급될 수 없다." 또한 물질이 아닌 어떤 것(예를 들어 역학적 일)으로 변형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열은 "에너지의 형태 중의 하나이다." 현대적인 것과 유사한 간결한 정의들은 다음과 같다.
열전달 메커니즘.
열은 온도가 높은 지역에서 온도가 낮은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열 전달은 전도와 복사의 매커니즘에 의해 일어난다. 공학에서는 전도와 유체 흐름의 복합적인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대류"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대류는 열전달의 세 번째 메커니즘으로 여겨진다.
전도.
전도는 고체에서 열의 전달이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형태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도는 뜨겁고, 빠르게 운동하거나 진동하고 있는 원자, 분자들이 인접해있는 원자, 분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이들 이웃 원자들에게 그들의 에너지(열)의 일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즉 전도는 물체 속에서 열이 순차적으로 전달되어 가는 현상을 말한다. 전도에 의한 열의 전달속도는 물체 단위길이당 온도차에 비례하며, 물체의 재질에 따라 달라진다.
면적이 A이고 두께가 L인 판의 양면의 온도가, 한 면은 뜨거운 열저장고에 의해 TH로, 나머지 한 면은 차가운 열저장고에 의해 Tc로 일정하게 유지될 때, 단위 시간당 전달되는 에너지양, 즉 전도율Pcond는 formula_1
이다. 여기서 k는 열전도도로 물질에 따라 달라지는 상수이며 에너지를 빨리 전달하는 좋은 열전도체는 k값이 크다.
대류.
대류는 액체와 기체 내에서 일어나는 열 전달의 주된 형태이다. 대류라는 용어는 전도와 유체 흐름의 복합적인 효과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온도가 상승하면 밀도가 감소한다. 따라서 물이 가열될 때 냄비 바닥에 있는 뜨거운 물은 위로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차갑고 밀도가 큰 액체는 아래로 내려간다. 이러한 혼합과 전도의 결과 거의 동일한 밀도와 온도가 된다. 대류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식으로 구별된다. 중력과 부력에 의해 유체의 운동이 야기되는 "자유대류"와 유체를 움직이기 위해 선풍기나 교반기 등의 도구를 사용하는 "강제대류"로 구분된다. 부력 대류는 중력에 의한 현상이므로 중력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복사.
복사는 유일하게 매질이 없는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열전달의 형태이다. 따라서 복사는 진공에서 열전달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열적 복사는 물질 속의 원자들과 분자들의 운동 때문에 나타나는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러한 원자들과 분자들이 전하를 띠고 있는 입자들(양성자와 전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운동은 전자기 방사선을 방출하고 이것은 표면의 에너지를 바깥으로 이동시킨다. 동시에, 표면도 끊임없이 표면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주위로부터의 복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방출되는 복사의 양도 증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온도가 더 높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에너지가 전달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물체가 전자기 복사로 단위시간당 에너지를 내놓는 비율 Prad는 물체의 표면적이 A이고, 그 면의 절대온도가 T일 때 formula_2으로 주어진다.
formula_3은 슈테판-볼츠만(Stefan-Boltzmann) 상수이고, formula_4은 물체 표면의 방출률로 0과 1 사이의 값을 갖는다.
열량.
열을 측정한 양을 열량이라고이며, 여기에 쓰이는 일반 단위는 칼로리(kcal)이다. |
3730 | 107068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30 | 슈테판-볼츠만 법칙 | 슈테판-볼츠만 법칙은 흑체의 단위 면적당 복사 에너지가 절대 온도의 4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정확한 식은 다음과 같으며, 식에서 "j"*는 흑체 표면의 단위 면적당 복사하는 에너지, "T"는 온도를 나타낸다.
식의 비례상수 σ는 슈테판-볼츠만 상수라고 부르며 값은 다음과 같다.
이 법칙은 1879년 요제프 슈테판에 의해 실험적으로 발견되었으며, 1884년 루트비히 볼츠만이 이에 대한 이론적인 틀을 제공했다. 볼츠만은 당시 가스가 아닌 빛을 사용하는 가상적인 열기관을 가정하여 설명하려 했다. 양자역학의 개념이 만들어진 이후의 현대 물리학에서 슈테판-볼츠만 법칙은 플랑크의 흑체복사 법칙에서 유도할 수 있다.
위 식은 이상적인 흑체에 대해서만 유효하다. 슈테판은 이 법칙을 3월 20일 열 복사와 온도의 관계("Über die Beziehung zwischen der Wärmestrahlung und der Temperatur")란 제목으로 빈 과학 아카데미(the Vienna Academy of Sciences)의 "Bulletins from the sessions"에 실었다. |
3731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31 | 제2연평해전 | 제2연평해전(第二延坪海戰)은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 일어난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이다.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에 대한 북한 해군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되어 30분 가량 진행된 이 전투에서 양측 모두 피해를 입었다. 북한군의 선제 공격을 당한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는 교전 후 예인도중 침몰하였고, 정장(참수리급은 150톤급으로 "함"이
아닌"정" 지휘관도 "함장"이 아닌 "정장")을 포함한 승무원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하는 인명피해를 겪었다. 조선인민군 해군소속 등산곶 684호도 대한민국 해군의 반격으로 전투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예인됐다. 제2연평해전으로 조선인민군 해군 13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당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 중 일어난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내에서는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시 차단 기동에 대한 논란이 일었으며, 이후 차단기동은 교전수칙에서 삭제되었다.
개요.
1999년 6월 15일 참수리 고속정이 부딪혀 막는 일명 "밀어내기 작전"으로 대응하던 중 남북간 전투가 발생하여 제1연평해전이 일어났다. 같은 해 9월 2일,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무효임을 주장하고, 인민군측 해상 군사통제수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하였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측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제1연평해전으로부터 3년 후인 2002년 6월 29일은 한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였다. 이날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이남지역에서 북한의 무력 기습도발로 남북 간 충돌이 일어났다.
교전수칙에 따라 차단기동으로 대응하던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를 향한 북괴군 등산곶 684호의 지근거리 기습 함포공격으로 시작되어 함포와 기관포를 주고 받는 치열한 격전이 된 전투 후 대한민국의 피해는 6명이 전사, 19명이 부상하고, 전투 종료 후 복귀 도중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하였다. 한편 북한 반동 괴뢰군의 피해는 약 3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SO-1급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로 예인되어 퇴각하였다.
집중포격을 당한 참수리 고속정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 1계급 추서)이 그 자리에서 중상을 입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하고, 부정장 이희완 소령(당시 중위)이 쓰러진 정장을 대신하여 지휘권을 행사했는데 이희완 소령은 총상으로 한쪽 종아리의 근육을 잃은 상황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휘하였다.
사건이 발생하자 군 당국은 전군에 경계 강화령을 내리고 서산 상공에서 초계비행하던 KF-16 전투기 1개 편대를 NLL 인근 해상으로 긴급 파견해 확전에 대비했다. 청와대 또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는 등 비상태세에 들어갔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NSC에서 "북한 경비정이 선제 기습사격을 가하는 등 무력도발 행위를 자행한 것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로 묵과할 수 없다"며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군 당국이 더욱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춰 달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6월 29일 저녁 국무위원들과 함께 청와대 본관에서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ㆍ4위전 경기를 시청하려던 계획을 취소했으며, 월드컵 폐막식 참석을 위해 30일 일본을 방문하는 일정도 다시 검토됐으나 일정 취소가 국민 불안감을 높이고 외국 투자자들의 우려를 촉발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그대로 진행시키기로 했다. 그리하여 김대중 대통령은 공동 개최국 대표로서 2002년 FIFA 월드컵 결승전 참석과 일본 총리와 갖는 정상회담을 위해 6월 30일 오전 일본으로 출국하였다.
2007년 6월 28일 참수리 고속정을 대체한 차기고속함 1번함이 윤영하함으로 명명되어 진수되었으며, 2009년 6월 2일 실전배치되었다. 2009년 9월 23일 STX조선해양에서 2번함이 한상국함으로, 3번함이 조천형함으로 각각 진수되었다.
2009년 12월 11일 한상국함과 조천형함에 이어 STX조선해양에서 4번함인 황도현함, 5번함인 서후원함이 각각 진수되었다.
2010년 7월 28일 한진중공업에서 6번함인 박동혁함이 진수되었다.
전투 경위.
전력 비교.
남북한 함정의 제원은 다음과 같다.
교전 상황.
교전 당일인 2002년 6월 29일의 상황을 시간대별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교전 결과.
대한민국 해군 소속 참수리 357호 교전이후 심한 선체 손상으로 예인을 포기, 침몰했으며 침몰 당시에는 탑승한 승무원 30명 중 4명이 전사, 1명이 실종되고 20명이 부상하였으나 이후 치료를 받던 박동혁 병장(당시 상병)이 국군수도병원에서 전사했으며 실종되었던 한상국 중사(당시 하사)가 침몰 41일째 날 조타실에서 발견되었고, 53일만인 8월 21일, 침몰된 배가 인양되고 수습되어 결과적으로 총 6명전사 19명 부상하였다. 대한민국 군당국은 북한 경비정이 30명 정도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추정하였다.
인양된 참수리 357호는 85mm 대구경 5발, 37mm 중구경 19발, 14.5mm 소구경 234발 등 모두 258발을 맞았으며, 40mm 중구경과 20mm 소구경 680발을 발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수색 및 인양.
태풍으로 연기된 수색, 인양 작업은 다시 한 차례 연기된 후 8월 5일 시작되었으나, 기상 악화로 본격적인 작업이 미루어졌다. 8월 9일 조타실에서 실종되었던 한상국 중사의 유해를 수습하였고, 기상 악화와 작업의 난항으로 고속정은 침몰 후 53일만인 8월 21일에야 인양되었다. 고속정은 연평도 서쪽 25.2km 수심 28m의 해저에 가라앉아 있었다. 건져올려진 선체에는 조타실 앞부분의 2곳을 포함, 4군데에 축구공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수백 군데에 포탄과 파편 자국이 있었다. 함교 뒤 돛에는 여전히 태극기가 걸려 있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 전사자 명단.
한상국 상사는 실종 후 함체 수색 중 사체로 발견되었으며, 박동혁 병장은 부상으로 후송된 후 치료 중 사망하였다. 나머지 4명은 전투 중 전사하였다.
원인 분석.
남한측의 피해가 컸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화력.
참수리 고속정에는 20mm 벌컨포, 30mm 기관포, 40mm 기관포와 M60 7.62mm 기관총을 장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 함정은 85mm 전차포와 14.5mm 기관총을 장착하여 화력에서 월등했다. 85mm 전차포는 사거리와 명중률이 떨어지지만 한 발만 맞아도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데 비해서 참수리 고속정에 탑재된 무장들은 적함을 격침시키기 너무 어려웠고, 제2연평해전에서 등산곶684호는 6척의 참수리 고속정에게 집중사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침몰되지 않았다.
방어력.
참수리 357호는 조타실에 85mm 포탄을 직격으로 맞고 지휘부가 타격을 입었다. 부정장의 지휘로 전투는 진행되었으나, 너무 약한 방어력으로 인해서 조타실 등 핵심 시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대응기동.
적함이 NLL을 침범하면,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순서로 대응해야 했다. 특히 적함을 밀어내는 차단기동은 기습 받기 쉬웠고, 참수리 357호정도 차단기동 중 공격당했다.
초계함의 대응.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후 무려 18분이 지나서야 초계함들이 76mm 속사포를 발사하며 전투에 나섰다. 그러는 동안 참수리 357호정은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전투 발생 초기, 초계함들은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뿐만 아니라 참수리 고속정들이 사거리 안에 없었다. 결국 화력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북한 고속정을 침몰시키지 못했다.
논란.
보상금 논란.
제2연평해전 유족은 사망보상금과 연금, 퇴직수당 등을 합쳐 윤소령 가족의 경우는 사망보상금 5600여만원 포함 1억원 이상, 나머지 전사자와 실종자 가족의 경우는 사망보상금 3100여만원 포함 6000여만원 가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을 두고 보수 단체에선 정부와 여성부를 보상금 지급량이 너무 적다는 문제로 비난한 바 있으나, 이당시 정부는 전사자에 대한 법 규정의 문제로 보상할 수 없었다. 2002년 제2 연평해전 당시 군인연금법으로는 순직과 전사가 구분되지 않아 포괄적인 개념의 공무원 사망자로 규정, 전사자로 취급받지 못해서 추가 보상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정부는 우회적인 방안으로 국민성금을 해서 전사한 6명의 장병에게 정부 지원금 포함 해서 도합 3억5천만원의 보상금이 전달되었다.
문제가 된 군인연금법은 박정희 정부 당시 베트남전 전시 전사자가 많아지면서, 국고의 고갈을 걱정한 정부가 교전 중 사망은 공무 중 사망한 것으로 처리하고 사망보상금은 사망 직전 받았던 월급의 36배로 못박아 국가로 하여금 그 이상 지급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추가로 1967년 국가보상법 2조를 제정, 직무수행중 입은 손해에 대해 보상을 받은 경우, 국가가 잘못이 있어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였다.
이에 2002년 7월 국방부는 전사자의 공로에 비해 보상금이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에 따라 `공무사망'으로 통합돼 있던데서 `적과의 교전에 의한 전사'를 분리하여 보상을 할 수 있도록 군인연급법 시행령 등 관련법령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2004년 1월 국방부는 그 동안 개정을 추진해온 군인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되어 이는 국내외 전사자들에게 모두 적용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는 소급 처리가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제2연평해전 유가족은 전사자 사망 보상금 2억원을 받지 못하고 3000만~6000만원 규모의 공무 보상금을 지급받는데 그쳤다.
2010년 5월 국방부는 "제2연평해전 희생자에게 전사자 사망 보상금을 소급 지급하려면 특별법을 제정할 수 밖에 없다" 고 밝혔다. 이후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제2연평해전 희생자에게 전사자 예우를 하는 특별법 제정이 발의되었으나 무산되었다. 10월 14일 국방부 예비역정책발전 TF팀은 공문을 보내, 제2연평해전 희생자에 전사자 예우를 해줄 수 없다고 통보하였다. 해당 공문에서 "각종 대침투작전과 국지전, 북한 도발에 따른 아군 전사자 등의 형평성 침해논란이 예상돼 법적 안정성 등을 위해 소급보상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천안함 침몰사건(2010년 3월)의 경우에는 2004년 개정된 군인연금법의 적용을 받아 천안함 용사 유가족들은 사병의 경우 사망보상금으로 일시금 2억 원, 원사는 3억5900만 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8년 7월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및 시행되어 1인당 최소 1억4000만원에서 최대 1억8000여만원까지 추가로 보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후 처리 및 사회적 여파.
정부의 조치.
김대중 정부는 2002년 6월 30일 교전 과정에서 전사 또는 실종된 해군장병 5명에게 일계급 특진과 함께 훈장을 추서했다.
2002년 6월 30일 국군수도병원 합동분향소에는 이한동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과 국회의원, 군 장병 등이 방문했다. 이 총리 등 국무위원 일행 21명은 이날 합동분향소를 방문, 헌화 및 묵념하고 고(故) 윤영하 소령에게 충무무공훈장, 고(故) 조천형 중사등 사망 및 실종 병사 4명에게 화랑무공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이 총리는 이어 병실을 찾아 부상장병 19명과 일일이 악수하며 "훌륭하게 싸웠소. 용감했소"라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
2002년 7월 2일 일본에서 귀국한 김대중 대통령은 "만약 북한이 또다시 군사력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려 한다면 그때는 북한도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이어 국군수도병원을 방문, 서해교전에서 부상당한 장병들을 위로했다. 교전 발생후 한달뒤인 7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은 서해교전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장병 5명의 가족 12명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위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건 1주기를 앞둔 2003년 6월 25일에 유가족들과 국가유공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위로하는 행사를 가졌고 이어서 2003년 6월 27일 2함대를 방문하여 안보공원에 전시된 참수리357호정을 방문하여 묵념하고 헌화하는 등 추모하고 이후 참수리357호정에서 다리를 잃었지만 복귀한 이희완 중위에게 위로전화, 그 외에도 명절마다 유가족들에게 선물을 보냈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처음 서해교전(西海交戰)이라고 부르던 것을 이명박 정부 집권 후 곧바로 2008년 4월에 제2연평해전(第二延坪海戰)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제2연평해전 추모식을 정부기념행사로 승격시켰으며, 주관 부서도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국가보훈처로 옮겼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제2연평해전 10주년 행사에 참석하였으며 군 통수권자가 제2연평해전 관련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2002년 해전 이후 처음이었다.
재발 방지 및 대응.
무려 5단계에 이르던 대응기동 절차는 해군의 손실을 불러왔다. 참수리 357호도 차단기동 중 기습을 당했다. 기존에는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이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차단기동'이었는데 기습공격을 받기 가장 쉬웠다. 이에 국방부는 2002년 7월 차단기동 과정을 삭제했으며, 2004년 시위기동과 경고방송을 동시에 하도록 하여 경고방송·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개정했다. 이는 후에 2009년 벌어진 대청해전의 승리의 바탕이 되었다.
제2연평해전에서 초계함의 늦은 대응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을 교훈으로 삼아, 참수리 고속정들이 초계함의 사정거리 안에서 활동하게 하여 대응을 높였다.
국방부는 참수리 357호가 조타실에 85mm 포탄에 명중당하여 파손된 것을 보고 방어력을 향상시키도록 했다. 이에 1함대와 2함대 소속 참수리 고속정 45척이 개량되어 방어력이 향상되었으며, 화력 향상을 위해 M60(7.62mm)기관총을 K6(12.7mm) 기관총으로 교체했다. 또한 30년을 써온 참수리 고속정을 대체하기 위해서 개발된 PKX-A를 '윤영하급 고속함'으로 명명했고, 2007년 진수되었다. 참수리 고속정이 가장 강한 화력이 40mm 기관포에 불과해, 적 함을 격침하기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여 윤영하급 고속함에는 76mm 속사포를 장착, 화력을 증강하고 대함미사일인 해성 미사일을 탑재했다
기념.
해군은 인양된 고속정 357호정이 선체 구조물의 비틀림 현상과 장기간 침수로 재사용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짓고, 평택 2함대사령부 충무동산에 전시하기로 결정하였다.
2013년 10월에 영화 《NLL-연평해전》 이 개봉될 예정이었다. 김학순 감독이 제작 지휘를 하며 김무열, 진구 등이 출연한다. 특히 제작비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대한민국 해군의 지원과 일반 국민의 모금 활동으로 제작비를 충당하여 제작되고 있다. 출연자와 제작진의 재능 기부로 15억 원만 모이면 3D 전쟁영화로 탄생할 수 있었으나, 1, 2차 크라운드 펀딩, 개인 투자자들의 합류로 2억 5000여 만원이 모여 제작비가 부족해졌다. 결국 제작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2013년 4월 22일부터 촬영을 시작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어려운 상에서 제3차 크라운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충당했다.
해당 영화는 《연평해전》이라는 제목으로 2015년 6월 24일 개봉하였다.
제3 연평해전 시나리오
남한의 육군 재래식 전력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북한을 압도했지만, 북한의 간첩선과 고속정 등을 타격하는데 중점을 둔 것 때문에 제 2차 연평해전이 발생한 2002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해군은 연안해군의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 당시 해군의 함선들은 방공/대잠 능력이 전무한 2차 세계대전의 군함과 다를 바가 없었고, 이는 북한이 남한에 해상도발을 일으킬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러나 2008년,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의 건조와 충무공 이순신급 (KDX-2), 유도탄 고속정들의 대량 도입 등으로 인해 일본/중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방어를 할 수 있는 수준의 대양해군을 갖추게 되었다. 2021년 현재 제 1/2차 연평해전과 같은 도발이 발생하게 된다면 북한 고속정 함대가 사거리 23km 이상인 mk.45 127mm 함포, 사거리 180 km인 해성 함대함 미사일, CIWS 등으로 인해 흔적도 없이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 또, 그동안은 북한의 실크웜 미사일, 해안포 등으로 인해 퇴각하는 북한 해군에 대한 반격을 실시할 수 없었지만, 아음속 함대함 미사일에 대한 동시 요격능력이 4발 이상인 KDX-2/대구급 호위함, 15발 이상인 KDX-3/ FFX-3 이지스 호위함 등 방공능력이 걸출한 최첨단 구축함/호위함들의 도입으로 인해 북한의 실크웜과 같은 유물은 쉽게 무시하고 대응사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3733 | 36811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33 | 칼로리 | 칼로리.
칼로리()는 에너지의 단위로, 온도가 다른 물체 사이에 전해지는 에너지의 양이다. 즉 물질의 온도를 높이는 데 소요되는 열의 양이다.
라틴어의 '"열"을 의미하는 단어인 "calor"에서 유래하였다. 칼로리 단위의 기호는 mcal(1/1000cal), cal, kcal(1000cal)을 쓴다. 영양학에서는 주로 Cal을 사용한다.
1948년의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칼로리는 가능한 한 사용하지 말고 사용할 경우에는 줄(J)을 병기할 것을 결의했다. 에너지, 열량의 국제 단위계(SI)의 표준 단위는 줄이며, 칼로리는 병용 단위로서도 채택되어 있지 않다.
칼로리의 정의.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의는 "물 1그램을 1°C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이나, 물의 비열이 온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히는 "1기압 하에서 14.5°C의 물 1그램을 15.5°C까지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이다. 1칼로리(cal)는 4.184J(줄)이다.
1기압 하에서 14.5°C의 물 1그램을 15.5°C까지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은 약 4.1855J(줄) 로 표기되며 화학적 칼로리가 1 칼로리 당 4.186J(줄) 로 표기된다.
인체.
인체의 지방 조직은 87%가 지질이며, 1kg의 지방 조직은 대충 870g의 순수한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약 7800kcal). 곧, 지방 조직 1kg을 없애려면 7800kcal를 소모해야 한다. (단, 지방이 먼저 연소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운동량은 이것보다 훨씬 크다)
하루필요 섭취칼로리.
한편 사람의 하루 권장 섭취 열량은 표준몸무게(W)를 기준으로 살펴보았을 때 다음의 칼로리(Kcal)량이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제안된바있다.
또한 자신의 표준몸무게(W)는 브로카 변법이외에도 BMI(체질량 지수)에의한 산정을 참고하는 것이 WHO에 의해 권장되고있다.
정상적인 BMI 범주는 w가 18.5~24.9이다.
따라서 일예로 BMI를 21로 설정하고 키가 165cm인 경우는
이다.
한편 DSM-5에서는 BMI(체질량 지수)17.5이하인 경우에대해 임상적 심리적 조건중 하나로 간주될수있다. |
3734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34 | 섭씨 | 섭씨 온도(攝氏溫度, , centigrade scale)는 1 atm에서의 물의 어는점을 0도, 끓는점을 100도로 정한 온도 체계이며, 기호는 °C이다. 1742년 스웨덴의 천문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가 처음으로 제안하였으며, 영어 등에서는 제안자의 이름을 따 ‘셀시어스’로 부르고 있다. 셀시우스는 물의 어는점을 100도, 끓는점을 0도로 제안하였으나 사용이 불편하여 후에 끓는 점과 어는 점의 기준을 바꾸었다. 하지만 온도 단위는 여전히 같은 100등분 이므로 섭씨 온도라고 부른다. 현재는 위와 같이 정의하지 않고 볼츠만 상수 formula_1를 formula_2로 표기할 때, 그 값이 formula_3가 되게 formula_4를 정의하고, 거기에 formula_5를 뺀 값으로 정의한다. ‘섭씨(攝氏)’라는 이름은 셀시우스의 중국 음역어 ‘섭이수사’()에서 유래한다.
유니코드 문자.
유니코드는 섭씨 기호의 대응 기호로 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는 레거시 인코딩과의 호환을 위한 유니코드 호환 문자이다. 중국어 등 수직으로 쓰인 동아시아 문자에서 용이한 올바른 렌더링을 가능케 한다. 유니코드 표준은 명시적으로 이 문자의 사용을 자제할 것을 언급한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를 한 번에 사용하는 대신 + 의 조합 °C를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검색 시에는 이 두 조합은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
3735 | 3325898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35 | 척관법 | 척근법(尺斤法)은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동아시아권역에서 널리 사용된 도량형 단위계이다. 척근법의 척(尺)은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 중 하나이며 근(斤)은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 중 하나로서, 길이와 무게 그리고 길이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 넓이와 부피 등을 재는 방법을 의미한다. 척간법(尺間法) 또는 척관법()으로도 불린다.
척근법의 단위는 지역과 시대에 상관없이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그 기준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중국.
중국에서 유래한 척근법은 중국의 진한시대 이후로 정착되었는데 척근법의 원기는 신체의 일부나 자연물, 황금종을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신체의 일부를 기준으로 삼은 예로는 척(尺)과 지(咫)가 있다. 도량형의 기준으로 삼은 대표적인 자연물로는 중국의 주식인 검은 기장이었다. 마지막으로 황금으로 만든 종의 길이와 부피, 무게를 기준으로 삼았다. 중국은 1925년 미터법을 도입하였다.
한국.
고려시대에 중국의 도량형제도를 따라 길이는 주척으로 하고, 부피는 중국의 1두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을 고려의 1두로 삼았으며, 무게는 16량을 1근으로 삼았다. 조선시대의 도량형은 법전인 경국대전과 속대전, 대전회통에 기록되어 있다. 길이 단위인 척은 쓰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황금척, 주척, 영조척, 조례기척, 포배척이 그것이다. 부피, 즉 양을 측정하는 단위로는 합과 승, 두, 석이 있었는데, 조선 전기에는 합과 승이 많이 사용되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두가 많이 사용되었다.
1902년 도량형 규칙을 제정하고 평식원을 설립되었으며, 1905년 대한제국 고종 때 대한제국 법률 제1호로 도량형 규칙을 제정 공포하여 척근법을 서양에서 사용하는 미터법 및 야드-파운드법과 혼용하도록 하였다. 1909년 9월에 도량형법이 일본식 척관법으로 개정되었다.
대한민국.
1959년 국제계량단위국(BIPM)에 가입하고 난 후, 1961년 국제단위계를 법정계량단위로 채택하였다. 1964년에는 법령을 통해 공식적인 일에 척근법이나 야드파운드법 대신에 미터법만을 사용하게 하였다. 한시적으로 허용되었던 건물 및 토지, 수출입 등에 대한 척근법이나 야드파운드법의 사용이 1983년에는 금지됨에 따라 모든 단위는 미터법으로 표기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생활 용어로서 자, 치, 푼 등의 길이 단위와 평, 정 등의 넓이 단위, 섬, 말, 되, 홉의 부피 단위, 양, 돈, 푼의 무게 단위가 여전히 쓰이는 경우가 있다. |
3738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38 | 스티븐 쿡 | 스티븐 아서 쿡(Stephen Arthur Cook, 1939년 12월 14일~ )은 미국의 전산학자이다.
1971년 ACM 《SIGACT Symposium on the Theory of Computing》에 실린 논문 〈The Complexity of Theorem Proving Procedures〉에서 NP-완전의 개념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논문에 들어있는 쿡의 정리는 충족 가능성 문제가 NP-완전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P와 NP가 같은지를 질문했는데 이를 P-NP 문제라고 부르며, 컴퓨터 과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
3739 | 36811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39 | 아말라순타 | 아말라순타(Amalasuntha, ? ~ 535년), 혹은 아말라수엔타(Amalasuentha), 아말라스빈타(Amalaswintha)는 동고트 왕국 국왕 테오도릭 대왕의 딸이며 동고트족의 여왕이다.
515년 동고트족 귀족 출신인 유타리크(Eutharic)과 결혼해 아들 아탈라릭과 딸 마테수엔타(Mathesuentha)를 두었다. 526년 테오도릭 대왕의 죽음 이후 아탈라릭이 동고트 왕국의 왕위를 이었으나 아말라순타가 섭정으로 권력을 잡았다. 옛 로마 문화에 빠져 자식들에게 로마식 교육을 시켰다.
534년 아탈라릭의 사망 이후 사촌 테오다하드와 함께 왕위에 올라 여왕이 되었다. 문예를 싫어한 테오다하드는 왕국 내의 아말라순타에 대한 반감을 이용, 그녀를 토스카나 호수의 볼세나 섬에 유폐시켰다. 아말라순타는 535년 목욕 중에 살해되었다.
아말라순타는 그녀의 재상 카시오도로스의 편지와 프로코피우스, 요르다네스 등의 역사가의 기록으로 알려졌다. |
3740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40 | 아탈라리쿠스 | 아탈라릭(Athalaric, 516년 ~ 534년 10월 2일, 재위 526년 ~ 534년)은 테오도릭 대왕의 손자이며 동고트 왕국의 2대 왕이다.
526년 테오도릭 대왕의 죽음 이후 10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으며, 실질적인 권력은 섭정인 어머니 아말라순타에게 넘겨졌다. 아말라순타는 아탈라릭에게 로마식 교육을 시키고자 했으나 고트족의 귀족들은 이를 거부하고 고트식으로 키워지길 원했다. 결국 폭음과 무절제한 생활에 빠져 건강을 망쳐 534년 10월 2일 죽었다. |
3742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42 | 테오다하투스 | 테오다하드(Theodahad, ? ~ 536년, 재위 534년 ~ 536년)은 테오도릭 대왕의 조카로, 동고트 왕국의 3대 국왕이다. 534년 아탈라릭 서거후 아말라순타와 함께 동고트 왕국의 공동 지배자가 되었으나, 535년 아말라순타를 유배보내 죽게 했다. 536년 아말라순타의 사위 비티게스에게 살해되었다. |
3743 | 70058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43 | 비티게스 | 비티게스(Witiges 혹은 Vitiges, ? ~ 540년, 재위 536년 ~ 540년)은 동고트 왕국의 제4대 국왕으로, 아말라순타의 딸 마테수엔타와 결혼했다. 제3대 국왕 테오다하드가 왕위에 오르며 제2대 국왕이자 형부인 아탈라릭의 섭정으로 있던 장모 아말라순타를 살해하자 그 복수로 테오다하드를 살해하고 왕이 되었다.
비티게스의 치세가 시작된 536년, 동로마 제국의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동고트 왕국을 쳐 나폴리와 로마를 수복하고 540년 동고트 수도인 라벤나까지 점령당했다.
마테수엔타와 비티게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끌려가 비티게스는 그 자리에서 처형당했고 마테수엔타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사촌 게르마누스와 재혼했다. |
3744 | 70058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44 | 헬데바두스 | 일디바드(Ildibad, ? ~ 541년, 재위 540년 ~ 541년) 혹은 헬데바두스(Heldebadus)는 동고트 왕국의 5대 국왕으로 동로마 제국의 벨리사리우스의 이탈리아 침공을 도운 공으로 전왕 비티게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끌려간 뒤 왕이 되었다.
그러나 곧 암살당하고, 에라릭이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일다바드는 실제로 스페인의 서고트족 왕 중 하나의 조카로 기록되어 있다. |
3745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45 | 암호학 | 암호학(暗號學, )은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언어학적 및 수학적 방법론을 다루는 학문으로 수학을 중심으로 컴퓨터, 통신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공동으로 연구, 개발되고 있다. 초기의 암호는 메시지 보안에 초점이 맞추어져 군사 또는 외교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메시지 보안이외에도 인증, 서명 등을 암호의 범주에 포함시켜 우리의 일상에서 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현금지급기의 사용, 컴퓨터의 패스워드, 전자상거래 등은 모두 현대적 의미의 암호에 의해 안정성을 보장받고 있다.
현대 암호학은 암호 시스템, 암호 분석, 인증 및 전자서명 등을 주요 분야로 포함한다.
용어 설명.
암호학을 이용하여 보호해야 할 메시지를 평문(平文, plaintext)이라고 하며, 평문을 암호학적 방법으로 변환한 것을 암호문(暗號文, ciphertext)이라고 한다. 이때 평문을 암호문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암호화(暗號化, encryption)라고 하며, 암호문을 다시 평문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복호화(復號化, decryption) 라고 한다.
암호학적 서비스가 제공하고자 하는 목표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암호학의 역사.
암호학의 기원은 수천년 전부터 이뤄, 최근 수십 년까지의 기간을 일컫는다.역사상 기록으로 남은 가장 오래된 암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사용한 대입암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되던 스키테일 암호체계도 있다. 이 시기의 암호화 기법을 고전 암호학 이라 부르는데, 고전 암호학의 암호학 기법은 대체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이런 고전 암호화 기법은 20세기 초에 이뤄서야 변화가 생겼는데, 이의 예로는 에니그마(독일어:Enigma 뜻:수수께기 )가 사용한 회전륜 가밀법이 대표적이다. 이후 전자요소와 계산기(컴퓨터)는 큰 발전을 이뤘으며, 이때 사용된 암호화 기법은 전통적인 사서통신에 쓰일 수 없게 되었다.
암호학의 발전은 암호분석학과 함께 발전했다. 즉 암호 편집과 가밀법에 대한 해독법을 말한다. 주로 가밀된 신호의 빈율을 분석하여 해석했는데, 이런 방법을 응용하여 해석된 암호문은때때로 역사를 바꾸기도 했다. 예를 들어, 치머만 전보를 해석한 것은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동맹국이 나치의 암호문을 해석한 것은 2차세계대전의 기간을 2년정도 단축시켜 주기도 하였다.
20세기부터 70년대 이전에 암호학의 대부분은 정부의 안전범주에 속했지만, 공개표준키 체제의 탄생과 공개키 가밀법의 발명은 암호학을 대중영역에 접하게 하였다.
대칭키 암호 시스템.
암호문을 생성(암호화)할 때 사용하는 키와 암호문으로부터 평문을 복원(복호화)할 때 사용하는 키가 동일한 암호 시스템이다. 암호 시스템의 안전성은 키의 길이, 키의 안전한 관리에 상대적으로 의존성이 높다. 암호문의 작성자와 이의 수신자가 동일한 키를 비밀리에 관리해야 하므로 폐쇄적인 특성을 갖는 사용자 그룹에 적합한 암호 시스템이다. 냉전시절 워싱턴과 모스크바 사이의 핫라인(hot line)에 적용되었던 OTP(one time pad)는 대칭키 암호 시스템의 예이다.
암호화 및 복호화.
엘리스(Alice)가 밥(Bob)에게 암호문을 보내고 복호화하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기술한다. 엘리스와 밥은 같은 키를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엘리스는 공유한 키로 암호화를 하며, 밥은 같은 키로 이를 복호화한다. 보통 복호화 과정은 암호화 과정의 역과정이다. 암호화와 복호화에 사용된 키가 같지 않더라도 한 키로부터 다른 키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경우에는 대칭키 암호 시스템의 범주에 넣는다.
대칭키 암호 시스템의 문제점.
대칭키 암호 시스템은 알고리즘이 상대적으로 단순한 장점이 있지만 키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 시스템에 가입한 사용자들 사이에 매 두 사용자 마다 하나의 서로 다른 키를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formula_1명이 가입한 시스템에는 formula_2 개의 키가 필요하다. 또 각 사용자는 formula_3개의 키를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는 매우 큰 단점으로 키 관리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공개키 암호 시스템의 출현의 계기가 되었다.
대칭키 암호 시스템의 종류.
대칭키 암호 시스템의 안전성은 키의 길이와 매우 관련이 크다. 일반적으로 키의 길이가 길수록 안전성은 높다. 그러나 키의 길이를 무한정 길게 하면 그에 따르는 관리의 어려움이 커진다.
공개키 암호 시스템.
대칭키 암호 시스템의 가장 큰 약점은 키관리의 어려움에 있다. 한 사용자가 관리해야 할 키의 수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타난 암호 시스템이 공개키 암호 시스템이다. 공개키 암호 시스템에서 각 사용자는 두 개의 키를 부여 받는다. 그 하나는 공개되고(공개키, public key), 다른 하나는 사용자에 의해 비밀리에 관리 되어야 한다.(비밀키, private key) 공개키 암호 시스템에서 각 사용자는 자신의 비밀키만 관리하면 되므로 키 관리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다. 공개키 암호 시스템에서는 각 사용자의 공개키를 관리하는 공개키 관리 시스템(공개키 디렉터리)이 필요하며 각 사용자는 이 시스템에 자유롭게 접근하여 다른 사용자의 공개키를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개키 암호 시스템은 두 키의 수학적 특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메시지를 암호화 및 복호화하는 과정에 여러 단계의 산술 연산이 들어간다. 따라서 대칭키 암호 시스템에 비하여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암호화 및 복호화.
엘리스(Alice)가 밥(Bob)에게 암호문을 보내고 복호화하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기술한다. 두 사용자에게는 각각 공개키와 비밀키가 부여되었고, 이들의 공개키는 공개키 디렉터리에 저장되어 있다. 엘리스는 공개키 디렉터리에서 밥의 공개키를 찾아 이를 이용하여 문서를 암호화하여 밥에게 보낸다. 밥은 수신한 비밀 문서를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신의 비밀키로 복호화하여 엘리스가 보낸 문서의 내용을 알 수 있다. 공개키 만으로는 복호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엘리스 역시 암호화 하고 나서 복원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공개키 암호 시스템에서 암호화-복호화 시스템은 두 키가 짝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비밀키로 암호화 하고 공개키로 복호화 할 수도 있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해당 공개키에 맞는 비밀키 보유자를 확인 할 수 있으며, 전자서명에서는 이런 성질을 이용한다.
이와 같이 공개키 암호 시스템에서는 암호화할 때 사용되는 키와 복호화할 때 사용되는 키가 다르기 때문에 비대칭 암호 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개키와 비밀키의 관계.
공개키 암호 시스템에서 각 사용자에게 부여되는 공개키와 비밀키에는 수학적 연관이 있기 때문에 암호화와 복호화가 가능하다. 이 둘은 마치 두 조각으로 나뉜 유리 조각과 같다. 한쪽은 공개되어 있고 그에 맞는 다른 한쪽은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한쪽이 그대로 공개된다면 숨겨진 다른 한쪽의 모습도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의 모습을 감추고 또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수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개키 암호 시스템의 종류.
다음은 잘 알려진 공개키 암호 시스템의 예이다. 이들은 각각이 갖는 알고리즘과 키 생성상의 특성을 갖는다. 이것은 처리 속도, 구현의 편의성과 연관이 되어 응용되는 분야를 결정하게 된다.
양자암호.
양자암호.
일반적으로 공개키 암호 시스템의 안정성은 한 방향으로의 접근은 쉽지만 그 역방향으로의 해결은 매우 어려운 수학 문제에 근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RSA의 안전성은 알려진 매우 큰 두 소수의 곱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두 소수를 모르는 채 곱해진 결과가 어떤 소수들의 곱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데 안전성의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안정성의 기반이 되는 어려운 수학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 문제에 안전성의 기반을 둔 암호 시스템은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안전한 암호 시스템은 무엇인가? 가장 단순한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one time password(OTP)가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OTP는 대칭키 암호 시스템으로 키생성, 키분배 등 일련의 키관리의 어려움이 있는 암호 시스템이다.
양자암호(quantum cryptography)는 OTP와 같은 안전한 암호 시스템이 갖는 키분배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양자암호는 양자키분배(quantum key distribution)으로 이해되고 있다.
양자암호의 안전성.
양자암호의 안전성은 불확정성원리(Uncertainty principle)에 근거하고 있다. 양자암호에서 키분배를 위한 통신으로 양자채널(quantum channel)과 인터넷이나 전화와 같은 통신수단(classical channel)을 동시에 사용한다. 일반적인 통신 수단을 이용한 정보의 교환은 노출 되어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양자채널을 이용한 정보의 교환은 보안이 필요하다. 그런데 키 분배 또는 공유 과정에서 불법적인 사용자가 양자채널을 통과하는 정보를 측정하게 되면 불확정성원리에 따라 키분배 시스템의 정확도에 문제가 생겨 이를 합법적인 사용자가 감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간자 공격 ()에 대해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으며, QND()를 응용한 FPB Attack에 대해서도 취약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위의 두 경우 물리적 수단이나 고가의 장비가 동원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
키분배 프로토콜.
1984년 Charles H. Bennett와 Gilles Brassard에 의해 완성된 키분배 프로토콜 BB84가 대표적이다. BB84에서는 광자 편광(photon polarization)의 상태를 수직, 수평 그리고 두 대각선으로 나누어 표현하여 디지털 신호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키분배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광자 편광의 경우 노이즈에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어 이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으며 실제 구현시, 위상차(phase)의 상태를 formula_4로 나눈 다음 Mach-Zehnder interferometer ()를 이용하여 구현한다. |
3746 | 70058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46 | 토틸라 | 토틸라(Totila, ? ~ 552년 7월 1일, 재위 541년 ~ 552년 7월 1일)는 동고트 왕국의 6대 국왕으로, 그의 치세에 발행된 동전에 따르면 본명은 바두일라(Baduila)이다.
토틸라는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을 재건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왕위에 오르자마자 파엔차 근처에서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군대를 무찌르는 것으로 고트족들의 사기를 높였다.
542년 무겔로 계곡에서 또다른 승리를 얻은 뒤 토스카나를 떠나 나폴리로 향해 도시를 점령하고 루카니아, 풀리아, 칼라브리아 3주의 항복을 받아냈다. 토틸라의 이탈리아 정복은 그 신속함만이 아니라 자비로움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본은 "적과 친구를 불문하고 토틸라의 믿음과 자비에 기댄 사람 중 속은 사람은 없었다" 라고 기록했다.
545년 말 토틸라는 티볼리에 주둔하고 로마로의 식량 유입을 끊어 항복을 받아내려 했고, 동로마 제국의 장군 벨리사리우스는 함대를 이끌고 티베르 강을 거슬러 올라가 도시를 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도시는 약탈되었고, 토틸라가 선언했던 대로 양 방목지까지는 되지는 않았지만 폐허가 되었다. 성벽과 다른 요새는 곧 재건되었고, 토틸라는 다시 로마로 향했으나 이번에는 벨리사리우스에게 패배했다.
549년 벨리사리우스가 이탈리아를 떠나자마자 토틸라는 로마를 세 번째로 로마를 공격, 수비측 내의 일부를 매수해 손쉽게 점령했다.
토틸라는 곧 코르시카와 사르데냐를 점령하고 고트 함대를 그리스 해안 지대로 보내 위협하며 시칠리아를 점령할 준비를 시작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환관 나르세스에게 명해 토틸라를 정벌하게 했고, 토틸라 역시 군대를 이끌고 싸웠으나 552년 7월 1일 타기나이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
3747 | 70058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47 | 테이아 (동고트 왕국) | 테이아(Teia, ? ~ 552년 혹은 553년, 재위 552년), 혹은 테야(Teja), 테이아(Theia), 틸라(Thila), 텔라(Thela), 테이아스(Teias)는 동고트 왕국의 7대 왕이자 이탈리아 최후의 고트족 왕이었다.
선왕 토틸라 아래에서 군관으로 활약하던 테이아는 부스타 갈로룸의 전투에서 토틸라가 전사한 이후 왕으로 선택되었다. 남부 이탈리아를 탈출하던 중에 스키푸아르(Scipuar), 군둘프(Gundulf, 혹은 인둘프Indulf), 기발(Gibal), 라그나리스(Ragnaris) 등의 유력자들의 지원을 받아 동로마 제국의 환관 장군 나르세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나, 552년 혹은 553년 나폴리 남쪽의 몬스 락타리우스의 전투의 전투에서 패배했다.
테이아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동생 알리게른(Aligern)은 항복했으나 스키푸아르와 기발 역시 전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군둘프와 라그나리스는 전장에서 도망쳤다. 라그나리스는 후에 나르세스의 암살자에게 치명상을 입고 죽었다. 동고트 왕국은 몬스 락타리우스의 전투 패배와 함께 멸망했다.
이후 고트 귀족 비딘(Widin)이 북이탈리아에서 550년대에 고트 부흥운동을 일으켰으나 561년 혹은 562년 생포되고, 동고트 왕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
3748 | 712661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48 | 타기나이의 전투 | 타기나이 전투 또는 부스타 갈로룸(Busta Gallorum)의 전투는 552년 7월 동로마 제국의 환관 겸 장수 나르세스와 이탈리아 동고트 왕국의 군주 토틸라 사이에 벌어졌다.
551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는 동고트족으로부터 이탈리아를 수복할 것을 결심했다. 552년 봄에 노장 나르세스는 동로마인, 롬바르드인, 헤룰리인으로 이루어진 2만 명의 군대를 모아 발칸반도를 거슬러 올라가 플라미니우스 가도를 타고 로마로 향했다.
타기나이 마을(현대의 구알도 타디노)에서 나르세스는 토틸라가 이끄는 고트 군대와 만났다. 토틸라는 수적으로 불리한 것을 알고 교섭을 시도하며 비잔티움군을 기습할 계획을 세웠으나 작은 언덕 하나를 점령하는 데에 그쳤다. 토틸라는 이후 2천 명의 기병 증원을 기다리며 진지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르세스의 비잔티움군은 롬바르드인과 헤룰리인을 중심으로 하고 양 끝의 궁수 뒤에 기병을 배치한 원호 진을 쳤다. 토틸라는 기병들을 중앙에 모으고 보병들을 그 뒤에 배치했다.
처음에 동고트군 내의 동로마 탈영병이 나와 일대일 대결을 신청했으나 패배했다. 그 뒤 기록이 확실하지 않으나 토틸라가 전쟁과 관련된 어떤 의식을 통해 사기를 진작시켰고, 점심 때가 되어 기병 지원이 도착했다. 점심 식사를 끝낸 토틸라의 군대는 밀집한 기병들로 나르세스군의 중앙을 쳐 무너트리려 했다. 그러나 고트 기병들이 나르세스의 원호 진형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양면에서 궁수들의 화살이 쏟아졌고, 고트군이 진형을 유지하려고 하는 틈을 타 나르세스의 기병들이 측면을 덮쳤다. 저녁 때가 되어 고트군은 토틸라를 포함한 6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고트군은 완전히 흩어졌다.
이 해 말에 로마는 다시 동로마 제국에 수복되었고, 토틸라의 뒤를 이어 동고트 왕이 된 테이아가 몬스 락타리우스의 전투에서 패배함과 함께 동고트족의 이탈리아 지배는 끝나게 되었다. |
3749 | 14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49 | 부스타 갈로룸의 전투 | |
3750 | 72228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50 | 몬스 락타리우스의 전투 | 몬스 락타리우스(Mons Lactarius)의 전투는 553년 동로마 제국의 나르세스와 동고트 왕국 최후의 군주 테이아 사이에 벌어졌다.
부스타 갈로룸의 전투에서 토틸라 왕이 전사한 이후 동로마의 나르세스는 로마를 수복하고 쿠마이를 포위했다. 토틸라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된 테이아는 남은 동고트 전력을 모아 이 포위를 깨고 쿠마이를 구원하려 출발했으나, 나르세스의 군대를 캄파니아의 베수비우스 산 근처 평원에서 만났다.
553년 10월에 벌어진 이 전투는 이틀간 계속되었으며 동고트의 테이아 왕이 전사했다. 이 전투 이후 이탈리아의 고트족 지배가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으로서도 이탈리아를 직접 통치할 여력은 없었고 이탈리아는 곧 프랑크족의 침입을 받게 된다. 프랑크족 역시 격퇴되고 이탈리아 반도는 다시 짧은 시간 동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
3751 | 14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51 | 동고트왕국 | |
3752 | 22169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52 | 춘추전국 시대 | 춘추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는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를 아우르는 말이며, 기원전 770년 주(周)왕조의 천도 후부터 기원전 221년 시황제(始皇帝)가 통일한 시기까지며, 선진 시대(先秦時代)라고도 한다.
550년간 지속했으며, 이 시대는 중국사상의 개화결실의 시기였다.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라 하며 그 학파들을 백가(百家)라 부른다. 상업이 많이 발달하였고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배경 및 개요.
주나라가 견융족에 의해 도읍을 낙읍으로 옮기자 주 왕실이 약화되어 봉건제가 약화됨에 따라 각각의 제후국들은 철제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발전시키고 인재를 등용하여 주왕실에 반기를 들고 춘추 전국 시대의 패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전쟁 및 제자백가사상, 뛰어난 왕과 장군이 나타났던 시대이다. 특히 전국칠웅이라 불리는 진, 초, 제, 연, 조, 위, 한의 일곱나라가 일어나 서로 대립했다.
의의.
춘추 전국 시대때는 상공업이 많이 발전하였고, 철제로 된 물품을 상용하였으며, 남북조 시대와는 달리 인재의 등용에 힘을 써서 안으로는 치안과 평화를, 밖으로는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을 하였다. 또한 제자백가등의 사상이 많이 발전되었다.
사상과 교육.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중국 사회는 큰 변혁을 일으켰다. 주나라 왕실이 쇠약해짐으로써 중앙집권체제는 무너지고, 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함으로써 사회는 극도의 혼란 속에 빠졌다. 인구의 증가, 민족의 대이동, 정전제도(井田制度)의 붕괴 등은 봉건체제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제후(諸侯)들의 세력신장은 전쟁을 발발케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따라서 전통문화는 지배력을 상실하고, 새로운 사상의 태동을 요구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지식과 교육을 독점했던 귀족계급의 몰락은 사학의 발흥을 촉진하고 관학의 붕괴를 초래했고, 몰락한 귀족들은 민간에 흩어져 교육을 생업으로 삼았다. 또한, 제후들은 자기 세력의 확대를 위해 유능한 지식인을 요구하였고, 이러한 요구는 사학의 발전을 자극하였다. 더욱이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군웅들에 의해 변방지역이 개척됨에 따라 한족(漢族)은 이민족(異民族)의 문화와 접촉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축적하였다. 따라서 한문화권은 확대되고 사회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지식인들이 배출되어 당시 사회의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자기들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제자백가는 이들 지식인의 대표자들이며, 유가(儒家)·도가(道家)·묵가(墨家)는 그중 가장 뛰어난 3대학파이다. |
3753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53 | 전국 칠웅 | 전국 칠웅()은 전국시대부터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일곱 나라를 지칭한다. 전국시대에는 그 외에도 여러 나라들이 있었으나, 이들 일곱 나라가 가장 강력했고 중국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
3754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54 | 보리 | 보리()는 벼목 벼과 보리속에 속하는 식물로,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 식물이다. 쌀보리와 구분해 겉보리로 부르기도 한다. 맥주의 재료이다. 보리는 기원전 7000년에 이미 야생종이 재배되었다고 하며, 기원전 3000년경부터는 아프리카 고대 왕조의 유적에서 육조종이 발견되고 있다.
생태.
줄기 속은 비어 있고, 높이는 1m 정도로 자란다. 일반적으로 가을에 심어 다음해 봄에 수확한다. 원줄기는 속이 비고 원주형이며 마디가 높고 마디 사이가 길다. 잎은 어긋나며 넓은 선상 피침형으로 너비 10-15mm이다. 꽃은 4,5월에 핀다.
분류.
보리는 열매껍질이 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느냐, 쉽게 떨어지느냐에 따라 크게 껍질보리(겉보리)와 쌀보리로 구분한다. 겉보리가 추위에 더 잘 견딘다. 겉보리는 주로 영남에서, 쌀보리는 주로 호남에서 많이 재배된다.
또 열매에 줄이 두 개 있는 두줄보리와 여섯 개 있는 여섯줄보리 등으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5-6세기 것으로 보이는 여섯줄보리의 일종인 껍질보리가 경기도 여주군에서 출토된 바 있어, 오래전에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쌀보리는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껍질보리에 비해 추위에 견디는 힘이 약하다.
보리는 춘·추파성 및 내한성의 정도에 따라 겨울보리가 대부분이고 봄보리는 겨울이 지나치게 추워서 겨울보리의 재배가 어려운 경기 북부, 강원도 및 중부 산간지대의 일부에서 재배한다.
용도.
질 좋은 보리는 낟알을 싹틔운 다음 말려서 맥아로 만든다. 맥아는 맥주, 위스키, 고추장, 엿기름, 식혜 등의 중요한 재료이다.
보리를 우려내 보리차를 만들수있다.
성분.
다른 맥류와 비교해 볼 때 보리는 탄수화물의 함량이 높고 칼슘·인·철분 등의 무기질과 바이타민B (비타민B)가 풍부하다.
Encyclopædia Britannica 11 번째판 (1910–1911년)은 보리의 성분을 에른스트 폰 비브라에 따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소금 성분 제외) |
3755 | 22169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55 | 맥주 | 맥주(麥酒, , )는 보리를 가공한 맥아(麥芽)를 발효한 술로서 알코올은 맥주의 종류에 따라, 2 ~ 8% 정도의 다양한 도수를 가진 술이다. 맥주의 어원은 '마신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비베레(bibere)에서 유래하였다.
맥주는 고대 문명에서 농업의 번창함을 표현한 인류학적 증거라는 견해가 있다.
맥주는 기원전 3000년부터 양조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알코올 음료로 알려져 있다. 수메르,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이집트 등지에서 보리와 밀을 경작하면서 맥주의 양조가 발달되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맥주에 관한 법률이 나와 있다.
역사.
총괄.
맥주는 인류가 유목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전환해 농경 생활을 하면서부터 만들어진 음료이다.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에 의해 탄생했다는 것이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메르인들은 곡물로 만든 빵을 분쇄한 다음 맥아를 넣고 물을 부은 뒤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맥주를 제조했다고 한다. 또한 기원전 3000년경부터는 이집트 지역에서도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맥주는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갔고, 중세 시대에는 수도원에서 맥주 양조를 담당했다. 수도사들이 금식 기간 동안 기분 좋은 맛을 내는 음료를 마시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8세기경 영국의 에일(ale)과 포터(porter)가 만들어졌고, 10세기경부터는 맥주에 쌉쌀한 맛을 내는 홉을 첨가했다.
맥주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만든 증기기관은 물의 이송과 맥아의 분쇄, 맥즙의 교반 등에 동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며 맥주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독일의 카를 폰 린데(Carl von Linde)는 냉동기를 발명해 겨울에만 만들 수 있었던 하면발효 맥주를 계절에 관계없이 양조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는 술이 효모의 작용에 의해 생성된다는 사실과 열처리 살균법을 발명했고, 덴마크의 에밀 한센(Emil Hansen)은 파스퇴르의 이론을 응용해 효모의 순수배양법을 개발하면서 맥주의 품질을 높였다.
우리나라에 처음 맥주가 들어온 것은 1883년이며 맥주를 우아(벗우, 아이아)로 표기하였는데 비어(beer)의 영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 맥주 제조회사의 역사.
한국에서 맥주가 처음 생산된 것은 1933년 일본의 대일본맥주(주)가 조선맥주(하이트맥주 전신), 기린맥주(주)가 소화기린맥주(오비맥주 전신)를 설립하면서부터였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두 맥주회사는 미군정에 의해 관리되었고, 1951년에 민간에 불하되었다. 1992년에는 진로쿠어스맥주(주)가 설립되면서 하이트맥주, OB맥주, 카스맥주 등 3개 회사에서 맥주를 양조했다. 이후 카스맥주가 OB맥주에 인수되었고, 현재는 하이트진로(주)와 OB맥주(주)에서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일본 삿포르 맥주회사 -> 조선맥주(주) (1933) -> 해방 후 독립, 크라운 맥주로 알려짐
-> 한독맥주(주) 매수(1977) -> 하이트맥주 개발, 시판 (1993)
-> 하이트 홀딩스(주)로 상호변경 (1998)
일본 기린 맥주회사 -> 동양맥주(주) -> 해방 후 독립 -> OB맥주 상호변경
-> 카스맥주(주) 흡수합병(1999)
양조.
보리와 밀을 가공한 엿기름을 더운 물에 담가 엿기름의 녹말을 당분으로 변화시킨다. 곡물 찌꺼기를 걸러낸 뒤 남은 맥아즙에 홉을 넣어 끓인다. 맥아즙이 서늘해지면 효모를 추가하여 발효시킨다. 효모는 당분을 에틸 알코올, 탄산 가스와 맥주의 맛에 영향을 주는 다른 성분으로 분해하는데, 이 과정을 발효라 한다. 병이나 캔 등에 담기 전에 효모를 없애기도 하며, 맥주를 몇 주나 몇 달간 놔둔다. 일정기간 저장·숙성한 후 여과하여 바로 제품화하면 생맥주가 되고, 병이나 캔에 넣어 저온살균 처리하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맥주가 되는데, 그 공정은 다음과 같다.
원료.
맥주는 "양조용수·보리·홉" 등이 주원료로 된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쌀·옥수수·녹말·당류 등을 녹말질 보충원료로 사용하며, 그 비율은 그 나라의 사정이나 기호에 따라 다르다(독일에서는 1815년 이후 수출맥주 이외의 하면발효맥주에는 부원료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종류.
맥주는 분류 기준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상면발효 맥주와(에일, Ale) 하면발효 맥주로(라거, Lager) 나눌 수 있다.
상면 발효 맥주는 인류 문명 발생 이전부터 만들어진 맥주로서 발효 과정에서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에(SaccharomycesCerevisiae)라는 효모가 맥주 위로 거품처럼 뜬다. 이 맥주가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인위적인 발효온도를 설정할 수 있는 기술 없이도 가능했기 때문이며,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독일의 바이스비어나 쾰쉬, 영국의 에일이나 스타우트, 포터 같은 맥주가 상면발효 맥주에 속한다. 상면발효맥주는 맥아농도가 높고, 10도에서 25도 사이의 상온에서 발효를 하기 때문에 색이 짙고 알코올 도수도 높은 편이다.
하면 발효 맥주는 19세기 중반에 처음 만들어진 맥주로서 상면발효 맥주보다 낮은 온도인 섭씨 12도 전후에서 발효하며, 발효 과정에서 사카로마이세스 카를스베르겐시스(Saccharomyces Carlsbergensis)라는 효모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독일의 양조사인 조셉 그롤이 체코의 필센 지방에 있는 양조장에서 처음으로 양조에 성공했는데, 이 양조장의 지하 저장고가 서늘했기 때문에 양조가 가능했다. 하면 발효 맥주는 저온에서 발효를 하기 때문에 깨끗하고 부드러운 맛과 향이 특징이다. 전세계 맥주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라거(lager)가 대표적이다. 양조법에 따라서는 드라이(dry) 맥주, 디허스크(Dehusk) 맥주, 아이스(ice) 맥주로 구분되고, 살균여부에 따라서는 생맥주와 보통맥주로 나뉜다.
상면발효 맥주는 효모와 "부유 단백질" 등이 맥주에 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탁하고 걸쭉한 맛을 내는 반면에 하면발효 맥주는 바닥에 가라앉은 효모와 부유 단백질을 제거하기 때문에 맑은 황금색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알코올 함량에 따라서 무알코올성 맥아 음료, 비알코올성 맥아 음료, 라이트 맥주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생산과 목적.
독일 바이에른에 베네딕토 Weihenstephan 맥주는 그 해로부터 문서가 홉 정원에 11조를 지불했음을 언급함으로써 768년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양조장은 1040년에 프 라이징시에 의해 허가를 받았고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 된다. 불연속적인 생산으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은 993년에 설립된 체코의 Břevnov 수도원이다.
양조 산업은 여러 가지 지배적인 다국적 기업 및 지역 양조장에서 선술집에 이르는 수 천명의 작은 생산자들로 구성된글로벌 비지니스이다. 2006년 판매 기준 $294.5 billion(£ 147.7 억 달러)으로 세계 총 판매 수익을 생산하며 1천 3백 30억 리터 이상이(3백 50억 갤런)매년 팔리고 있다.
양조장 또는 공예 양조장은 제한된 양의 맥주를 생산하는 현대 양조장이다. 양조장이 생산할 수 있는 맥주 최대량은 지역 및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한 해당 약 15,000 배럴(1.8 메가 리터, 396000 제국 갤런 또는 475000 미국 갤런)이다. brewpub은 술집이나 다른 음식점들을 통합한 양조장 유형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밀도의 양조장은 대부분 프랑켄의 독일 지역에 있다. 특히 약 200양조장을 가진 오버프랑켄 현 지역에 있다.
집에서 양조를 하는 것은 많은 나라에서 규제와 금지 적용을 받고있다. Homebrewing에 대한 규제는 1963년에 영국에서 해제되었다. 또한 호주는 1972년에, 미국은 1978년에 법을 해제시켰다. 그러나 몇 개의 주에서는 생산을 제한하는 그들만의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허락되었다.
세계의 맥주.
미국, 독일, 덴마크, 아일랜드,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등지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특히 맥주의 흥행국 독일에서는 전국에 걸쳐 1,000 여종의 맥주가 있다고 한다. 영국은 맥주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이다. 뮌헨의 아우구스티너, 파울라너, 호프브로이하우스, 뢰벤브로이 등과 함부르크의 홀스텐, 아스트라, 하노버의 헤렌호이저, 브레멘의 벡스 맥주 등, 각 지역마다 독특한 양조 기술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네덜란드에서는 UEFA 챔피언스리그의 공식 스폰서인 하이네켄 맥주가 유명하고, 덴마크에서는 한때 리버풀의 스폰서이자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칼스버그 맥주가 유명하다. 아일랜드는 유명한 기록 책인 기네스 북을 발간하는 흑맥주 회사 기네스 맥주가 유명하고, 미국의 유명 맥주는 버드와이저, 밀러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중국은 칭따오 맥주가 유명하다.
맥주 관련 축제.
국내 맥주 축제.
음악페스티벌과 맥주축제가 함께 진행된다. 국내의 맥주들은 물론 러시아, 중국, 일본 등 맥주를 만날 수 있는 ‘동북아 맥주 대전’과 세계의 다양한 맥주를 맛 볼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역대 최대 85개 업체가 참가한 대구 치킨 맥주 페스티벌에선 치킨을 25만 5000여 마리, 맥주는 25만 리터가 준비될 만큼 굉장히 큰 축제이다. 두류공원에서 개최됐다. 치킨을 주제로 한 패션쇼와 전설의 복면가왕, 닭싸움 대회, 수제 맥주와 칵테일 경연대회, 각종 버스킹 등으로 많은 이벤트가 있다.
무제한 맥주와 함께 부산 밤바다를 즐길 수 있는 축제다. 맥주를 마시면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 들이 있다. 인디 밴드의 음악과 댄스 팀들의 퍼포먼스도 볼 수 있다. 야구 생중계를 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음악페스티벌과 수제맥주축제가 한데 어우러진 축제다.
외국 맥주 축제.
일본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삿포르에서 매년 여름마다 ‘삿포르 맥주 축제’가 열린다. 삿포르 맥주를 비롯하여 아사히, 산토리, 기린 등 일본 유수의 맥주 브랜드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각 브랜드마다 홋카이도 한정 맥주를 판매하는 등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독특한 맥주와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칭다오 세계 맥주 축제는 아시아 최대 맥주 축제이자 세계 4대 맥주 축제로 인정받고 있다.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칭다오시에는 음주 대회를 비롯해 다양한 음식과 공연이 펼쳐진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구 치맥 페스티벌과 칭다오 국제 맥주 축제가 양도시를 대표하는 치킨/맥주 관련 축제라는 것을 공동으로 인식하고 축제 상호 간 우호 협력을 강화하여 이해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MOU협약을 최근에 맺었다고 한다.
독일의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는 독일 뮌헨의 민속 축제이자, 세계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 중 가장 규모가 큰 축제이다. 민속 의상을 차려입은 시민과 방문객 8,000여 명이 어우러져 뮌헨 시내 7km를 가로지르는 시가행진이 큰 볼거리이다. 축제 기간에는 회전목마, 대관람차,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 80여 종을 포함하여 서커스, 팬터마임, 영화 상영회, 음악회 등 남녀노소 함께 할 수 있는 볼거리가 운영된다. |
3756 | 36811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56 | 술 (동음이의) | 술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
3757 | 693976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57 | 음료 | 음료(飮料)는 주요 구성성분이 액체이며 마실 수 있도록 만든 음식의 한 종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수분보충을 통한 갈증해소를 기본으로 하며 맛과 향을 즐기거나 피로회복, 건강증진, 부드러운 분위기 조성, 대화유도, 적당한 흥분과 각성효과, 즐거움을 위하여 마시는 것 등을 목적으로 한다.
종류가 매우 다양한 만큼 여러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알콜음료와 비알콜성 음료, 차, 커피 등 기호음료, 청량음료, 우유 음료, 건강 음료, 과일 음료, 콩 음료, 먹는물(맹물) 등에 따위가 있다. 흔히 음료수(飮料水)라고도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음료수는 마시거나 요리에 쓰이는 물만을 뜻한다.
인간이 마실 수 있는 음료의 기본은 자연상태에 있는 물이다. 그러나 물의 질이 음료로서 부적합할때는 정수하거나 끓이거나 발효시켜 마신다. 이때 싱거운 맛 등을 보강하기 위해서 차나무 잎, 커피 등을 첨가하기도 한다. 냉장기술이 발전되지 못했던 시절에 물의 장기보관을 위해서는 발효를 유도하는데, 이때 발생한 알콜성분은 세균번식을 막아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보존기간이 연장된다.
15세기말에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원양항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때 가장 큰 문제가 물의 장기보관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물보다 장기 보관이 가능한 맥주나 포도주 등을 대용음료로 사용했다. 물이나 알콜음료는 나무로 만들어진 바렐 통에 보관하였는데, 물의 보존기간은 최대 6주였다. 6주내에 신선한 물을 보급받지 못하여 물이 상한 경우에는 쉰 포도주를 첨가하여 마셨다. 쉰 포도주에 포함되어 있는 알콜과 식초 성분이 소독작용을 통하여 멸균하므로 배탈, 설사 등 세균성 질환의 발생을 막고 맛도 개선하는 효과가 있었다.
역사.
마시는 일은 수세기에 걸쳐 사교의 큰 부분이 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마시기 위한 사회적 모임을 심포지엄이라 하며, 여기에서 물에 희석시킨 포도즙을 마셨다.
수많은 초기 사회들은 술을 신들이 내려준 선물로 간주하여, 디오니소스와 같은 신들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갈증과 수분평형.
소변과 땀 등을 통한 노폐물 배설은 수분과 용질의 균형을 이루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신체의 항상성 유지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물은 생체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 구성성분으로 생물체의 약 70% 정도는 수분형태로 이루어져있다. 만약 수분 손실이 1~2% 정도 발생하게 되면 갈증을 느끼게 되고 수분손실이 약 4% 이상이 발생하면 탈수증상을 보이며 혼수상태에 빠질수 있다. 약 10% 이상의 수분손실이 발생하면 생명유지가 어렵게 된다. 이렇듯 체내 수분은 항상 일정수준 정도로 유지되어야만 한다. 만약 노폐물 배설 과정에서 수분손실이 발생하였다면 그에 상응하는 일정정도를 외부에서 섭취, 보충하여서 체내 수분 함량을 거의 일정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종류.
음료는 대략 다음과 같이 나뉜다. |
3759 | 36811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59 | 이산화 탄소 | 이산화 탄소(二酸化炭素, )는 탄소 원자 하나에 산소 원자 둘이 결합한 화합물이다. 화학식은 CO2 (씨오투)이며, 고체 상태일 때는 해빙 시에 바로 기체로 승화하므로 드라이아이스(dry ice)라고 부른다. 기체 상태일 때는 무색, 무취, 무미로 지구의 대기에도 존재하며, 화산 가스에도 포함되어 있다. 유기물의 연소, 생물의 호흡, 미생물의 발효 등으로 만들어진다. 생물의 광합성 과정에서 주로 이산화 탄소를 이용하여 탄수화물이 합성된다.
이산화 탄소는 가장 강력한 대뇌 혈관 확장제 중 하나이다. 고농도의 이산화 탄소를 흡입했을 때 순환계에 이상을 일으켜 혼수상태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다량의 이산화 탄소에 노출되었을 경우 질식이 일어날 수 있다. 낮은 농도의 이산화 탄소는 호흡의 증가와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 산소부족으로 인한 숨 가쁨, 정신적 경계심의 감소, 근육 조정의 손상, 판단력 상실, 감각의 무뎌짐, 정신적 불안정, 피로를 일으킬 수 있다. 질식의 과정으로 구역질, 구토, 피로, 의식 상실 등이 일어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발작, 혼수상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임산부에게서의 산소 부족은 태아 발육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성질.
물리적 특성.
상온에서 무색 기체로 존재한다. 약간 신 맛이 있다. 밀도는 0 °C, 1atm에서 1.976g/L이다. 삼중점은 -56.6 °C/5.11atm으로 상온 상압에서 승화하며, 승화점은 -78.50 °C이다. 임계 온도는 31.0 °C이며, 임계 압력은 72.80atm이다.
분압이 1atm일 때, 1부피의 물에 녹는 이산화 탄소의 상대적인 부피는 다음과 같다.
에탄올에는 물에 비해서 약 2배정도로 녹고, 카복실산 또는 그 무수물에는 물의 약 20배 정도 녹을 수 있다. 에테르, 벤젠 과는 잘 섞이지만 그 외의 많은 유기 화합물과는 잘 섞이지 않는다.
분자의 형태는 직선형이며, 탄소 원자와 산소 원자간의 결합 길이는 1.62Å이다. 고체는 분자성 결정의 형태로 존재한다.
화학적 특성.
이산화 탄소는 화학적으로 활성이 낮은 기체이다. 이산화 탄소가 관여하는 대표적인 반응은 다음과 같다.
이산화 탄소는 무극성 분자이다.
제법.
실험적으로 이산화 탄소는 석회암에 염산을 반응시켜 얻을 수 있다.
CaCO3+2HCl → CaCl2+H2O+CO2
공업적으로 이산화 탄소는 주로 다음과 같이 얻을 수 있다.
정제법.
공업적으로 이산화 탄소를 정제하는 데에는 주로 다음과 같은 반응을 이용한다.
위 반응들은 공통적으로 저온에서는 평형이 왼쪽으로 이동하고, 고온에서는 평형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위 반응의 반응물이 포함된 수용액과 이산화 탄소를 반응시켜 이산화 탄소를 흡수한 후 이를 가열하면 다시 이산화 탄소가 발생한다. 이 성질을 이용하여 이산화 탄소를 정제할 수 있다.
용도.
이산화 탄소는 다음과 같은 용도로 사용된다.
오염.
이산화 탄소는 온실기체로 작용하여, 지구복사를 통하여 우주공간으로 나가는 에너지 중 일부를 다시 지구로 되돌린다. 이러한 이산화 탄소의 성질은 지구의 에너지 평형을 깨트려서,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산화 탄소는 화석연료와 같은 탄소를 포함한 물질을 완전 연소시킬 경우 생성되는데, 최근 화석연료의 사용이 크게 늘면서 이산화 탄소의 배출량도 증가하여 대기중의 이산화 탄소 농도가 증가하였고 이는 지구온난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2006년 당시,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저녁 시간대에 지면으로 내려앉는다는 도시전설이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만약 이산화탄소가 저녁 시간대에 지면으로 가라앉는다면 케로신(등유)으로 인한 대기 오염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학계에서 이 주제는 주로 언급되고 있다.
생체 내에서의 작용.
순환.
이산화 탄소는 세포호흡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발생한 이산화 탄소는 순환계를 통하여 폐로 이동하여 체외로 방출된다. 이산화 탄소가 순환계를 통하여 세포로부터 폐로 이동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탄산 수소 이온의 형태로 이동할 경우. 조직 근처의 혈관에서 이산화 탄소 분자는 적혈구 내의 탄산탈수효소에 의해서 물 분자와 반응하여 탄산을 형성한다. 탄산은 곧 탄산 수소 이온과 수소 이온으로 해리되어 수소 이온은 헤모글로빈에 결합하고 탄산 수소 이온은 혈장으로 방출된다. 폐 주위의 혈관에서 탄산 수소 이온은 반대 과정을 거쳐 이산화 탄소가 되고, 이것은 폐를 통하여 몸 밖으로 방출된다.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은 혈액의 pH가 떨어지면 산소와의 친화력 역시 감소하는데, 이를 보어 효과라 한다. 물질대사가 활발한 조직에서는 이산화 탄소의 생성량이 증가하며, 그 결과 주위 혈액의 이산화 탄소 분압은 증가한다. 이산화 탄소는 물과 결합하여 탄산을 생성하므로, 이는 혈액의 pH를 떨어트린다. 따라서 헤모글로빈에서 산소가 방출되고, 방출된 산소는 세포호흡에 사용된다.
광합성.
식물은 광합성 과정에서 이산화 탄소를 흡수하여 이를 탄수화물의 형태로 만든다. 식물에 의해 흡수된 이산화 탄소는 캘빈회로로 들어가고, 루비스코에 의해 리불로스-1,5-이인산(RuBP)에 결합한다. 이는 여러 반응을 거쳐 글리세르알데하이드-3-인산(G3P)이 되고, 이것이 이후 포도당 또는 다른 탄수화물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한 분자의 G3P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 분자의 이산화 탄소가 필요하다.
독성.
고농도의 이산화 탄소는 신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 부피 백분율로 0.6~2.5%의 이산화 탄소는 나른함을 일으킨다. 하지만 2.5%까지는 안전한 농도이다. 이 농도까지는 나른함은 일으키지만 오랜 시간 있어도 안전하며, 오랜 시간 노출되었다가 일반적 환경으로 나올 시에는 즉시 회복된다. 즉 2.5%까지는 즉시 회복이 가능하다. 3%가 넘어가면 호흡이 커지게 되며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3~4%사이에 오랜 시간 노출되었을 경우에는 후유증은 좀 오래가지만 시간은 걸리더라도 완전 회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4%가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4%가 넘으면 두통, 매스꺼움, 구토 등을 일으키게 되며 이 농도에 계속 노출시에는 장해가 생성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숨을 쉴때 내뱉는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4%인데 이 농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환이 잘 되지 않으며, 이러한 현상 때문에 4%가 넘어가면 이산화탄소의 독성 효과가 갑자기 크게 나타난다. 오랜 시간 4~5%에 노출시에는 폐 장해가 형성되며 기억력 감퇴, 시력 감퇴까지 나타날 수 있으며, 운동 능력 감퇴도 나타난다. 오랜 시간 노출시에는 이러한 현상이 회복되지 않는 장애 현상이 나타난다. 5%가 넘어가면 방안에 촛불이 자동으로 꺼진다. 6%에서는 공기가 부족한 고고도 환경에서나 일어나는 급격한 호흡수 증가 현상이 나타난다. 1~3시간 노출되면 장애 현상이 나타나므로 30분 내로 탈출해야 한다.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이 농도에 노출되면 사망하게 된다.
8%가 넘어가면 운동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며, 3분의 노출만으로 달리기가 불가능해진다. 이 농도에서는 20분 내로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해지으므로, 적어도 10분 내로 탈출해야 한다. 8%에서 농도에서 오랜 시간 넘어가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11%가 넘어가면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진다. 2분안에 움직임이 불가능해지며, 5분내로 기절하게 되므로 적어도 1분 내로 이 농도에서 탈출해야 한다. 30분~1시간내로 사망하게 되며 구토로 인한 기도 막힘으로 조기 사망도 할 수 있다.
13%의 농도에서는 짧은 시간내에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30초안에 탈출하지 못한다면, 움직임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1분안에 즉시 기절하며, 호흡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8분 내로 사망하게 된다.
15%의 농도에서는 즉시 기절하게 된다. 즉 물속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며 2~5분 내로 사망하게 된다.
17%가 넘어가면 고농도 이산화탄소의 흡입으로 인한 중독으로 즉시 기절하게 되며 1분내로 사망한다. 고농도 이산화탄소가 폐가 쌓여 즉각적으로 영향을 주므로 호흡 순간 즉시 기절하며 40초~1분 내로 사망하게 된다.
지구 대기
역사.
1727년에 뉴턴적 고찰을 생리학과 화학에 도입하려고 노력한 영국 국교회 목사 스티븐 헤일즈는 유기 물질을 태울 때 특정한 기체가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어떤 공기가 많은 유기 물질과 특정한 알칼리 토류에 고정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것은 이산화 탄소였다. 그러나 이 기체는 조지프 블랙이 1755년에 에든버러 철학학회에 보고하고 다음 해에 산화마그네슘, 석회, 그 밖의 다른 알칼리 물질에 관한 실험으로 발표하기까지, 특정 화학종으로서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조셉 블랙(1728~1799)은 마그네슘을 통해 ‘고정 공기’라는 개념을 정립하였다. 당시는 알칼리성 물질이 부식성을 띠는 까닭을 플로지스톤설을 통해서 설명하였다. 즉, 산화 칼슘에 약염기에 탄산 나트륨또는 탄산 칼륨을 작용시키면 플로지스톤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였다. 블랙은 실험을 통해서 이 과정에서 산화 칼슘의 질량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이는 반응 결과 기체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이 기체를 '고정된 공기'(fixed air)라고 불렀고, 이것이 곧 이산화 탄소이다. 또한 그는 석회암에서 추출한 탄산 마그네슘을 가열하면 이산화 탄소가 발생함으로 인해서 질량이 감소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리고 약염기성의 탄산염이 이산화 탄소를 방출할 경우 강염기성이 되고, 이것이 다시 이산화 탄소를 흡수할 경우 약염기성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도 발견하였다.
또한 고정 공기가 대기 공기나 인간의 호흡 속에 함유되는 것, 석회수에 흡수되어 백탁 현상을 일으키는 것, 가성 알칼리를 고정하여 온화 알칼리를 만드는 것 등이 블랙에 의해 밝혀졌다.
기체과학에서는 블랙에 뒤이어 캐번디시가 이 기체의 비중, 용해도 기타에 대해 자세한 연구를 하였다. |
3760 | 659914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60 | 일산화 탄소 | 일산화 탄소(一酸化炭素, )는 탄소와 산소로 구성된 화합물이다. 분자식은 CO이다. 석탄이나 석유를 다량 연소시키는 공업지대의 대기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으며, 가정에 공급되고 있는 도시가스에도 포함되어 있다. 탄소 화합물이 불완전 연소되면 발생한다. 가연성이며 독성이 있어서 취급에 주의가 필요하다. 산소보다 헤모글로빈과의 친화력이 200배 정도 더 좋기 때문에 소량 흡입시에도 호흡 대사를 방해하여 생명 유지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담배 속에 들어있는 인체에 해로운 대표적 물질 3가지 중 하나이다.(타르,니코틴,일산화탄소)
역사.
18세기 후반에 프랑스의 화학자 J. M. F. Lassone에 의해 처음으로 얻어졌다. 19세기 초에 J. B. Desormes와 W. Cruickshank는 일산화 탄소를 연소시키면 같은 부피의 이산화 탄소가 발생하는 것을 통해 일산화 탄소의 조성을 결정하였다.
성질.
물리적 성질.
상온에서 무색, 무취, 무미의 기체로 존재한다. 끓는점은 -191.5°C, 녹는점은 -205.0°C이다. 임계 온도는 -139°C이며 임계 압력은 35atm이다. 25°C에서 생성열은 26.62cal/mole, 연소열은 67.62cal/mole이다. 물에는 잘 녹지 않아, 0°C에서 1atm의 일산화 탄소와 평형상태에 있는 물 100ml는 0.0044g의 일산화 탄소를 포함한다. 알코올, 염화 구리(II) 수용액에는 잘 녹는다. 활성탄에 쉽게 흡착된다.
일산화 탄소는 다음의 세 공명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C 원자와 O 원자간의 결합 길이는 1.13Å이다.
화학적 성질.
공기 중에서 점화하면 푸른 불꽃을 내며 연소하여 이산화 탄소를 생성한다.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일산화 탄소가 다음과 같이 분해되는 일은 온도가 수천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 한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분해는 상온에서는 팔라듐 촉매 존재 하에 가능하며, 400~700°C에서는 많은 물질의 표면이 다음 분해 반응의 촉매 역할을 한다.
수증기와는 가역적으로 반응하여 다음과 같은 반응을 일으킨다.
그 외에 일산화 탄소가 관여하는 대표적인 반응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케톤, 산, 에스터를 얻을 수 있다.
만드는 방법.
모든 유기체에 포함되어 있는 탄소를 태울 때 불완전연소하면 일산화탄소가 생긴다. 따라서, 시체를 태우거나, 동식물의 사체로부터 만들어진 숯, 석탄, 석유 등을 태우면 발생한다.
공업적으로는 석탄이나 코크스와 공기 또는 가열 수증기를 반응시킨 후 이를 정제하여 일산화 탄소를 얻어낼 수 있는데, 대부분의 공업적 용도로는 질소와 수소가 포함된 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실험실에서는 포름산을 진한 황산이나 진한 인산으로 탈수시켜 얻는다.
또한, 카바이드 제조 시에 부산물로 얻어지기도 한다.
용도.
일산화 탄소는 주로 연료, 화학공정의 원료로 사용된다.
일산화 탄소가 화학공정의 원료로 사용된 예는 다음과 같다.
이 반응은 특정 금속의 분리에 사용된다.
오염.
일산화 탄소는 대기오염물질의 일종이다. 특히 공장지대나 차량, 항공기가 많이 사용되는 지역에서의 농도가 높다.
안전성.
일산화 탄소는 인화성이 강하기 때문에 취급에 주의를 요한다. 또한 일산화 탄소는 인체 내에서 독성을 가진다.
흡입된 일산화 탄소는 혈액의 헤모글로빈과 결합하여 카복시헤모글로빈을 생성한다. 카복시헤모글로빈은 산소 운반의 기능이 없기 때문에, 이는 혈액의 산소운반능력을 크게 떨어트린다. 흡입된 양에 따라서 두통, 어지러움, 심계항진증, 나른함, 혼란, 구역질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경련, 의식 없음,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ref name="MSDS">일산화 탄소 MSDS |
3762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62 | 연료 | 연료(燃料)는 보통 태워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물질을 말한다. 휘발유, 등유, 경유, 연탄 등이 있다.
로켓의 연료.
모든 로켓의 추진제(propellant)는 연료(fuel)와 산화제(oxidizer)로 구성되어 있다. 제트엔진은 연료만 탑재하며, 산화제는 공기 흡입구를 통해 외부의 산소를 흡입하여 사용한다. 그러나, 로켓엔진은 공기 흡입구가 없으며, 내부에 산소통을 탑재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로켓 추진제는 연료와 산화제 둘이 사용된다. |
3765 | 22169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65 | 2002년 FIFA 월드컵 | 2002년 FIFA 월드컵(, )은 17번째 FIFA 월드컵 대회로, 2002년 5월 31일에서 6월 30일까지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아시아에서 열린 첫 FIFA 월드컵 대회이자 유럽과 아메리카 밖에서 열린 첫 대회이며, 골든골 제도가 시행된 마지막 FIFA 월드컵이자 전 대회 우승국 자동 출전권이 적용된 마지막 FIFA 월드컵이기도 하다. 또한 이 대회는 역사상 유일하게 2개 이상의 나라에서 공동으로 개최된 FIFA 월드컵이기도 하다.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독일을 2 – 0으로 이기고 대회 역대 최다인 5번째 우승을 거두었다. 이 대회 우승으로 브라질은 FIFA 월드컵 우승팀 자격으로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자격을 얻었으며, 이도 또한 해당 대회의 5번째 출전 대회이다. 터키는 대한민국과의 3위 결정전 경기에서 3-2로 승리해 이 대회를 3위로 마감하였다. 에콰도르, 세네갈, 슬로베니아, 중국이 이 대회를 통해 월드컵에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냈으며, 튀르키예는 1954년 이후 48년만에 본선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대회는 충격적인 결과와 이변이 속출한 대회로 전 대회 우승팀 프랑스가 승점 1점을 얻는데 그치고 무득점으로 조별 리그에 탈락하였고, 또다른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 역시 조별 리그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또한 터키가 깜짝 3위를 기록하였고, 공동 개최국 대한민국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준결승전까지 진출하였다. 또다른 대이변으로는 세네갈이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16강전에서 스웨덴을 제압하고 8강에 오른 것으로 여기서 터키에게 아쉽게 제동이 걸렸다. 물론, 이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인 국가는 브라질로, 이 대회에서 5번째로 FIFA 월드컵을 우승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공식 슬로건은 '새 천년, 새 만남, 새 출발'(New Millenium, New Encounter, New Start)로 하였다.
개최지 선정.
1991년 6월에 일본에서 2002 월드컵 유치위원회를 발족하였고,1994년 한국은 월드컵 유치위원회를 조직했다,1995년 2월에 멕시코 사퇴.
대한민국과 일본이 1996년 5월 31일, FIFA에 의해 개최국으로 선정되었다. 본래 대한민국, 일본, 그리고 멕시코가 셋이서 따로 경합했었다. 그러나, 두 아시아 국가들이 최종 결정이 나기 전에 협력할 것을 합의하였고, 양국은 멕시코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개최국이 되었다. 이 대회는 복수의 국가에서 개최하는 최초의 FIFA 월드컵이다.
결정이 내려지던 시점까지 일본은 단 한번도 FIFA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일본은 개최국 선정 이후인 1998년에서야 본선에 처음으로 진출하였다.) FIFA 월드컵 개최국들 대회 유치 전까지 한번도 출전하지 못한 국가는 1934년의 이탈리아와 2022년의 카타르 뿐이다. (우루과이는 1930년 초대 FIFA 월드컵을 개최함에 따라 그 전 대회가 없었으며, 이들은 1928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었다.)
이례적인 개최국 선정은 대부분 시차가 거의 없는 국가들에서 주로 축구를 하던 유럽에는 화젯거리였다. 경기는 유럽 기준으로 아침 시간에 열렸고, 일부 학교와 기업들은 경기일에는 늦게 문을 열거나 근무 시간 초에 사내 응원을 했다.
지역 예선.
총 199개국이 2002년 FIFA 월드컵 본선행을 놓고 경합하였고, 1999년 12월 7일, 도쿄에서 예선 추첨식이 거행되었다. 전 대회 우승국 프랑스와 공동 개최국 대한민국과 일본은 자동 출전권을 획득함에 따라 예선전에서 빠졌다. 이 대회는 전 대회 우승팀(디펜딩 챔피언)이 자동 출전권을 얻은 마지막 FIFA 월드컵이다.
UEFA (유럽) 에 배당된 진출권 수는 14장이며, CAF (아프리카)에는 5장, CONMEBOL (남아메리카)에는 4장, AFC (아시아) 에 2장, 그리고 CONCACAF (북중미 및 카리브해) 에 3장이 배당되었다. 남은 두장은 AFC-UEFA, CONMEBOL-OFC (오세아니아)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통해 결정되었다. 4개국(중국, 에콰도르, 세네갈, 그리고 슬로베니아)이 본선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2018년 기준으로 이 대회는 터키, 중국, 아일랜드가 밟은 마지막 FIFA 월드컵 본선 무대이다.
터키는 1954년 이후 48년 만에 본선 무대에 등장하였고, 폴란드와 포르투갈은 1986년 이후 16년만이었다. 1998년 대회에서 준결승에 진출한 네덜란드는 본선진출에 실패하였으며, 대한민국은 비유럽, 비아메리카 최초로 5대회 연속 본선 진출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FIFA 월드컵을 우승한 전적이 있는 7개국(우루과이, 이탈리아, 독일, 브라질,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그리고 프랑스) 모두가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고, 이들이 모두 출전한 대회는 이 대회가 1986년(당시 프랑스는 아직 대회 우승을 거둔 적이 없었다.) 대회 이후로는 최초이다.
본선 진출국 목록.
다음은 본선에 진출한 32개국과 각국의 2002년 5월 15일 기준의 FIFA 랭킹이다.
시드 배정.
2002년 대회에서 시드를 받을 팀이 2001년 11월 28일에 결정되었다. 시드를 받은 국가는 A포트에 들어갔다. B포트에는 시드 배정을 받지 못한 11개의 유럽 국가들이 들어갔다. C포트에는 시드 배정을 못 받은 CONMEBOL과 AFC 소속 국가들이 편성되었다. D포트는 시드 배정을 받지 못한 CONCACAF와 CAF 소속 국가들이 들어갔다. 이 대회는 A조 톱시드로 전 대회 우승팀을 배정한 마지막 FIFA 월드컵 대회이다. 이 자리는 2006년 대회부터 개최국에게 고정적으로 배정되었다. 추첨 방식은 다음과 같다.
2001년 12월 1일, 부산의 벡스코에서 조추첨식이 열렸고, 각국의 일정이 최종 결정되었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잉글랜드, 그리고 스웨덴이 들어간 F조가 죽음의 조라는 평가가 나왔다.
순위 규정.
복수의 국가가 승점에서 동률을 이룰 경우 다음 순서에 따라 조별 리그 순위가 결정되었다:
기존의 대회 본선 규정에서, 순위 규정은 다른 형식으로 결정되었는데, 상대 전적이 골득실차보다 우선이었다. 규정은 대회를 앞두고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으나, 기존의 규정 또한 FIFA와 UEFA의 웹사이트 등에 확인할 수 있어서, 올바른 규정을 찾는데에 있어서 혼선을 빚었다.
대회 요약.
조별 리그.
A조는 전 대회 우승팀 프랑스가 세네갈, 우루과이, 그리고 덴마크와 경합하였다. 이번 FIFA 월드컵은 부상당한 지네딘 지단을 제외시킨 프랑스가 대회 새내기인 세네갈을 상대로 한 대한민국 서울에서의 개막전에 세네갈한테 0 – 1로 패배하였다. 다음날 울산에서 열린 덴마크와 우루과이의 경기에서는 욘 달 토마손이 2골을 넣어 자국에 2 – 1 첫승을 안겨다 주었다. A조 두번째 경기에서 프랑스는 부산에서 지긋지긋한 적수 우루과이와 대적하였고, 티에리 앙리를 이 경기에서 퇴장으로 잃은 불운을 겪은 끝에 0 – 0으로 비겼으며, 대구에서는 덴마크와 세네갈이 1골씩 주고받아 비겼다. 덴마크는 이후에 인천에서 프랑스를 2 – 0으로 격파하고 전 대회 우승팀을 일찍 돌려보냈다. 전 대회 우승팀은 무득점으로 탈락하면서 FIFA 월드컵 전대회 우승팀들 중 최악의 성적을 냈다. (우루과이는 1934년에 불참을 선언했다.) 수원에서 열린 다른 A조 최종전 경기에서는 세네갈이 우루과이를 상대로 3 – 0으로 앞서나가다가 내리 3골을 실점해 3-3으로 추격당하기까지 했지만 남아메리카인들이 전세를 역전시키고 대회 생존에 필요한 4번째 득점에 실패하면서 조2위를 사수하여 16강에 올라갔다. A조의 1위를 차지한 국가는 덴마크로 승점 7점을 획득하였고, 이어 세네갈이 5점으로 2위를 차지하였다. 2점밖에 획득하지 못한 우루과이는 전 대회 우승팀이자 승점 1점으로 조 최하위를 차지한 프랑스와 함께 탈락하였다.
B조의 스페인은 경쟁국 슬로베니아, 파라과이 (각각 광주와 전주에서)를 3 – 1로, 대전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3 – 2로 이기고 획득할 수 있는 최고의 승점을 획득한 유이한 국가가 되었다. 파라과이는 서귀포에서 열린 처녀출전국 슬로베니아를 막판 결승골에 힘입어 3 – 1로 잡고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골득실차에서 동률을 만들었다. (양팀은 4점으로 승점 동률을 이루었고, 부산에서 열린 서로간의 1차전 경기에서 2 – 2로 비겼다.) 그 결과, 6골을 득점해 더 많은 골을 득점한 파라과이가, 5골을 넣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제치고 16강에 극적으로 합류하였다.
C조의 브라질도 옆조의 스페인처럼 3전전승을 거두었는데, 이들은 울산에서 터키를 2 – 1로, 중국을 4 – 0으로, 그리고 코스타리카를 수원에서 5 – 2로 제압했다. 브라질과 함께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국가는 터키로, 코스타리카와 승점 4점으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양팀은 인천에서 1-1로 비겼다.) 골득실차에서 우위를 점했다. 보라 밀루티노비치 (5번의 FIFA 월드컵에서 모두 다른 국가를 지도하였다.) 가 이끄는 중국은 승점을 획득하기는 커녕 단 1골도 득점하지 못하였다.
공동 개최국 대한민국은 D조에서 폴란드, 미국, 그리고 포르투갈과 한조에 들어갔고, 이들 4팀은 서로 혈전을 벌였다. 대한민국은 폴란드와 부산에서 첫 경기를 치렀으며, 대한민국은 황선홍과 유상철의 골로 2 – 0 완승으로 첫 FIFA 월드컵 승리를 쟁취하였다. 미국은 그 다음날 수원에서 포르투갈을 3 – 2로 손쉽게 제압하는 경이로운 결과를 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대구에서 결전을 펼쳤고, 양팀 골키퍼인 이운재와 브래드 프리델이 모두 훌륭한 활약을 펼치며 1 – 1로 비겨 승점을 나누어 가져갔다. 조별 리그 최종전은 인천 (포르투갈-대한민국) 과 대전 (폴란드-미국)에서 동시에 열렸고, 대한민국은 70분에 터진 박지성의 골에 힘입어 포르투갈을 귀국시켰고, 폴란드는 미국과의 경기에서 3 – 1로 완승을 거두어 유종의 미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승점 7점을 적립해 사상 처음으로 조 1위까지 차지하였고, 미국은 승점 4점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승점을 3점씩 가져간 포르투갈과 폴란드는 각각 조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E조에 속한 독일은 사우디아라비아, 아일랜드, 그리고 카메룬을 차례로 상대하였다. 아일랜드와 카메룬은 니가타에서 열린 E조 첫경기에서 1 – 1로 서로 비겼고, 독일은 삿포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진영을 8 – 0으로 해체하였다. 이바라키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독일은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19분 선제골에 힘입어 1 – 0으로 앞서나갔으나, 후반 인저리타임 2분에 집중력 부족으로 로비 킨에게 동점골을 실점해 비겼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이타마에서 카메룬을 상대로 후반에 사뮈엘 에토에게 실점하고 0 – 1로 패해 일찌감치 대회에서 탈락하였다. E조 최종전에서 독일은 시즈오카에서 마르코 보데와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연속골에 힘입어 2 – 0으로 승리해 카메룬을 돌려보내고, 아일랜드는 요코하마에서 로비 킨, 게리 브린, 그리고 데이미언 더프의 연속골로 사우디아라비아를 3 – 0으로 제압하였다. 독일은 7점으로 조 1위를 차지하였고, 아일랜드가 승점 5점으로 그 뒤를 이었으며, 카메룬은 승점 4점으로 탈락하였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승점은 고사하고 무득점 12실점으로 대회를 꼴찌로 마무리했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잉글랜드, 그리고 스웨덴이 포진한 F조는 "죽음의 조"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아르헨티나는 이바라키에서 열린 조별 리그 1차전에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후반전에 터뜨린 결승골로 나이지리아를 1 – 0으로 이겼고, 사이타마에서는 잉글랜드와 스웨덴이 솔 캠벨과 니클라스 알렉산데르손이 나란이 골을 터뜨려 1 – 1로 비겼다. 스웨덴과 나이지리아는 이어지는 고베에서의 2차전에 서로 맞붙었고, 줄리어스 아가호와에게 선제골을 얻어 맞았으나, 헨릭 라르손이 2골을 터뜨려 나이지리아를 2 – 1로 역전시켜 탈락시켰다. 한편 삿포로에서는 잉글랜드가 데이비드 베컴의 페널티킥으로 아르헨티나를 1 – 0으로 꺾었다. F조 최종전에서 스웨덴은 아르헨티나와 미야기에서 1 – 1로 비겼고, 잉글랜드와 나이지리아는 오사카에서 득점 없이 비겼다. 스웨덴과 잉글랜드는 각각 승점 5점으로 나란히 1위, 2위를 차지해 F조에서 생존하였고, 승점 4점에 그친 아르헨티나는 그리하지 못하였으며, 나이지리아는 승점 1점으로 조 최하위였다.
이탈리아, 에콰도르, 크로아티아, 그리고 멕시코는 G조에서 서로를 맞닥뜨렸다. 니가타에서 G조 첫 경기가 벌어졌는데, 멕시코가 콰우테모크 블랑코의 페널티킥에 힘입어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1 – 0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날 밤 삿포로에서는 이탈리아가 처녀출전국 에콰도르에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2골로 2 – 0 완승을 거두었다. 이후, 이바라키에서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가 한판 승부를 벌였고, 크로아티아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2 – 1 역전승을 거두었다. 다음날 미야기에서는 멕시코가 에콰도르에 결정적인 2 – 1 승리를 거두었다. G조 최종전에서 멕시코와 이탈리아가 오이타에서 1 – 1로 비겼고, 에콰도르는 요코하마에서 크로아티아를 1 – 0으로 꺾어 FIFA 월드컵 첫 승을 맛보았다. 멕시코는 승점 7점으로 G조를 선두로 끝냈고, 이탈리아는 4점으로 간신히 살아남았다. 승점 3점을 획득한 크로아티아와 에콰도르는 각각 조 3위와 4위로 탈락하였다.
H조에는 또다른 공동개최국 일본이 벨기에, 러시아, 그리고 튀니지가 경합하였다. 일본은 사이타마에서 벨기에를 상대로 2 – 2로 비겨 첫 승점을 수확하였고, 러시아는 고베에서 튀니지를 2 – 0으로 제압하였다. 이후 일본은 요코하마에서 이나모토 준이치의 후반전 결승골로 러시아에 1 – 0으로 이겨 첫 FIFA 월드컵 승리를 거두었고, 벨기에는 오이타에서 튀니지와 1 – 1로 비겨 발목이 잡혔다. H조 최종전에서 일본은 오사카에서 튀니지에 2 – 0의 무난한 승리를 거두었고, 벨기에는 시즈오카에서 러시아를 3-2로 잡고 극적으로 생존하였다. 일본은 승점 7점으로 조 1위를 차지하였고, 벨기에는 5점을 확보해 다음 라운드 진출에 성공하였다. 러시아는 승점 3점, 튀니지는 1점으로 탈락하였다.
16강전과 8강전.
16강전은 서귀포에서 독일이 올리버 뇌빌의 결승골로 파라과이에 1 – 0 신승을 거두는 것으로 막이 올랐다. 잉글랜드는 니가타에서 덴마크를 3 – 0으로 완파하였는데, 3골 모두 전반전에 터졌다. 스웨덴과 세네갈은 오이타에서 접전을 벌였고, 정규시간을 1 – 1로 마치고 앙리 카마라가 연장전에 골든골로 경기를 끝내 세네갈의 2 – 1 승리를 견인하였다. 수원에서는 스페인과 아일랜드가 경쟁하였고, 스페인은 경기시간 대부분을 1 – 0로 앞서다가 로비 킨에게 페널티킥을 얻어맞아 1 – 1로 정규시간을 끝내 연장전까지 뛰었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서 3 – 2로 이겼다. 미국은 브라이언 맥브라이드와 랜던 도너번의 릴레이골에 힘입어 CONCACAF의 숙적 멕시코를 전주에서 2 – 0으로 완파하였다. 브라질은 히바우두의 중거리 발리슛과 호나우두의 역습 마무리로 고베에서 벨기에를 2 – 0으로 격파하였다. 터키는 미야기에서 위밋 다발라의 12분 결승골로 1 – 0으로 이겨 공동개최국 일본의 행진을 멈추었다. 다른 공동개최국 대한민국은 대전에서 이탈리아의 비에리에게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후반 43분 설기현의 극적인 왼발 동점골로 연장전까지 승부를 펼쳤고 117분에 안정환의 골든골로 경기를 끝냈다. 골닷컴은 이 경기를 대한민국이 수많은 오심의 덕을 보아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이 8강행 막차에 오르면서 FIFA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대륙의 국가들이 같은 대회의 8강에 이름을 동시에 올렸다.
8강에서 브라질은 잉글랜드와 시즈오카에서 경합하였고, 호나우지뉴가 데이비드 시먼의 머리를 넘기는 프리킥을 후반전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성공시켜 경기를 2 – 1로 뒤집었다. 독일은 울산에서 39분에 터진 미하엘 발라크의 결승골로 미국을 1 – 0으로 침몰시켰고, 49분에 토르스텐 프링스가 골라인에서 공을 손으로 친 것에 대해 미국이 페널티킥을 요청하여 논란을 야기했으나, 주심은 이를 선언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광주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또다른 논란의 경기를 펼쳤고, 120분동안 득점 없이 비겼고,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의 4번째 키커 호아킨의 실축으로 5 – 3으로 이겼다. 스페인은 두 차례 득점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주심이 먼저 호루라기를 불었기 때문에 취소되었다. 개최국은 AFC 소속 국가로는 처음으로 FIFA 월드컵 준결승전에 오르면서 종전의 1966년 대회에서 8강에 올랐던 북한을 제쳤다. 나머지 8강전에서는 터키가 오사카에서 세네갈을 상대로 93분에 일한 만스즈의 골든골로 승리를 쟁취했다.
준결승전, 3위 결정전, 결승전.
준결승전은 두 경기 모두 1 – 0의 접전이었다. 서울에서 열린 첫 준결승전에서는 독일이 미하엘 발락의 결승골로 대한민국에 승리하였다. 그러나, 발락은 득점 4분전에 옐로 카드를 받는 바람에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이타마에서 열린 그 다음날 경기에서는 호나우두가 후반전 시작과 함께 자신의 대회 6호골을 득점하였고, C조에서 싸우고 재회한 터키를 또다시 꺾었다.
대구에서 벌어진 3위 결정전에서 터키는 하칸 쉬퀴르가 상대의 킥오프를 가로채 10.8초만에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이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역대 최단시간 득점이었다. 최종적으로 터키는 대한민국을 3 – 2로 이기고 대회 3위를 차지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호나우두의 두 골을 앞세운 브라질이 독일을 이기고 FIFA 월드컵 정상을 탈환했다. 호나우두는 후반전에서 12분 간격으로 두골을 뽑아내었고, 경기 후, 8골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브라질은 통산 5번째 FIFA 월드컵 우승으로, FIFA 월드컵 역대 최다 우승국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브라질은 1986년의 아르헨티나 이래 토너먼트전에서 한 번도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고 우승한 국가가 되었으며, 1986년 대회 이후 (1982년에 승부차기가 도입되었으나 토너먼트전은 4경기에 불과했다.) 승부차기로 승부가 결정난 경기 수가 역대 최저 (2경기)였다. 브라질은 1970년 이래 FIFA 월드컵 본선에서 전승으로 우승한 국가가 되었고, FIFA 월드컵 우승국 역대 최고 골득실차 (+14)의 기록도 세웠다. 브라질의 주장 카푸는 3번의 FIFA 월드컵 결승전에 연속 출전하는 최초의 선수로 기록되었고, 자국의 대표로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입장권 판매 문제.
본래 한국에 배정된 입장권은 매진되었고, 조직위원회는 4월 말까지 해외로 배당된 입장권 판매를 완료하였다. 그러나, 개막전에 빈 좌석이 현저히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월드컵 입장권 판매국 (WCTB) 가 아직 팔리지 않은 입장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추후 밝혀졌다. FIFA가 이 입장권을 풀기로 하자 일본 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 미야기의 일본 vs 터키 경기를 중심으로 전화판매를 하였으나, 양쪽 모두 매진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고, 700석가량이 비었다.
개최 도시 및 경기장.
대한민국과 일본은 대회 개최를 위해 각각 10개의 경기장씩 마련하였고, 이들 대부분은 대회를 앞두고 신축된 경기장이었다. A조부터 D조까지의 경기는 대한민국에서, E조에서 H조까지의 경기는 일본에서 열렸다.
심판.
2002년 FIFA 월드컵에는 각각 36명의 주심과 부심이 배정되었다.
대회 기간동안 심판의 판정에 논란이 수반되었다. 이탈리아-대한민국 경기의 판정에 대한 불만이 400,000건 접수되었고, ESPN은 10대 FIFA 월드컵 논란에 이를 선정하였다. 스페인-대한민국 경기에서 스페인 측은 호각 소리 이후에 골망을 가른 것을 골이라 주장했고, 이반 엘게라는 "도둑"이라 비판했고, 스페인 언론도 이에 동조해 "꿈을 앗아간 도둑"이라 비판했으나, FIFA는 단순한 인간적 오류일 뿐이라며 판정을 지지했다. 실제로 이탈리아-대한민국 경기에서 이탈리아 선수들은 몸싸움에서 수 차례 팔꿈치를 이용하였고, 이 중 크리스티안 비에리 선수는 김태영의 안면을 팔꿈치로 가격해 코뼈 골절의 부상을 입혔으나,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대한민국-스페인 경기에서는 경기가 20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엔리케 로메로가 백태클로 김남일에게 부상을 입혔으나, 역시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선수 명단.
이 대회 본선에 참가하는 32개국은 모두 기존의 22명에서 증가한 23명을 엔트리에 등록하였다. 23명의 선수들 중 골키퍼는 3명이어야 했다.
조별 리그.
조별 리그는 A조에서 D조까지는 대한민국에서, E조부터 H조까지는 일본에서 치렀다.
다음 조별 리그 순위표에서 다음은 해당 의미를 포함한다:
A조.
전 대회 우승국 프랑스는 세네갈과 덴마크에 패배하고 무득점으로 A조에서 꼴등으로 탈락하였고, 프랑스를 이긴 두 팀은 두 차례 FIFA 월드컵을 우승한 전적이 있는 우루과이를 제치고 16강전이 열리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프랑스는 2020년까지도 유일하게 무득점으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B조.
스페인은 일찌감치 16강행을 확정짓고 조별 리그 3경기를 모두 이겼고, 슬로베니아는 2득점을 얻었으나 승점은 1점도 확보하지 못하고 탈락하였다. 넬손 쿠에바스의 슬로베니아전 멀티골은 파라과이로 하여금 남아공보다 더 많은 득점을 기록하게 하여 16강전에 진출할 수 있게 하였다.
한편, 남아공은 B조 최종전에서 슬로베니아가 파라과이에 비기거나 승리했을 경우, 스페인에 패배했더라도 16강에 오를 수 있었으나, 본인들은 스페인에 2 – 3으로 지고, 슬로베니아마저 파라과이에 1 – 3으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승점과 골득실에서 동률인 파라과이에 다득점에서 1점차로 밀려 아쉽게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C조.
브라질은 3경기를 모두 이기고 다음 라운드를 위해 일본으로 이동하였고, 그와 반대로 중국은 승점은 커녕 득점도 올리지 못하고 3전 3패(0득점 9실점)를 당하며 C조 꼴찌로 탈락하였다. 코스타리카는 허술한 수비로 인해 골득실차에서 밀려 탈락하였고, 그에 따라 터키가 조 2위를 차지하여 브라질과 함께 일본으로 이동하였다.
D조.
미국은 포르투갈을 3 – 2로 손쉽게 제압하는 이변을 연출한 후, 대한민국과 비기고, 폴란드에 1 – 3으로 완패하였으나,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데 필요한 승점을 충분히 적립하였다. 1차전에서 미국에 2 – 3으로 패했던 포르투갈은 2차전에서 폴란드를 4 – 0으로 이겼으나, 3차전에서 대한민국에 0 – 1로 지면서 탈락하였다. 폴란드 또한 미국과의 최종전에서 1승을 거두었으나, 그렇게 최종 조별 리그에서 포르투갈, 폴란드는 3위, 포르투갈은 4위로 조별리그를 마무리 하고 탈락 하였다.
E조.
사우디아라비아는 독일과의 1차전에서 0 – 8로 대패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2차전에서는 카메룬에 0 – 1 패배, 3차전에서 아일랜드에 0 – 3으로 지면서 3전전패 무득점으로 12실점을 기록해 E조 꼴찌 및 대회 최하위(32위)로 탈락하였다. 독일은 카메룬을 2 – 0으로 누르고 조 1위로 토너먼트 16강전에 진출하였다. 아일랜드의 로비 킨은 이 FIFA 월드컵 대회 내내 독일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한 유일한 선수였고, (다른 한명은 결승전에 조우한 브라질의 호나우두) 인저리 타임 동점골에 힘입어 아일랜드의 조 2위를 견인하였다.
F조.
우승후보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차기 우승후보로 꼽힌 아르헨티나 또한 스웨덴과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1 – 1로 비기며 조별 리그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이들은 2차전에서 잉글랜드에 0 – 1로 패배한 것으로 인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스웨덴은 잉글랜드와 승점&골득실에서 동률을 이뤘으나 득점에서 앞서며 F조 1위를 차지하였고, 나이지리아는 잉글랜드와의 최종전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탈락했다.
G조.
멕시코는 조별 리그 처음 두 경기를 모두 이기고 무난히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이탈리아는 에콰도르가 요코하마에서 크로아티아를 이겨준 덕에 그대로 16강에 합류했는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멕시코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동점골을 득점했다. 그에 따라 크로아티아와 이들을 상대로 첫승을 거둔 FIFA 월드컵 데뷔국 에콰도르가 남았고, 승점을 3점씩 적립하는데 그친 그들은 각각 조 3위, 4위를 차지하였다.
H조.
대한민국과 공동 개최국인 일본이 2승 1무로 조 1위를 차지했다. 벨기에 또한 러시아와의 최종전에서 멍군장군 경기 끝에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였으나, 러시아와 튀니지는 각각 승점을 3점, 1점씩밖에 얻지 못하는데 그쳐 탈락하였다.
결선 토너먼트.
결선 토너먼트에서 16강전, 8강전, 그리고 준결승전은 A조, C조, F조, 그리고 H조를 통과한 팀의 경우 일본에서 치렀고, B조, D조, E조, 그리고 G조를 통과한 팀들은 대한민국에서 치렀다. 3위 결정전은 대한민국의 대구에서, 결승전은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열렸다.
통계.
득점 선수.
호나우두는 8골을 득점하여 이 대회의 득점왕에 올랐다. 도합하여 109명의 선수들이 161골을 터뜨렸다
도움 기록.
미하엘 발라크가 4도움으로 최다 도움을 기록하였다.
개인 수상.
1 올리버 칸은 FIFA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골든 볼 수상 골키퍼이다.
최종 순위.
대회 종료 후, FIFA는 2002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참가한 팀들의 진출 라운드와 결과를 상대적으로 반영한 최종 순위표를 발표하였다.
매체.
스폰서십.
2002년 FIFA 월드컵의 공식 스폰서는 두 분류로 나뉘었다: FIFA 월드컵 스폰서와 대한민국 / 일본 국가대표팀 스폰서.
군악대 및 성악가·가수 행사 참여.
한국팀이 출전하는 경기에서는 상대국 국가 가수와 한국의 성악가가 초청되어 현지 군부대 군악대의 취주악 반주에 맞춰서 해당국 국가와 애국가를 독창했다. 초청된 해외 가수는 터키전만 남성 가수가, 나머지는 여성 가수들이 초청되었는데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세계적인 가수들이 상대국 국가의 가수로 초청되었으며, 미국전은 한·미 친선의 의미로 한국인 소프라노 가수가 초청되어 미국 국가를 독창했다.
문화 행사.
2002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FIFA가 주최한 공식 문화 행사는 "바람의 시" 서울월드컵경기장 인근의 난지천 공원에서 열렸으며, "바람의 시" 행사는 5월 29일부터 6월 25일까지 FIFA 월드컵의 성공을 기원하고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깃발미술축제에서,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참가해 손수 깃발을 그렸고, 화합을 추구하고 해외 손님들을 반기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2002년 깃발미술축제 조직위원회) |
3766 | 33019890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66 | 튜링상 | 튜링상(, 튜링 어워드)은 ACM(계산기 학회)에서 전산학(컴퓨터과학) 분야에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매년 시상하는 상이다. "전산학(컴퓨터과학)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린다. 영국의 수학자, 컴퓨터과학자이며 현대 전산학(컴퓨터과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앨런 튜링의 이름을 땄다. 구글이 매년 총 100만 달러의 상금을 후원하고 있다. |
3768 | 32962457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68 | 앨런 튜링 | 앨런 매시슨 튜링(, , , 1912년 6월 23일 ~ 1954년 6월 7일)은 잉글랜드의 수학자, 암호학자, 논리학자, 컴퓨터과학자이며 컴퓨터 과학의 선구적 인물이다. 알고리즘과 계산 개념을 튜링 기계라는 추상 모델을 통해 형식화함으로써 컴퓨터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튜링 테스트의 고안으로도 유명하다. ACM에서 컴퓨터 과학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게 매년 시상하는 튜링상은 그의 이름을 따 제정한 것이다. 이론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했기 때문에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의 아버지" 즉 "컴퓨터 과학의 할아버지"라고 불린다.
1945년에 그가 고안한 튜링 머신은 초보적 형태의 컴퓨터로, 복잡한 계산과 논리 문제를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튜링은 1952년에 당시에는 범죄로 취급되던 동성애 혐의로 영국 경찰에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뇌에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를 받아야 했던 그는, 2년 뒤인 1954년에 사이안화 칼륨에 중독되어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자살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사후 59년만인 2013년 12월 24일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크리스 그레일링 법무부 장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튜링의 동성애 죄를 사면하였다. 이어서 무죄 판결을 받고 사면되었다.
활동.
대학 이전.
튜링은 13살 때 처음으로 수학적 연구결과를 도출했다. 그것은 역탄젠트 함수의 무한한 연속을 어림잡을 수 있는 계산 형식으로, 크게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이후 튜링의 연구의 전체적인 방향을 보여준다. 즉 그가 평생동안 연구했던 계산할 수 있는 실수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1931~1936).
튜링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으며, 특히 막스 보른의 양자역학 강의와 리하르트 쿠란트의 미분 방정식 강의를 들으며 수치 해석을 비롯해 확률론, 통계학, 정수론, 군론 등에 관심을 가졌다.
확률론.
1933년 튜링은 물리학자 에딩턴의 과학적 방법론을 수강하고 정규분포곡선(courbe normale)이라는 고전적 개념에 관심을 갖게 된다. 튜링은 자연 현상에서 규칙성 연구에서의 중심극한정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핀란드의 수학자 얄 발데마르 린데베리(Jarl Waldemar Lindeberg)가 1922년에 먼저 증명한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를 증명했다. 이 증명으로 그는 장학금을 받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특별연구원이 되었다.
수 이론.
리만 가설 등 소수의 개수에 대한 문제를 접한 튜링은 수치상으로 제타 함수를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튜링은 제타함수 계산에 쓸 기계를 만들기 위해 장학금을 받아냈으나, 전쟁으로 인해 무산되었다가 전쟁 이후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다시 시도하게 된다. 이 기계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으나, 튜링은 1953년에 제타 함수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다.
군론.
군론은 튜링이 평생 연구해온 분야인 수치상의 문제나 계산의 유효성과 거리가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나, 가능한 모든 값의 치환을 통해 함수와 함수 풀이 영역 간의 구조적 상관성이라는 방법으로 튜링의 인생에 세 번의 영향을 주게 된다. 우선 1936년 튜링이 계산할 수 있는 수와 계산할 수 없는 수 사이의 경계선을 연구할 때 구조적인 계산의 유효성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다음으로 함수이론의 연장선의 문제였고 셋째는 군론을 간접적으로 수치 적용해 양자역학과 암호학에 이용했다. 양자역학에서 군론은 상태 개념에 연관되어 있고, 암호학에서는 치환 개념과 치환 불변성의 개념에 관련되어 있다.
프린스턴 대학교(1936~1939).
1936년 튜링은 결정가능성 문제에 대한 부정적 증명을 해낸 후 프린스턴 대학교로 떠나게 된다. 이 때 튜링은 수리논리학의 알론조 처치와 군론의 존 폰 노이만을 만나 새로운 학문의 장을 열게 된다. 3년의 학업 이후 폰 노이만이 조교로 남을 것을 권유했으나 정중히 거절한 튜링은 케임브리지로 다시 돌아왔다.
수리논리학.
튜링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만난 처치와 함께 수리논리학의 연구를 계속하게 된다. 그는 해결 불가능성의 정도의 산술적 서열을 구축함으로써 해결 불가능성의 개념이 고려된 형식 체계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인식 변화를 일구어냈다.
제2차 세계 대전(1940~1945).
암호학과 통계학 분야에서 튜링이 전쟁동안 진척시켰던 연구 작업은 1996년 미국 정부에 의해 폐기되는 등 공개에 어려움을 겪어, 전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튜링이 없었다면, 영국은 전쟁에서 분명 패했을 것이다”라는 동료 D.미치의 인터뷰 증언 등을 고려할 때 그의 업적을 짐작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바처럼 튜링은 당시 에니그마라 칭해졌던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냈으며 당시 컴퓨터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튜링은 수리논리학에서 정의된 계산, 조작 실행에 영향을 준 추상적 기계(알고리즘), 실행화시킨 물질적 기계를 토대로 이후 정보과학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암호학.
암호학은 수학, 논리학, 물리학에 연관된 분야로 튜링은 전쟁 선포 이후 암호학 부서(GCCS)에 들어갔다. 열 명 남짓의 연구팀의 수장이 된 튜링은 독일 베를린의 잠수정 등에서 보내온 메시지를 코드화하여 해독하는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튜링은 암호학의 새로운 기틀을 다졌으며 통계학과 기계화할 수 있는 논리적 방법을 통해 모순을 제거해 나갔다.
정보 개념.
정보 개념, 혹은 데이터의 중요도는 원래 통계학적 속성인데, 선험적(a priori)가설로부터 경험적(a posteriori)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전쟁 후의 튜링(1945~1954).
앨런 튜링은 1945년 10월 1일 테딩턴에 위치한 국립물리연구소(National Physical Laboratory, NPL)에서 영국의 첫 번째 컴퓨터라 할 수 있는 전자 계산기 제작을 위한 수학 부서 창설을 추진했다. 그리고 맨체스터 대학교 등에서 컴퓨터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이 시기의 튜링은 전적으로 형태 발생과 수학적 모델화에 주력했다.
주요 연구 내용.
튜링 기계.
튜링 기계는 튜링이 알고리즘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가상의 기계이다. 이 기계는 한정된 종류의 기호 중 하나를 기록할 수 있는 칸들이 무한히 이어진 띠와 각 칸의 정보를 읽고 수정하는 기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튜링 머신의 상태와 칸에 기록된 기호에 따라 지정된 절차를 수행한다. 튜링 머신이 수행하는 절차는 1. 현재 기계가 위치하는 칸의 기호를 수정 2. 띠의 위치 이동 3. 튜링 머신의 상태 변경 이 있다.
에니그마 해독.
에니그마는 암호 작성과 해독을 돕는 기계로, 1918년 아르투스 슈르비우스에 의해 처음 고안됨.이 기계는 제 2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군이 군사 관련 정보를 암호화하는 데 쓰임.작동 원리는 다중치환암호를 개선한 것임.에니그마는 기계적으로 다중치환 암호를 구현하고, 이에 스크램블러를 추가해 보안성을 강화함. 그러나 튜링은 에니그마가 암호화와 복호화 둘 다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암호문의 스크램블러에 의한 효과를 없앴고, 자주 쓰이는 평문의 목록인 크립을 이용해서 이론적으로 에니그마를 해독할 수 있었음.
후세에 끼친 영향.
튜링은 수학, 암호학, 생물학 등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했지만, 특히 전산학(컴퓨터 과학) 분야에 끼친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전산학(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가 구상한 튜링 기계의 무한히 긴 띠는 컴퓨터의 메모리에, 기호를 읽는 기계는 컴퓨터의 중앙 처리 장치(CPU)에 비유할 수 있다. 또한 튜링 기계의 한 종류인 범용 튜링 기계는 프로그램을 내장해서 작동하는 현대의 컴퓨터를 많이 닮아 있다. 이외에도 콜로서스 개발에 간접적인 기여를 했다.
계산기 학회(ACM)에서는 튜링의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1966년부터 매년 전산학(컴퓨터 과학)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한테 주는 튜링상을 제정하였다. 현재 튜링상은 전산학(컴퓨터 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인공 지능에게는 뢰브너 상이 수여된다.
애플 컴퓨터의 로고인 "한 입 베어먹은 사과"는 튜링을 연상시키지만, 애플 컴퓨터가 로고를 만들 때 튜링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 애플 컴퓨터에서는 로고의 모델이 뉴턴의 사과라고 주장한다.(애플 컴퓨터를 창립한 스티브 잡스도 뉴턴의 사과를 모델로 애플 컴퓨터를 창립했다고 한다.) |
3771 | 669518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71 | 적혈구 | 적혈구(赤血球, ) 또는 붉은피톨()은 가운데가 패인 원반 모양을 한 세포이다. 혈액 속에 들어 있으며, 이들이 혈구에 고루 분포하고 있어 혈액이 붉게 보인다.
적혈구는 허파에서 몸의 모든 세포들로 산소 운반을 위해 특화된 도넛 모양의 세포로, 고도의 산소 보유능력을 가진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을 개당 약 2억 8천만 개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개의 적혈구는 약 11억 2천만개의 산소 분자를 운반할 수 있다. 이 헤모글로빈에는 철을 함유하고 있어 붉은 색을 띠며, 적혈구가 붉은 색을 띠는 원인이 된다. 또한 헤모글로빈은 적혈구 건조 중량의 약 95%를 차지한다. 그리고 적혈구는 골수에서 생성되며 골수에서 처음 생성될 당시 미성숙 상태인 적혈구들은 핵을 가지고 있으나, 성숙 과정에서 세포핵이 퇴화하여 없어진다.
적혈구는 혈액의 헤모글로빈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정상 적혈구의 수명은 평균 120일이다. 혈액 1 mm³ 에 남자는 약 500만 개, 여자는 450만 개 가량의 적혈구를 가지고 있다. 적혈구는 직경이 7.2~8.4μm 정도이며, 두께는 가장 두꺼운 부분이 2~3μm, 중심 부위는 1μm 정도이다. 포유류에서는 적혈구의 양면이 오목한 쌍요면체형으로 되어 있어 어느정도 휘어질 수 있는데, 이러한 성질 때문에 좁은 모세혈관을 비교적 쉽게 통과할 수 있다. 또한 적혈구는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혈액형은 적혈구 세포막 외벽에 붙은 탄수화물 구조물이 항원으로 작용하여 결정된다.
적혈구를 발견한 최초의 사람은 네덜란드의 생물학자 얀 슈밤메르담(Swammerdam, J.)으로, 그는 1658년에 초기 현미경으로 개구리 피를 연구하였다.
적혈구라는 이름인 "erythrocyte"는 그리스어에서 "빨강"을 뜻하는 "erythros"와 "빈 용기"를 뜻하는 "kytos"가 변한 "-cyte"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형태.
적혈구에는 핵이 없기 때문에 세포 중앙이 움푹 파여 있는 형태, 즉 중심부가 양쪽으로 오목한 도넛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할 경우 적혈구 직경은 평균 7~8μm, 두께는 평균 2.2μm 정도 되는데 중앙 함몰 부분은 0.46~1.16μ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적혈구의 형태는 공 모양의 적혈구보다 혈구 표면적이 넓어 가스교환의 효율을 높여주고, 삼투압에 대한 변화나 외부 충격에 저항력을 가지게 하고, 적혈구 막에 유연성을 가지게 해 적혈구 직경보다 좁은 모세혈관(모세혈관의 직경은 약 4μm에 불과하다)을 쉽게 통과할 수 있게 한다. 적혈구 내부는 대부분 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헤모글로빈(혈색소)이 약 1/3 정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 소량의 당, 효소, 단백질, 전해질, 비타민 등을 함유하고 있다.
작동 원리.
적혈구에서 대부분의 산소를 운반하는 물질은 철이온을 가진 헤모글로빈이다. 산소에 대한 헤모글로빈의 친화도는 혈중 수소 이온의 농도와 2,3-비스포스포글리세르산(2,3-BPG)의 영향을 받는다.
혈중 수소 이온의 농도가 높을수록(즉, pH가 낮아질수록) 산소에 대한 헤모글로빈의 친화도는 낮아진다. 이산화탄소는 체액에 용해되면 물과 반응하여 중탄산이 되면서 체액을 산성으로 만드는데, 생체 조직은 산소에서 에너지를 얻고 결과물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므로, 생체 조직에서는 적혈구가 허파에서 얻은 산소를 쉽게 내놓게 된다.
2,3-BPG 역시 산소에 대한 헤모글로빈의 친화도를 떨어뜨린다. 순수한 헤모글로빈은 산소에 대한 친화도가 매우 높다. 실제로, 순수하게 분리해 낸 헤모글로빈은 오직 8%만의 산소만을 해리시킨다. 이것은 일반적인 생체 환경에서 77%의 산소를 해리시키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혈중에 존재하는 2,3-BPG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한편, 혈액 내 적혈구의 수가 감소하거나 적혈구 내 헤모글로빈의 농도가 낮아지게 되면 혈액의 산소 운반능이 저하되어 빈혈이 발생한다. |
3772 | 41477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72 | 혈액 | 혈액(血液) 또는 피는 몸 안의 세포에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고 세포의 신진대사에 의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회수하여 운반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체액이다. 보통은 피라고 부른다. 혈액은 결합 조직의 한 종류로 액체 성분인 혈장과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과 같은 각종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경우 혈액 속의 세포 용적은 여성의 경우 약 38%, 남성의 경우 약 46% 정도이다
역할.
혈액이 하는 역할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조성.
동물의 혈액은 혈장과 혈구로 구성된다. 척추동물의 경우 혈구는 혈액의 약 45%, 혈장은 혈액의 약 55% 정도를 차지한다. 혈장의 91%는 물이다. 다음 표는 사람의 혈액 조성이다.
혈구에는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이 있으나, 무척추동물에서는 일반적으로 백혈구만 볼 수 있다. 적혈구는 호흡 색소(혈색소)인 헤모글로빈을 포함하고 있는 혈구로서, 낙타·라마를 제외한 일반적인 포유류의 적혈구는 한가운데가 들어간 원반 모양이며 핵이 없다. 이에 비하여, 낙타·라마 류의 동물의 적혈구는 타원형이고, 한가운데에 핵이 있다. 척추동물의 혈색소는 어느 것이나 적혈구 속에 헤모글로빈으로 함유되어 있으나, 무척추동물의 혈색소는 주로 혈장에 들어 있다. 백혈구는 혈색소를 갖지 않는 혈액 속의 세포를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혈액을 가진 모든 동물에서 볼 수 있다. 혈소판은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부정형으로서, 핵은 없고 혈액 응고 작용에 관계한다. 이러한 혈구, 특히 적혈구를 만드는 기관을 조혈 기관이라고 한다. 양서류 가운데 무미류와 파충류·조류 및 포유류에서는 골수가 대표적인 조혈 기관이다. 양서류 가운데 유미류에서는 지라와 몸 속에 흩어져 있는 특정한 종류의 조직이 조혈 기관의 일을 맡아 하고 있다. 한편, 조류나 포유류에서는 발생 단계에 따라 조혈 기관이 변한다. 즉, 배(胚)의 시기에는 간, 배의 후기에는 지라나 골수에서 혈액이 생성된다. 한편, 오래 된 혈구는 주로 지라나 간 및 골수에서 파괴된다. 백혈구는 배의 시기에는 간·지라 및 골수에서 만들어져 지라에서 파괴된다.
혈장 단백질.
혈장의 약 91%는 물이고 혈장 단백질은 혈장 가운데 약 7%를 차지한다. 일부 항체와 단백질 형태의 호르몬을 제외한 대부분의 혈장 단백질은 간에서 생성된다. 혈장 단백질은 수소 이온을 흡수하거나 배출할 수 있어 혈액의 pH를 7.4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글로불린은 알파, 베타, 감마의 세 종류가 있으며 이 가운데 알파와 베타는 간에서 합성되고 감마글로불린은 림프계통에서 합성된다. 림프계통에서 합성되는 감마글루블린은 면역 항체로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혈장 단백질은 알부민, 글로불린, 피브리노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약 80여 종에 이른다. 알부민은 가용성 단백질 가운데 황산암모늄으로는 침전되지 않는 단순 단백질을 총칭하는 것이고, 글로불린은 물에 녹지 않으며 약한 염기성또는 중성 염류 용액에 녹는 단순 단백질이다. 한편, 피브리노겐은 수용성 단백질로 혈액 응고에 관여하여 혈소판의 침전 속도와 혈액의 점성에 영향을 미친다.
혈장 단백질은 거대 유기 분자와 결합하여 운반 작용을 하는데, 알부민은 헤모글로빈의 분해 산물인 빌리루빈을 운반하고, 글로불린을 포함하고 있는 지단백질은 콜레스테롤을 운반한다.
혈구.
혈구에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있다. 적혈구는 혈색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운반한다. 적혈구는 척추동물의 경우 낙타와 같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가운데가 움푹한 원반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크기는 지름 약 7.5µm 두께 약 1.5µm이다. 적혈구에 있는 혈색소는 철분을 함유하고 있는 포르피린과 구상 단백질인 글로빈의 복합체이다. 혈액은 혈색소 덕분에 동일한 양의 물보다 약 60배 많은 산소를 수용할 수 있다.
백혈구는 적혈구와 달리 자체적으로 세포핵을 지니고 있으며 독자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 염색하였을 때 세포내에 알갱이가 염색되는 과립성 백혈구와 알갱이가 염색되지 않는 무과립성 백혈구로 구분된다. 과립성 백혈구로는 염색 특징에 따라 호산성 백혈구, 호염기성 백혈구, 호중성 백혈구가 있고, 무과립성 백혈구로는 림프구와 단백구가 있다. 백혈구는 골수에 있는 공통 조상 세포인 조혈모세포에서 증식된 뒤 혈액 속으로 유입된다.
혈소판은 골수의 거핵 세포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부정형의 조직으로 크기는 약 3-4µm이다. 주된 역할은 손상된 혈관에서 응고 작용을 일으켜 혈액의 손실을 막고 혈관의 재생을 돕는 것이다.
순환계통.
동물의 혈관계는 개방 혈관계와 폐쇄 혈관계로 나뉜다.
개방 혈관계.
절지동물인 새우의 경우, 개방 혈관계에서 산소가 포함된 혈액은 심장으로부터 혈관을 통해 몸의 중요한 부분까지 운반되는데, 혈관은 그다지 길지 않고 단순하다. 더구나 모세 혈관이 없으므로, 혈액은 혈관의 말단으로부터 직접 조직 속으로 흘러들어가, 세포 사이에 있는 체강액(체액)과 섞이게 된다. 이렇게 하여 조직 세포에 산소를 공급한 혈액은, 정맥에 해당되는 단순한 혈관에 모인 후 아가미를 거치면서 산소를 많이 함유하여 심장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러한 순환계를 개방 혈관계라고 하며, 무척추동물에서 널리 볼 수 있다.
폐쇄 혈관계.
환형동물, 원색동물 및 척추동물의 경우, 심장에서 나간 혈액은 허파나 아가미에서 가스 교환이 이루어지고, 대동맥을 통하여 몸의 세부에까지 산소를 운반하는데, 동맥과 정맥은 모세 혈관에 의해 연결되어 있어서, 개방 혈관계와는 달리 혈액이 조직 속으로 직접 흘러드는 일이 없다. 가스 교환은 모세 혈관의 얇은 막을 통하여 혈액과 조직 세포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또, 수분이나 영양분·노폐물 등도 모세 혈관의 벽을 통하여 조직 세포에 공급되거나 혈액 속으로 들어간다. 모세 혈관은 마침내 정맥으로 이어져, 혈액은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 이와 같은 순환계를 폐쇄 혈관계라고 한다.
혈색소.
혈액에는 여러 가지 물질이 녹아 있어서 무색인 경우는 드물다. 척추동물의 혈액이 붉은색을 띠는 것은 주로 적혈구 속에 포함되어 있는 헤모글로빈 때문이다. 무척추동물 중에도 혈액이 붉은색을 띠고 있는 것이 있으나, 이것은 혈장 속에 붉은색의 혈색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혈액 속에 직접 녹아 있는 산소의 양만으로는 생명 활동에 충분하지 못하므로, 산소와 능동적으로 결합하여 보다 많은 산소를 운반하는 혈색소의 존재가 중요하게 된다. 이들 혈색소는 모두 금속 원소를 포함하고 있는 단백질로서, 산소 분압이 높은 호흡 기관에서 산소와 결합하며, 분압이 낮은 조직 세포에서는 산소를 해리하여 조직 세포에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혈색소는 산소 분자를 주고받는 일을 하므로 보통 '호흡 색소'라고도 한다. 척추동물의 혈색소는 적혈구 속에 헤모글로빈으로 함유되어 있으나, 무척추동물의 다른 종류의 혈색소는 혈장에 들어 있다. 동물의 혈색소에는 헤모글로빈·헤모시아닌·클로로크루오린·헤모에리드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갑각류 등의 피가 녹색으로 보이는 까닭은 헤모시아닌에 함유된 구리때문이다.
헤모글로빈.
헤모글로빈은 네 개의 햄 색소와 각각 알파와 베타로 불리는 두 개의 단백질 사슬로 이루어져 있다. 헤모글로빈은 철을 포함하여 산소와 가역적인 방법으로 결합한다. 헤모글로빈은 세포에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와도 결합하여 세포 조직으로 산소를 해리하고 이산화탄소를 체외로 내보내게 된다. 이때, 이산화탄소는 산소와 달리 햄 구조의 다른 부분에 결합하여 헤모글로빈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체내의 이산화탄소는 약 8%가 혈장에 녹아들고 20%는 헤모글로빈과 결합하며 나머지 70%는 적혈구의 다른 부분에 스며들게 된다. 이산화탄소가 적혈구로부터 농도가 낮은 혈장으로 녹아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적혈구는 물과 효소를 사용하여 이산화탄소를 탄산으로 변화시키고 이를 다시 중탄산이온과 수소이온으로 분리시킨 다음 중탄산이온은 혈장으로 내보내고 수소이온 만을 헤모글로빈과 결합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염화물 전환이라고 하며, 그 결과 혈장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고 주변 조직들로부터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헤모시아닌.
두족류, 복족류와 같은 연체동물이나 대다수의 절지동물의 경우 혈색소는 헤모시아닌으로 이루어져 있다. 헤모시아닌은 두 개의 구리와 산소가 결합하여 체내에 산소를 운반한다. 산소를 얻게 되면 산화구리의 색인 푸르스름한 빛을 지니게 되고 산소를 잃으면 무색이 된다.
대부분의 연체동물은 헤모시아닌을 혈색소로 갖고 있으나 일부 종류는 헤모글로빈과 헤모시아닌을 모두 갖고 있는 경우도 있고 어린 때에는 헤모글로빈이 있다가 성체가 되면 헤모시아닌을 혈색소로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편 연체동물 중에서도 혈색소가 헤모글로빈인 경우도 있는데, 피조개, 꼬막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기타.
갯지렁이는 클로로크로우린을 혈색소로 사용하는데, 이 혈색소는 헤모글로빈과 같이 철을 산소와 결합하는 매개체로 사용하지만 헤모글로빈보다는 산소 결합력이 떨어진다. 혈중에 클로로크로우린의 농도가 높을 경우 붉은 색을 띄며 옅으면 녹색을 띈다.
혈액형.
혈액형은 적혈구의 세포막에 있는 당단백질의 항원 기능에 따라 혈액의 종류를 구분한 것이다. 1901년 오스트리아의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에 의해 구분된 ABO식 혈액형이 유명하나 사람의 경우 이 외에도 RH식, MNSs, Lewis Duffy, Kidd 등 500여 가지 항원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ABO식과 RH식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수혈을 하였을 때 항원항체 반응으로 서로 다른 혈액형의 적혈구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ABO식에도 많은 돌연변이가 있어 약(弱)A형이나 약B형의 경우 O형으로 오진될 수 있고, AB인자가 결합되어 O형의 배우자와 만나 낳은 자식이 AB형이 되는 시스-AB형, A인자와 B인자가 함께 있는 혈액 키메라 등이 생길 수 있다.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도 혈액형이 구분되는데 개와 같은 경우 11가지의 혈액형이 알려져 있다.
한편, 일본, 대한민국 등에서 유행하는 ABO식 혈액형에 따른 성격 구분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일종의 사이비과학이다. 2006년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은 대한민국에서 성격과 혈액형에는 실제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
3773 | 712661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73 | 혈액형 | 혈액형(血液型, )은 적혈구의 세포막에 있는 항원인 여러 종류의 당단백질의 유무에 따라 분류되는 혈액의 종류를 일컫는다.
종류.
ABO식 혈액형이 유명하나 사람의 경우 이 외에도 RH식, MNSs, Lewis Duffy, Kidd 등 500여 가지 항원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ABO식과 RH식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수혈을 하였을 때 항원항체 반응으로 서로 다른 혈액형의 적혈구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ABO식에도 많은 돌연변이가 있어 약(弱)A형(week A형)이나 약B형(week B형)의 경우 O형으로 오진될 수 있고, AB인자가 결합되어 O형의 배우자와 만나 낳은 자식이 AB형이 되는 시스-AB형, A인자와 B인자가 함께 있는 혈액 키메라 등이 생길 수 있다. 한편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도 혈액형이 구분되는데 개와 같은 경우 11가지의 혈액형이 알려져 있다.
ABO식.
1901년 오스트리아의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에 의해 구분된 방식. ABO식에 따라 서로 구분되는 인간의 혈액형의 종류는 A형, B형, AB형 그리고 O형 네 가지이다.O형은 과거 C형으로 불렸다.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혈액을 섞었을 때 일어나는 응집반응의 여부로 구분하며, 이는 면역에서 말하는 항원과 항체 반응의 결과이다.
Rh식.
같은 란트슈타이너가 1940년 붉은털원숭이(rhesus monkey)의 혈액과 응집반응 여부를 통해 구분한 혈액형이다. 이 경우는 다음과 같다.
이 혈액형은 어머니가 Rh-형이고 태아가 Rh+형인 경우, 첫 번째 출산으로 어머니의 몸 속에 Rh+에 대한 항체가 생겨 두 번째 아이의 임신에 영향을 주는 신생아 용혈성 빈혈(적아세포증)에 중요하다. 또한 동양인은 Rh-형이 극히 적으므로, 수혈 시에 상당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Rh-형은 동양에서는 전체의 1%도 안 되는 반면, 서양에서는 Rh-형이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이런 희귀성 때문에 동양국가에서는 Rh-형인 사람들을 따로 등록해 두기도 한다.
바디바바디바.
바디바바디바(-D-/-D-)는 존재할 확률이 적은 희귀 혈액형으로 Rh식 혈액형의 항원 C, D, E 중에서 일반인 대부분이 갖고 있는 C, E 항원이 없는 혈액형을 일컫는다. (참고로 항원 CDE가 적혈구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면 Rh+, CE만 있다면 Rh-이다.) C와 E가 없다는 의미로 -D-/-D-로 표기하고, '바디바'로 발음한다. 부모 양쪽으로부터 모두 바디바(-D-)를 받을 경우에 나타나는데 만일 바디바바디바 혈액형을 가진 산모가 다른 혈액형 남성의 아이를 가지면 혈액형부적합임신에 따라 이상항체가 만들어져 태아가 심한 용혈성질환에 걸려 심하면 태아 사망도 유발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디바바디바 혈액형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려면 부모에게 모두 인자가 있어야 하는데 인자 자체가 희귀하기 때문에 혈액형이 나타날 확률은 매우 적다. 30만명당 1명 꼴로 태어나고, 대한민국에는 2006년까지 3명이 확인되었다.
혈액 부족으로 나타난 사례.
대한민국에서는 단 2차례의 보고 예만 있을 정도로 희귀한데, 그 중 한 예로 2004년 7월 이 혈액형을 가진 산모가 유산에 따른 출혈 과다로 입원해 대한민국의 다른 바디바바디바 혈액형의 사람으로부터 혈액을 공급받았으나 혈액량이 부족해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일본에서 몇 년 전 헌혈받아 냉동시켜 놓았던 혈액을 공수받아 위기를 넘겼다.
검사 방법.
이 혈액형은 anti-D 혈청 시약을 약 200배 정도로 희석한 용액으로 환자 혈액과 반응시켜 검사하는데, 이 희석 용액에서는 일반적인 anti-D 시약에 의한 양성 반응을 보이는 검체에서는 음성이 보이는데 반해 이 혈액형을 가진 혈액과 반응시키면 양성 반응을 보이므로 구분이 가능하다. 양성 반응이 나타나면 이 혈액형을 의심하면서 확인 검사로 C항원과 D항원 검사를 시행한다.
란저레이스, 주니어.
미국버몬트대학 생물학자 브라이언 발리프 등이 참가한 연구팀이 '란저레이스(Langereis)형'과 '주니어(Junior)형'으로 구분하는 새로운 단백질을 발견했다. 각 단백질엔 'ABCB6'과 'ABCG2' 이 붙여졌다.
수혈.
2006년까지 알려진 혈액형의 종류는 대략 500종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ABO와 Rh 혈액형이다. 이 두 종류만이 현재로서는 99% 이상의 수혈에 문제가 없게 할 수 있는 혈액형이다. 이 두 혈액형이 맞았을 때 수혈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므로 수혈할 때 이 두 가지 혈액형만 검사를 한다. 혈액형이 다를 경우 용혈성 빈혈을 일으킬 수 있다. 일반적으로 O형은 A, B, AB형 모두에게 수혈해 줄 수 있고, AB형은 모두에게 받을 수 있으나(소량) 전시상황 같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같은 혈액형이어야 부작용이 적다. 병원에서는 원칙적으로 같은 혈액형만 수혈을 한다.
질병과 관련된 유병율의 차이.
혈액형에 따라 질병의 유병율 차이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일설에 따르면 A형은 위암(gastric cancer)에 걸릴 확률이 O형보다 약 1.1배 높다. O형 혈액형은 십이지장 궤양(duodenal ulcer)에 걸릴 확률이 높다. 이것은 소화기 질환이 병태생리학적으로 진행될 때 생기는 출혈때 적혈구의 항원-항체 반응이 위점막에 끼치는 영향이 각기 다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소화기 질환뿐만 아니라, 혈액형별로 세균 및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성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O형인 사람들은 다른 혈액형 보유자들에 비해 말라리아에 대한 내성이 높거나 AB형 보유자들은 비교적 콜레라에 강한 내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 예. 이것은 대륙간, 인종간 혈액형 분포의 차이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우 O형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것은 특정 바이러스가 그 지역 및 인종에 광범위하게 유행한 적이 있고, 그로 인해 특정 혈액형이 압도적으로 많아졌고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일부의 주장에 불과하며 아직 혈액형 관련 질병에 따른 유병율의 차이에 관한 연구결과가 미비한 상황이라 아래의 혈액형의 따른 성격의 차이처럼 신빙성은 없다.
성격과 관련된 주장.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으며,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을 믿지 않으나, 대한민국과 일본 사람들이 ABO식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을 믿는 경우가 많다.
혈액형과 성격을 관련시킨 유래.
다윈과 골턴, 멜더스 이후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우생학이 유행하고 있었다. 주로 백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입증하려 한 것들이었다. 1901년 란트슈타이너에 의해 발견된 ABO식 혈액형 지식이 도입되면서, 1910년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의 에밀 폰 둥게른(Emile von Dungern) 박사는 ‘혈액형의 인류학’이라는 논문에서 혈액형에 따른 인종 우열 이론을 폈다. 더러워지지 않은 순수 유럽민족, 즉 게르만민족의 피가 A형이고 그 대척점에 있는 B형은 유대인과 아시아 인종에게 존재한다고 주장했고, 이런 연구를 통해 A형이 우수하고 B형은 뒤떨어지며, 따라서 B형이 비교적 많은 유대인들과 아시아인들은 원래 뒤떨어진 인종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후, 이러한 주장은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1916년, 독일로 유학을 다녀온 일본인 의사 키마타 하라는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시키려는 조사 논문을 발표했다. 1925년경, 일본의 육군과 해군은 병사들의 혈액형을 기록하기 시작하였고, 그 정보가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 영향을 받아 철학을 공부하고 동경여자사범학교의 강사로 있던 후루카와가 1927년 8월 자기 친척, 동료, 학생 등 319명을 조사해 <혈액형에 의한 기질연구>라는 논문을 일본심리학회지에 발표하였는데, 일본은 황인종의 나라이니만큼 차마 인종간의 우열기준으로 사용하진 못했고 그 대신 성격을 나누는 기준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라 1930년대 처음으로 이력서에 혈액형 칸이 생겼다. 고용될 사람이 어느 정도 회사에 적응할 것인지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1937년 외무성 관련 업무를 하던 한 의사는 O형인 사람이 더 훌륭한 외교관이 될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 설은 그다지 지지를 얻진 못하고 일단 사라졌으나 전후 이 설의 영향을 받은 작가 노오미(能見)의 책(1971년)이 인기를 얻으면서 《혈액형 인간학》이 유행을 일으켰다. 노오미는 작가생활을 하면서 만나본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에 따라 ABO식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에 대해 저술했다. 이후 이 이론은 여성지 등을 중심으로 궁합문제, 직업문제, 대인관계, 학습법 등으로 응용되고 온갖 파생 상품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여러 학자들의 비판으로 그 붐이 가라앉긴 했지만, 현재도 많은 관련 잡지와 책 등이 출판되고 있으며 점술업 등에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또한 혈액형 성격설 맹신자들 사이에서는 어느정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심리학회의 연구결과가 있는데 이는 피그말리온 효과에 의한 것이라 생각된다고 한다.
분석.
이렇게 통계적으로도 학술적으로도 근거 없는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을 사람들이 계속 믿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심리학에서는 다음 이론들로 설명된다. |
3774 | 702085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74 | 금속 | 금속(金屬) 또는 메탈()은 일반적으로 단단하고 광택이 있으며, 열 전도율과 전기 전도도가 높은 물질을 아우른다. 화학에서는 전이 금속과 전이후 금속을 통틀어 일컫는 표현으로 쓰이나, 간혹 준금속을 금속의 정의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상온에서 고체 상태로 존재하며, 특유의 광택을 띠고 열과 전기를 잘 전달하는 도체로, 연성과 전성을 갖는다. 주기율표 상에 위치하는 118개의 원소 중 대략 4분의 3 정도가 일반적인 금속의 정의에 해당된다. 철, 구리, 알루미늄, 금, 주석, 우라늄 등이 자연 상태에서 흔히 발견된다. 보통 금속 원소는 전자를 잃고 양이온이 되기 쉬우며, 비금속은 반대로 전자를 얻기 쉽다. 천문학에서는 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을 금속이라 하기도 한다.
이용.
금속은 인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고 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청동기 시대나 철기 시대 등, 그 시대에 주로 쓰인 금속의 이름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부터가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금속은 예로부터 인류의 생활을 지탱하고 문화의 발전에 주역을 담당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아프리카나 남태평양의 도서 지방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종족 중에는 전혀 금속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용하더라도 아주 한정된 범위에만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금속 중에 무기나 농기구로서 그 위력을 보인 것은 청동(구리와 주석의 합금)과 철인데, 이 철이 이용되지 않는 문명이라면 어느 정도 상상해볼 수도 있다. 즉 16세기에 스페인인들의 침략을 받은 끝에 멸망한 남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잉카 문명·마야 문명)이 그 예로서, 이들은 금이나 은은 풍부했으나 철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철을 몰랐다고 해서 그 문명이 원시적 단계에 있었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들은 훌륭한 국가 조직을 이루고 있었으며 특히 토목 기술은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웅장한 피라미드나 궁전의 유적이 그러한 사실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 대제국은 소수의 스페인인들의 손에 의해서 쉽게 멸망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주로 철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이 없으면 무기가 약할 수 밖에 없고, 그뿐만 아니라 산업 전체가 뒤떨어지게 마련이다. 농업에서도 나무나 석기 농기구로 경작하는 것이므로 그 생산력이 여간해서는 증진되지 못함은 뻔한 일이다. 전체 산업이 뒤떨어지면 그 사회 전체의 힘도 약하다. 그러므로 어떤 부분이 아무리 발달했더라도 남미의 고대국가는 실은 힘이 약한 사회였던 것이다. 금속 재료가 우리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은 오늘날에 있어서는 엄연한 사실이지만, 옛날부터 금속이 너무도 인간 생활에 가까이 있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금속을 잘 이용하는 일이 고대의 인류에게 있어서 중요했던 그 이상으로 우주 시대인 오늘날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다.
지각 속의 금속.
철에 습기 있는 공기가 닿으면 부슬부슬한 녹으로 변한다. 녹은 철과는 그 성질이 아주 다르다. 그러나 이 녹은 철이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래 철은 자연 상태로는 산화물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철의 원료는 적철광(Fe2O3)이나 자철광(Fe3O4)으로, 철이 산소와 결합된 것이다. 이것은 철의 경우에만 한하는 현상은 아니다. 다른 금속도 대부분은 산화물 또는 다른 원소와의 화합물로서 자연에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지각 중의 암석이다. 지각의 암석을 형성하고 있는 원소는 산소와 규소가 그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금속 원소는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금속 원소가 어디나 균일한 비율로 지각 속에 분포되어 있다고 하면 암석 중의 금속 함유량은 매우 적은 것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각의 평균 화학조성을 중량의 백분율로 나타낸 클라크 수에 의하여 계산해 보면, 야구공 정도의 크기의 납 덩어리(부피 약 180cm3, 무게 약 2kg)를 얻기 위해서는 약 100t의 암석을 채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만한 암석을 채집한다는 것은 운반비만으로도 엄청난 비용이 들게 된다. 다행히도 지각 중의 금속 원소는 어디나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지는 않다. 지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금속 원소는 각각 농도 높은 광석으로 되어, 이른바 광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광상을 채굴함으로써 인간은 경제적으로 광석에서 금속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납을 예로 들면 지각 중의 평균 함유량은 0.002%에 지나지 않지만, 광석 중에는 약 5%의 납이 들어 있다. |
3775 | 368112 | https://ko.wikipedia.org/wiki?curid=3775 | 뉴턴 운동 법칙 | 고전역학에서 뉴턴 운동 법칙(Newton運動法則, )은 물체의 운동을 다루는 세 개의 물리 법칙이다. 아이작 뉴턴이 도입한 이 법칙들은 고전 역학의 바탕을 이룬다.
역사적 배경.
중세를 거치면서 임페투스라는 관성과 유사한 개념이 도입되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7세기 초에 관성의 개념을 완성하고, 실험을 통해 오늘날 뉴턴 제1 운동 법칙으로 불리는 관성의 법칙을 증명하였다.
오늘날의 세 개의 뉴턴 운동 법칙은 아이작 뉴턴이 1687년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제1권에 처음 서술하였다. 뉴턴은 이 책에서 만유인력의 법칙과 뉴턴 운동 법칙을 사용하여 케플러 법칙을 비롯한 당시 알려진 모든 천체역학을 수학적으로 유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뉴턴의 운동법칙은 처음으로 회전체의 운동, 유체 안에서의 운동, 발사체의 운동, 빗면에서의 운동, 진자의 운동, 조석, 달과 천체의 궤도와 같은 물리학적 현상들에 대한 광범위한 설명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뉴턴이 제2법칙과 제3법칙을 써서 유도한 운동량 보존법칙은 물리학사상 최초의 보존법칙으로 여겨진다.
뉴턴의 법칙들은 200년이 넘게 실험과 (10−6~104m의 길이에서 0~108m/s의 속도를 갖는 척도)에서 일어나는 운동학을, 관측 결과보다 더욱 정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즉, 대략 모든 속도들이 빛의 속도의 1/3 이하라면 뉴턴의 법칙은 대부분의 경우 그 오차를 무시할 수 있는 정도로 정확하다.
제1법칙: 관성의 법칙.
제1법칙은 관성의 법칙이나 갈릴레이의 법칙으로도 불린다.
즉, 물체에 가해진 알짜힘이 0일 때 물체의 질량 중심의 가속도는 0이다.
제1법칙은 단순히 제2법칙에서 알짜힘이 0인 경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제2법칙과 제3법칙이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기준틀의 개념을 정의한다. 이러한 기준틀은 관성기준틀이라고 부르며, 가속도가 0인 상태로 등속 직선 운동을 하는 관찰자의 기준틀이다. 등속 원운동은 등속력 운동이지만 속도의 방향이 바뀌므로 지구와 같은, 등속 원운동을 하는 관찰자의 기준틀은 엄밀히 말해 관성기준틀이 아니다. 그러나 지구의 운동으로 인한 오차는 (지구의 궤도 및 크기가 매우 크므로) 일반적인 실험에서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빗면을 따라 공을 굴리는 실험을 통해 만약 마찰력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면 외부 힘이 가해지지 않는 모든 물체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즉, 가만히 있는 물체는 (외부 힘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계속 가만히 있고,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그 속도로 움직이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으로부터 갈릴레이의 이론(뉴턴의 제1법칙)으로 생각이 전환된 것은 물리학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심오하고 중요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마찰력은 모든 움직이는 물체에 작용하여 물체를 느리게 하고 결국엔 정지하게 만든다. 아이작 뉴턴은 모든 물체의 운동을 이끌어내는 원인을 힘으로 보고, 이에 기반을 둔 수학적 모형을 제시하였다.
제2법칙: 가속도의 법칙.
다시 말해, 물체에 더 큰 알짜힘이 가해질수록 물체의 운동량의 변화는 더 커진다. 한 물체 A가 다른 물체 B에 힘을 가하면 이에 따라 B의 운동량을 바꿀 수 있다. (제3법칙에 의하여, 이런 경우는 A의 운동량이 감소하는 만큼 B의 운동량이 증가하므로, 두 물체가 힘을 통해 운동량을 서로 교환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2법칙을 수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만약 물체의 질량 formula_2이 변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여기서
위의 방정식에서 물체의 질량은 물체 고유의 성질이다. 일정한 질량 "m"을 가진 물체에 대해서만, 그 물체에 더 큰 알짜힘을 가할수록 운동량의 변화가 커진다. 그러므로 이 방정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질량의 개념을 정의할 수 있다.
또한 F = "m"a에서, a는 직접 측정이 가능하지만 F는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이 아니다. 제2법칙은 단지 우리가 F의 값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힘의 계산법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또한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물체의 질량이 변할 수 있다면 formula_9을 적용할 수 없고, 좀 더 일반적인 다음과 같은 식을 쓴다.
운동량을 formula_11와 같이 표현하는 경우 (formula_12는 로런츠 인자), 이 방정식은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도 유효하다.
제3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전통적으로, 제3법칙은 "모든 작용에 대해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라고 쓴다.
이 설명들은, 누군가가 물체를 200 N의 힘으로 때리면 그 물체 또한 같은 힘으로 그 사람을 때린다는 결과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행성만 항성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항성 또한 행성에 이끌리고 있다. 반작용력은 작용의 반대 방향을 가지고, 그 크기는 동일하다. 하지만 작용력과 반작용력이 항상 일직선상에 위치할 필요는 없다. 두 쌍극자가 점전하와 쌍극자를 잇는 선에 수직하게 위치한 경우, 점전하가 전기 쌍극자에 가하는 힘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힘이 점전하와 쌍극자를 잇는 선에 수직인 경우 점전하에 대한 반작용력은 반대 방향을 취하겠지만, 작용력과 반작용력이 서로 평행한 경우에는 공간 내에서 서로 겹쳐지지 않게 된다.
힘은 운동량의 시간 변화율이므로, 제3법칙에 따르면 A의 운동량이 줄어드는 만큼 B의 운동량이 늘어나게 된다. 즉, 계의 총 운동량의 보존을 의미한다. 반대로, 운동량 보존 법칙으로부터 제3법칙을 유도할 수 있다.
때때로 전자기력에서는 제3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즉, 물체 A가 B에 가하는 로런츠 힘은 B가 A에 가하는 힘과 일반적으로 다르다. 이는 A와 B가 생성하는 전자기장이 가진 운동량 교환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자기장이 가진 운동량을 계산에 포함시키면 계의 총 운동량은 보존되며, 이에 따라 제3법칙이 성립하게 된다.
제3법칙의 약한 형태와 강한 형태.
위에 인용한 제3법칙은 엄밀히 말해 제3법칙의 '약한 형태()다. 이에 따르면, 작용력과 반작용력은 크기가 같고 방향은 서로 반대지만, 그 방향이 어느 방향인지는 서술하지 않는다. 즉, 입자로 이루어진 계에서, formula_13가 입자 b에 의한 입자 a에 대한 힘이라고 쓰면 제3법칙의 약한 형태는 다음과 같다.
모든 고전 역학적 힘은 이 조건을 만족한다. 이로써 질량 중심과 같은 개념을 정의할 수 있다.
반면, 제3법칙의 강한 형태()에 따르면, 작용력과 반작용력은 크기가 같고 방향이 서로 반대일 뿐만 아니라 두 힘의 방향이 두 입자를 잇는 직선과 평행해야 한다. 즉, 만약 a가 formula_15에, b가 formula_16에 위치해 있다면 두 힘은 다음과 같은 꼴을 취한다.
만유인력은 제3법칙의 강한 형태도 만족하지만, 전자기학의 로런츠 힘은 제3법칙의 약한 형태만 만족하고, 강한 형태는 만족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점전하와 쌍극자를 잇는 직선에 수직으로 위치한 점전하와 완전쌍극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제3법칙의 강한 형태를 따르지 않는다.
또한 예시로 대포, 총 등을 쏠때 탄환과 반동을 들 수 있다.
유효 범위.
1916년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인류가 이때까지 해왔던 모든 예상 척도를 뛰어넘는 설명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빛의 속도에 비해 매우 낮은 속도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모형은 고전역학으로 수렴한다.
즉, 속도가 빛의 속도에 비해 매우 작으면 속도의 로런츠 인자 formula_12는 1에 수렴한다. |